영화 <시>에서 문학강좌 선생님으로 나오는 김용택 시인은 청중들 앞에서 이렇게 말한다. “죽어가죠, 시가, 불행히도. 이제 더 이상 사람들이 시를 읽지도 않고 쓰지도 않으니까요.”

그런데 사람들의 무관심 이외에도, 시가 죽어가는 이유가 한 가지 더 생겼다. 교육과정평가원이 중학 국어 교과서 검정심사 과정에서 도종환 시인의 작품을, ‘정치인의 작품’이라는 이유로 교과서에서 삭제하라고 권고한 것이다. 말은 ‘권고’지만 출판사들은 사실상 강제적인 명령을 받아들이고 있다고 한다. 시인의 정치 활동에 따라, 시의 문학성과 예술적 가치마저도 ‘부적절하다’는 식으로 폄하되고 있는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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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원은 검정기준에 있는 ‘교육의 중립성 유지’ 항목을 근거로, 도종환 의원의 시를 삭제하라고 권고했다. 이 항목은 ‘교과서는 정치적·파당적 또는 개인적 편견을 전파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되지 않고, 교육내용은 특정 정당, 종교등…을 비방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고 한다. 그러나 도 의원 작품 중 교과서에 올라와있는 ‘종례시간’, ‘담쟁이’, ‘흔들리며 피는 꽃’등의 시는, 정치적 목적과는 전혀 무관하게 만들어진 시들이다. 게다가 2002년부터 10여 년간 교과서에 쓰이면서 ‘검증된’ 시들이 많다. 국회의원이 되었다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삭제 권고를 받는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전두환 정권 때 민정당 의원이었던 김춘수 시인의 ‘꽃’은 교과서에서 삭제되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할 때, 이번 삭제 권고는 더욱 부당한 일로 느껴진다. 또한 박근혜 캠프에 있는 박효종 교수가 고등학교 <윤리와 사상>교과서를 집필했는데도 불구하고, 평가원에서는 “수정 또는 집필진 교체 지시를 내릴 상황이 아니다” 고 밝혔다고 하니, 형평성 자체에 큰 문제가 있어 보인다. 게다가 도 의원과 마찬가지로 민주통합당의 당적을 갖고 있는 박원순 시장의 수필은 삭제지시를 내리지 않았는데, 이에 대해 평가원은 서울시장은 정치인이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한다. 애초에 검정기준 자체가 엉망이었던 것이다.

오히려 평가원이 자의적인 규정을 적용해, 교과서의 공정성을 훼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안도현, 신경림 시인뿐만 아니라, 이문열 같은 보수 색채의 문인들까지 반발한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시의 작품성을 정치적 잣대로 규정하는 것은, 문학의 온전한 가치를 훼손시키는 일이다. 나아가 시인이 국회의원이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시인의 시에 대해 ‘정치적 편향’의 딱지를 붙이는 것은 엄연한 ‘표현의 자유 침해’다.

야당의원이 쓴 서정시가 정치적 도구로 활용될지도 모른다는 망상에 빠진 것일까? 시인이 정치인이 되었다는 이유로, 그 시가 정치적 목적을 가진 양 여기는 것은, 시를 죽이는 것이나 다름없다. 시가 특정한 세력에 의해 함부로 재단되어져, 본래의 의미를 상실 할 때, 그 시는 생명력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평가원은 삭제 권고를 취소하고, 도 의원에게 사과해야 한다. 교육적 가치가 있는 시마저 죽이려고 드는, 평가원의 문화적 무지가 개탄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