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학생회장 고명우



[아이돌 대신 인디밴드… 서강대 축제 논쟁] [대학축제… 주인공은 연예인, 학생은 들러리] 흔치 않은 일이 생겼다. 유명 일간지와 시사주간지에서 특정 대학의 축제를 주제로 한 기사가 연이어 나갔다. 기사는 포털 메인에도 노출 됐다. 대한민국엔 200개 정도의 대학이 있다고 한다. 모든 대학에서 중간고사가 끝난 비슷한 시기에 일제히 봄축제를 갖는다. 그 200개의 대학축제 중 딱 한 곳 서강대학교의 축제만이 커다란 이슈가 되었다. 어째서?

대학축제의 상업성을 비판하는 논조는 이제 새롭다 못해 지겨울 정도다. 이유는 비판의 대상이 변화하지 않는 큰 흐름으로 정착했기 때문이다. 매 년 수 천 만원을 들여서 유명 가수와 아이돌 그룹을 부르고 비슷한 비판이 다시 반복된다. 그 와중에 서강대학교에서 큰 일이 터졌다. 총학생회가 아이돌가수 대신 인디밴드를 마지막 날 무대에 세웠기 때문이다. 그것도 20팀이나!

교내 게시판엔 "우리도 태티서를 보고 싶다."라는 애교 섞인 불평부터 "좌파 총학생회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의식화작업을 하고 있다."거나 "좌파 가수들을 초청해서 출연료를 명목으로 활동자금을 제공하고 있다."같은 무시무시한 발언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축제를 둘러싼 논란은 축제가 끝나고 찾아온 기말고사와 여름방학을 거치면서 잠잠해졌다. 그러나 머리 속에는 떠나지 않는 의문이 남았다. 정말 총학생회가 의식화 작업을 위해 좌파밴드를 초청한 것일까? 음악에 사람을 세뇌시키는 코드가 들어가 있나? 왜 욕먹을 각오를 하고 인디밴드를 부른 것일까? 서강대학교 총학생회장 고명우씨를 만나 미처 다하지 못한 축제의 뒷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서강대 축제 논란이 교내외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스스로 이유를 분석한다면?
잘돼서 입소문도 나고 뉴스에 나오길 바란 것은 맞습니다만, 다른 쪽으로 반향을 일으킬지는 몰랐어요. 이전에 없던 특이한 축제라는 컨셉이 주최측인 총학생회와 학생 간에 마찰을 불러온 것 같습니다. 크게 세 부류의 마찰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정치적인 방향성이라는 오해, 아이돌을 부르지 않았다는 이유 그리고 동아리 연합회와의 마찰. 특히 정치색 논란이 끼어들어서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 같아요. 메이저대학이라 더 크게 이슈화가 된 부분도 있지 않았나 싶고요.


-아이돌 또는 잘 노는 가수들 대신 인디밴드를 부르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축제에서 인디밴드를 부르자는 내용은 총학생회 후보 당시의 공약이었습니다. 축제라는 단어는 축하한다는 뜻의 '축'과 기원한다는 뜻의 '제' 두 가지로 이루어져 있잖아요. 축제란 무언가를 축하하고 기원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우리 대학축제를 보면 이 시대의 대학생들이 무엇을 축하하고 기원하는지 잘 모르겠고. 축제를 그저 연예인 구경하고 술 마시고 여흥을 보내는 날로 생각하고 있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단지 소비적인 축제가 아닌 다른 의미가 있는 축제를 만들고 싶었어요. 고민 끝에 “사회 속의 나”라는 주제로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축제를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홍대 앞에서 활동하는 인디밴드들이 떠올랐던 거고요. 홍대와 서강대는 같은 마포구에 속해있고 실제로 걸어서 10분 정도밖에 안 걸릴 정도로 가까운 곳에 있어요. 그러나 학생들은 홍대라는 지역을 클럽문화라는 측면에서 소비하고 있지만 정작 그 곳에서 어떤 음악가들이 살아가고 있는지, 그들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이런 주제엔 그다지 큰 관심이 없는 것 같았어요. 이러한 무관심을 환기시키고 싶었어요. 그래서 인디밴드를 전격 초청하기로 했습니다.

현실적인 문제도 있었죠. 인디밴드 20팀을 부르는데 총 섭외비로 600만원 정도를 지출했어요. 유명 가수를 부른다면 절대 이 비용으로 무대를 꾸릴 수 없거든요. 무대와 음향도 기획사에 의뢰하지 않고 학생들이 직접 세웠습니다. 덕분에 이전 학생회에 비해 축제 공연 예산을 2천 만원 가까이 줄이고 그 돈을 단과대 학생회들에게 지원금으로 나눠줬어요. 2천 만원으로 연예인 초청해서 축제 때 4곡정도 부르고 떠나는 것 보다 학우들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더욱 의미 있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죠. 

축제기간동안 교내 곳곳에서 이뤄진 버스킹(인디밴드와는 관련 없습니다)



-초청된 인디밴드들이 정치적으로 편향된 성향을 가졌다는 논란이 심했다.
인디밴드 대부분은 아는 사람을 통해 소개 받은 자립음악생산조합 회원들이에요. 조합은 정치적 지향성을 가진 단체가 아니라 일종의 협동조합입니다. 조합은 상품화된 음악을 거부하고 음악활동을 하는 회원들의 모임이에요. 회비를 모아서 공연을 하거나 음반을 제작하기도 하고. 일종의 두레라고 보시면 되요. 그나마도 초청밴드 20팀 중 10팀 정도만 조합에 속한 밴드 또는 가수입니다. 오히려 초청한 밴드 분들이 정치색 논란 때문에 불쾌해 하셔서 사과하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죠. 조합 소속 일부 회원들의 정치적 견해가 문제가 되었을 때 제대로 해명을 하지 못해 일을 키운 부분은 저희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조합 자체는 정치적 성격을 가진 단체도 아니고 그런 목적으로 초대한 것은 더더욱 아니라는 점을 밝혀두고 싶습니다.


-총학생회가 축제를 통해 학생들을 계몽하려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저희가 정말 정치적 의도가 있었다면 진보명사를 초대해 콘서트나 강연회를 여는 등 학생들을 계몽할 수 있는 더 좋은 기획을 할 수 있었겠죠. 예를 들어 김제동씨 같은 분을 초청할 수도 있고요. 그렇지만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일부의 이런 주장은 지나친 억측 같아요. 
 

-학우들이 원하는 축제와 총학생회가 기획한 축제 사이에 간근이 존재했던 것 같다.
축제 기획은 자체는 기존 축제보다 1달 이상 일찍 시작했습니다. 기획서를 만들어서 단과대나 동아리연합회 모두 열심히 돌아다녔어요. 다만 단과대와 동아리연합회라는 중간단계를 거쳐야 했고 이 과정 축제기획단과 일반 학생들의 여론 사이에 효과적인 의사전달에 문제가 생겼던 것 같아요. 애초부터 연예인이 안 온다는 것에 마음이 안 들어 하는 사람도 있었고. 다만 학생들이 원하는 축제라는 것이 학생의 수만큼 이나 모두 다르기 때문에 모든 학생이 100% 만족하는 축제를 만들긴 어려운 점도 있다고 생각해요.

북아현동 철거민 후원 바자회



-아현동 철거민 후원 바자회나 여성노조 주점 등 이전 축제에선 찾아볼 수 없었던 다양한 기획이 있었다. 축제에 어떤 내용을 담고 싶었는지 궁금하다.
앞에서도 말했던 내용이지만, 축제를 통해 서강인도 우리가 속한 사회 공동체의 일부라는 메시지를 공유하고 싶었어요. 북아현동 철거민은 우리 학교 도서관에서 바라보일 정도로 가까운 곳에 있지만 한 쪽에서는 에어컨 쐬면서 공부하고 있고 다른 쪽에선 땡볕 아래서 철거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어요. 공간적으로는 바로 옆 동네임에도 두 공동체 사이의 심리적 간극이 너무 크다는 생각이 들어요. 철거민 후원 바자회를 통해 이 사람들도 우리와 같은 사회의 사람이라는 생각을 공유했으면 했죠. 강정의 경우 뜨거운 이슈였고 무엇보다 우리학교 재단인 예수회에서도 관심을 갖고 활동하고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그냥 지나칠 수 없었고요. 우리학교 청소노동자 어머니들과 함께 여성노조도 큰 규모로 했습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낮은 축제 참여율을 여전히 한계로 남아있다.
이제 첫 숟가락을 뜬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번 경우를 참고해 다음 축제는 더 좋은 축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일단은 홍보가 너무 어려웠어요. 생각했던 그림을 만들기 위해선 돈이 많이 든다는 것을 깨닫기도 했고. 다음 총학생회가 누가 될진 모르겠지만 이런 점을 보완해서 예산도 늘리고 홍보도 다른 방식으로 기획하였으면 좋겠습니다. 


- 대학 축제가 대내외적으로 많은 비판에 직면했다. 대학 축제가 나갈 방향을 제시한다면.
인터뷰 처음의 문제의식으로 돌아갔으면 해요. 축제의 원래 의미와 공동체의식의 문제. 과연 한 해에 기념해야 할 바가 무엇이고 축하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봤으면 좋겠습니다. 또 축제는 공동체간의 유대관계를 평등하게 해주는 기능이 있다고 생각해요. 연예인과 술이라는 쾌락을 통해 하나가 되는 축제가 아닌 공동체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는 축제로 되돌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요즘 대학생들이 너무 보수적입니다. 보수적이라는 의미는 한나라당을 지지한다는 뜻이 아니에요. 사회문제에 관심이 없다는 이야기죠. 저는 서강민족주의라는 표현으로 나타내고 싶어요. 서강대만의, 서강대 학생만을 위한, 서강대만의 생각에 갇혀있는 것 같아요. 서강민족주의를 벗어나 사회의 다른 공동체와도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축제에 홍대의 인디밴드를 부르고, 북아현동 철거민들을 위한 바자회를 열고, 강정마을 홍보 부스를 설치한 것도 모두 이러한 의미에서 추진한 활동이었어요. 서강대도 결국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마포구 신수동에 위치해 있잖아요. 대학 축제가 지역사회 그리고 우리 주변에 잊고 지냈던 공동체와 더욱 소통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