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정글피쉬


오후 4시 30분, 수업 마치는 종소리가 땡 울리자 여느 고등학생과 다름이 없어 보이는 한 학생이 가방을 획 들쳐 매고 밖으로 나간다. UCC제작 동아리 활동을 하러 간 것이다. 평범한 고등학생이라면 저녁밥을 먹은 후 야간 자율 학습 시간에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를 할 시간이지만 그 친구는 일찌감치 자기 흥미에 맞는 일을 찾아 방과 후 활동을 하고 있다. 조금은 낯선 이 학생의 일과는 학생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간디학교에 다니는 2학년 최 군의 이야기다.

여느 고등학생과 사뭇 다른 학창시절을 보내고 있는 최 군. 그리고 그가 다니는 간디학교는 입시 교육에서 벗어나 좀 더 다양하고 자유로우며 자연 친화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가르치는 일명 ‘대안학교’이다. 간디학교의 교장 양희규씨는 “교육이란 아이들에게 자유를 주어 스스로 많은 선택을 하게하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사제지간의 사랑’, ‘가능한 많은 자유’, ‘학생들의 자립’이라는 세 가지 원칙을 바탕으로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간디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두발과 사복의 자유를 주는 것은 물론이고 스스로 공부를 하도록 기회를 준다. 다시 말해 배움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래서 강제적 입시교육을 지양하고, 정규 학교 수업 시간이 끝나면 UCC만들기, 풍물놀이 등 자기의 관심사에 맞는 동아리에 가서 방과 후 학습을 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만들어 놓고 있다. 이렇듯 간디학교 교사들은 학생들의 자율성을 믿고 학습을 선택할 권리를 주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부산에서도 간디학교와 같이 학생들의 자율성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학습 선택권 보장에 관한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이 조례안에는 초중고 정규교육과정 외에 이뤄지는 보충수업, 야간 자율 학습, 방과 후 수업 등에 대해 학생과 학부모가 자율적으로 학습을 선택 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물론 학습 선택권이 주어진다고 해서 부산시 모든 학교가 ‘간디학교’만큼 자유로운 학습 분위기가 조성 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방과 후 학습만큼은 학생의 자율성이 보장 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며 이것은 앞으로 미래를 이끌어갈 학생들의 자기 결정권을 신장시킬 수 있을 것이다. 
 
21세기는 관료적이고 틀에 박힌 일에 익숙해진 사람보다 창의성과 상상력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인재를 필요로 한다. 그러한 점에서 이번 조례안은 학생들의 적성에 맞는 다양한 분야에서 인재를 키워낼 수 있는 발판이 되며, 창의적인 미래세대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초석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또한 학생과 학부모의 선택권을 신장시켜 방과 후 교육의 질과 환경을 개선하는 효과를 가져 올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여러 가지 기대 효과가 예상되지만 부산시 학습 선택권 조례안이 시행되는 것은 그렇게 녹록치 않아 보인다. 전교조 측에서는 “학생들의 자율적 선택을 존중하고 자기 결정권을 신장시킬 수 있다”며 환영하고 있지만 부산 교육청과 교총은 “교육적 지도가 필요한 학생들에게 지나친 학습권이 주어지면 학교 폭력, 교권침해 등이 일어나 교육 현장이 더욱 혼란스러워 질 것”이라며 강경하게 반대하면서 이번 의결권 통과에 대한 재검토를 건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학생에게 학습 선택권을 부여함으로써 생기는 부작용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 조례안이 통과되면 청소년 범죄가 증가할 것이라는 우려까지 하는 것은 지나치게 비관적인 추측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강제 학습을 한다고 해서 사교육을 받지 않게 되는 것도 아니고, 학교 폭력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학습 선택권은 무조건 방과 후 학습을 폐지하자는 것이 아니다. 학교 측에서 방과 후 학습을 권유를 할 수 있고 이를 학생이 선택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조례안을 반대 하는 부산 교육청이나 교총에서는 눈에 쌍심지를 켜고 반대만 하지 말고 학습 선택권이 주어졌을 때의 효과를 생각하고, 부작용에 대해서는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학생에게도 자신의 적성에 맞는 길을 택해서 그것을 자율적으로 배울 권리가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실제로 학교에 얽매이는 교육을 받다가 대학교에 진학해서 적성에 맞지 않아 고민하고 있는 학생이 적지 않다. 이 학생들이 억지로 자율학습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차라리 자신의 진로를 고민하는 시간을 더 가졌더라면, 그리고 ‘간디학교’의 최 군 처럼 자신에게 맞는 길을 찾아 좀 더 일찍 노력했다면 사회에 나갔을 때 자신의 분야에서 더 진취적이고 능동적으로 활동하고 있지 않을까.

‘간디학교’ 교장 양희규씨는 "교육이란 아이들이 자신의 삶을 긍정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 아이들은 자율학습이라는 강제적인 학습 분위기에서 하루 종일 머리를 싸매면서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일을 사랑할 수 있는지, 나에게 어떤 종류의 삶이 맞는지 생각해 볼 기회조차 잃어버린다. 
 

이번 조례안이 대한민국 아이들이 좀 더 자율성을 가지며 진취적으로 삶을 개척해 나가는 발판이 되어 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