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기의 목은 쉬어있었다. 많은 수험생들의 PMP 한 켠을 자신의 인강으로 채워놓은, '최진기의 인문학특강'을 팟캐스트 상위에 랭크시킨, 틈틈이 매스컴에 나와 경제동향을 이야기하기도 하는 그는 잘나가는 학원 강사다. 바쁜 스케줄을 증명이라도 하듯 약속시간을 꽤나 넘겨 도착한 그의 눈에는 피로함이 가득했고, 그 덕에 필자는 인터뷰의 영양가를 걱정해야 했다. 식상한 대답을 예상하며 던진 첫 번째 질문. "체 게바라에 대한 책을 쓰시게 된 계기가 뭐죠?" 이어지는 그의 대답. "존나 멋있잖아요." 인터뷰는 재미있었다.

지난 달 그의 신간이 출판되었다. <일생에 한 번은 체 게바라처럼>. 청춘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들을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인물인 체 게바라의 이야기와 함께 담아낸 에세이다.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들, 수능 이야기 말고 다른 이야기들을 하고 싶었어요. 제가 조언할 만한 사람은 아니고, 나라면 이렇게 하겠다. 내가 젊은 시절이었다면 나라면 이렇게 하겠다. 그런 거에 대해 쓴 거예요."

<아프니까 청춘이다> 등 20대 멘토링북의 흐름을 타려 한 것은 아니었을까? 20대 관련 출판에 대해 묻자 한숨이 돌아왔다. "하아, 20대를 이야기 하는 책들이 어떻게 안 팔리겠어요. 중학교 때 뭐했어요, 학원 다녔죠? 고등학교 때도 공부만 시키고 대학교가니까 또…… 우리는 사람이지 기계가 아니니까. 위로가 필요하니까, 더 다양한 가치가 필요하니까 잘 팔리는 거죠." 가치가 획일화된 원인은 뭐란 말인가.

"신자유주의가 우리를 발가벗긴 거예요. 옛날에는 내가 여자애를 예뻐서 좋아해도 '나는 쟤가 마음씨가 예뻐서 좋아한다'고 말해요. 이게 허위의식이고 기만의식일 수 있지만 이런 포장지가 이젠 없어졌죠. 군대도 이제는 안가야만 하는 거고 빼는 게 잘하는 거라고 드러내고 말할 수 있는 거죠. 본질이 너무 투영되는 사회가 되니까 그게 사람을 굉장히 힘들게 만드는 거예요."


공부만 해야 하는 학생들을 동정하며 신자유주의를 탓하는 최진기이지만, 사실 그는 사교육 시장의 가장 큰 수혜자 중 한명이다. 대기업에 다니던 중 부동산 투자에 실패하고, 빚을 갚기 위해 아르바이트까지 해야 했던 그는 어쩌다 시작한 학원 강의에서 재능을 발휘하며 사회탐구영역 대표강사가 되었다. 한강이 보이는 롯데캐슬에 살며 10여명의 직원을 둔 연구소의 대표가 된 그가 힘겨운 청춘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어딘가 어색한 이 상황은 어떻게 만들어 진 것일까.

"제가 가르치는 게 사회탐구잖아요. 철학과 경제를 가르치면서 10대, 20대에 대해 이해하지 않을 수 없죠. 또 내 강의를 좋아해주는 학생들이 많은데 내가 어떻게 걔네들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그리고 저는 인문학의 세례를 받았으니까." 대학시절 사회학을 전공하는 운동권이었던 자신의 과거를 "인문학의 세례"로 표현한 것이리라. 학생들에 대한 그의 애정은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고 수화로 제작된 인강은 무료로 서비스 한다. 새로운 교육시스템을 갖춘 대안학교를 추진하는 중이기도 하다. 장학금 이야기를 꺼내자 질문지를 펜으로 지워버린다. "에이 이건 하지 맙시다."

청춘에 대한 여느 책들처럼 그의 이번 신간도 20대의 스펙경쟁을 이야기한다. '불가능한 꿈을 꾸자'던 체 게바라처럼 역시 마이웨이를 강조한다. "공무원 시험 떨어진 사람들이 사는 데에 행정학이 무슨 도움을 줘요? 취업 실패한 90%가 스펙 준비한 노력을 생각해 보면 사회적 유용성이 너무 적은 거예요. 사회 구성원들은 나름의 최선을 택하지만 전체적으로는 합리적이지 못한 모순인거죠. 사실 구성원들도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게 아니에요. 고3 때는 대학들 간의 차이가 많이 커 보이죠? 대학 들어와 보니 어때요, 생각보다 없잖아요. 취업도 똑같아요. 지금 대기업에 취업한 삶이 아름다워 보여도, 그게 별 거 아니란 걸 시간이 지나면 알게 돼요."

어차피 90%는 실패하니 꿈만 좇으라는 건 무책임한 것 같아 물었다. 꿈이 자신의 게으름에 대한 면죄부가 되기도 하지 않는가. "그러니까 꿈인 거죠. 그게 멋있는 거잖아요." 그는 '리얼리스트'가 되기보다는 '불가능한 꿈'을 꾸고 싶어 했다.




하루의 대부분을 수험생들과 보내는 최진기가 보는 10대는 어떤 모습일까. "양극화가 심해졌어요. 공부 잘하는 애들은 예전보다 잘하고, 못하는 애들은 훨씬 못해요. 또 내가 정말 충격 받은 게, 강남애들이랑 강북애들이랑 교복바지 스타일이 달라요. 한쪽은 줄여 입고 한쪽은 통을 트고. 부의 동질성보다 무서운 게 문화적 동질성인데……" 그는 좌절감을 느꼈고 무서웠단다. 옛날에는 10대들이 공유하는 문화가 많았는데 지금은 너무 다르다며, "얘네들이 30대 40대가 되었을 때는 한국사회의 양극화가 더 심해질 거"라며.

"늦어서 죄송합니다"로 시작했던 인터뷰는 "학교 어디 다녀요?"를 거쳐 "기자 하지마, 그거 확실한 사양산업이야"로 끝났다. "학원선생이라 어쩔 수 없다"는 그의 습관 때문인지 인터뷰는 자꾸만 학생상담으로 바뀌려 했다. 그런데 선생이라기보다는 삼촌 같다. "존나"를 연발하며 조카를 위로하는, 잊혀져가는 영웅 체 게바라를 그리워하는 386세대 삼촌.

그의 신간을 읽으며 가장 묻고 싶었던 질문을 했다. 청춘에 대한 책인데 왜 연애 얘기가 없는가. "연애? 연애 존나 해야지. 연애처럼 좋은 게 어디 있어. 안 그래도 연애 파트를 쓰다 말았어. 근데 체 게바라의 연애관이 너무 자유로웠잖아. 아니, 책 제목이 <일생에 한번은 체 게바라처럼>인데 그걸 어떻게 써. 그런데 이건 나쁜 얘긴데, 사적인 얘긴데, 가급적 많은 사람을 만나 보는 게 좋을 것 같아. 체 게바라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