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말 한차례 퍼붓고 지나간 소나기 같았다. 국무회의 비공개 의결 처리에 대한 여론악화로 슬그머니 없던 얘기가 되어버린 한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GSOMIA) 얘기다. 협정을 둘러싼 국내의 논란은 주로 절차의 미비성에 집중되어 있었다. 청와대는 김태효 대외전략기획관이 외교통상부의 우려를 무릅쓰고 6월내 의결을 강행처리 하려다 보니 비공개 의결 처리라는 무리수를 둔 것으로 설명했다. 결국 사태는 김기획관이 사의를 표명하고, 야당이 작은 승리감을 얻어가는 것으로 일단락 되었다. 그러나 협정을 둘러싼 논란이 여야 정쟁의 소재거리로 소모되면서 정작 해당 협정 자체의 성격이나 협정이 대두된 맥락 등은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다뤄진 느낌이다. 그러나 사실상 이 협정은 미국의 대아시아 전략 및 미중간 신냉전이라는 거대한 퍼즐의 일부분을 이루고 있다. 대통령 임기 말에 벌어진 작은 해프닝이라 치부해서는 곤란한 이유다. 


시민단체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이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앞에서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7월3일자)

 
협정 추진의 배경 
 
국내 언론이 일제히 한일 ‘정보보호협정’이라는 두루뭉술한 명칭으로 보도한 이 협정은, 한일 양국 간의 군사기밀 공유를 그 목적으로 삼고 있다. 한일간 군사분야의 협력 논의는 일찍이 노태우 정부 시절부터 있어 왔으나 본격적으로 궤도에 오른 시기는 ‘3.26 천안함 침몰사건’, ’11.23 연평도 포격’등이 발생한 2010년이다. 한일 양국은 양국간 인적 교류를 주요 내용으로 한 ‘한일 국방교류에 관한 의향서’를 체결하고 줄곧 보다 긴밀한 수준의 군사협정 체결 협상을 계속해 왔다. 같은 맥락에서 2011년 1월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의 체결을 추진하기로 합의한 양국은 1년 6개월 정도의 논의를 거쳐 2012년 상반기 중에 협정을 체결하고자 했다.

한편 일본은 지난 4월 북한의 장거리 탄도미사일 발사 사실을 뒤늦게 파악하는 등 정보수집에 어려움을 겪자 한국과의 정보 공유에 한층 절박해질 수 밖에 없었다. 이에 올해 4월 23일 신경수 국방부 국제정책차장과 오노 게이이치 일본 외무성 북동아과장 명의로 협정에 가서명을 하게 된다(문화일보 7월6일자). 정부는 정식 체결을 위해 5월말 김관진 국방장관의 일본 방문을 계획했지만 야당의 반대로 보류했다. 이후 정부는 5월 31일 청와대 외교안보장관회의에서 ‘6월말까지 절차를 마무리한다’는 방침을 재확인한다. 6월 22일 법제처로부터 협정 체결에 국회 동의가 필요 없다는 법제처의 의견을 받은 외교부는, 29일로 예정한 서명 예정일까지 시간이 촉박하다는 이유로 6월 26일자 국무회의에 즉석 안건을 올려 ‘비공개’ 의결하였다. 그러나 이튿날 언론에 ‘비공개’ 의결 사실이 알려지면서 반대여론이 높아졌고, 정부는 서명 예정 시간 1시간 전에 일본측에 연기 통보를 했다. 


일본, 동북아의 미국 대리인 
 
그리하여 7월초, 국내 각 언론은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의 ‘밀실 추진’경위에 대한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해외 순방 중이었던 이대통령은 물론이고 김성환 외교부 장관, 천영우 외교안보수석 역시 비공개 처리에 대한 아무런 보고를 받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청와대가 밀실, 졸속 처리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고 협정 체결을 잠정 연기하면서  협정 논란도 지면에서 사라지는 듯 했다. 흥미로운 것은 비슷한 시기에 독립적인 사건으로 보도된 또 하나의 일본발 망언 기사다.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 직속 ‘국가전략회의 프론티어 분과회’가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가능하도록 헌법 개정을 권고하는 내용의 보고서를 제출한 것이다.

집단적 자위권은 UN헌장 51조에서 허용하는 주권국가의 권리로, 동 헌장 2조 4항의 ‘무력행사금지 원칙’에 대한 중요한 예외를 구성한다. 동맹국이 제3국으로부터 무력공격을 받을 때 자국이 공격받은 것으로 간주해 제3국을 공격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한편 2조 4항의 원칙은 국제법상 “강행규범”의 성격을 띠는 것으로 국제사회에서 인정되어 왔다. 국제조약에 관한 가장 권위 있는 문헌인 빈 협약(Vienna Convention on the Law of Treaties)에 따르면, 강행규범이란 “동일한 강행규범에 의해서만 변경될 수 있는 절대규범으로 이탈을 허용하지 않으며 전체로서의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는 규범”을 뜻한다. 

2조 4항. 모든 회원국은 그 국제관계에 있어서 다른 국가의 영토보전이나 정치적 독립에 대하여 또는 국제연합의 목적과 양립하지 아니하는 어떠한 기타 방식으로도 무력의 위협이나 무력행사를 삼간다.

긴급재난훈련을 명목으로 자위군 특수부대원들이 도쿄 거리를 행군하고 있다.(국민일보 7월5일자)

 
전후의 일본은 “국제분쟁 조정 수단으로서의 무력 행사를 포기한다” “전력의 보유와 교전권을 포기한다”라는 내용의 유명한 헌법 9조를 통해 군대의 보유와 전쟁할 권리를 포기한 바 있다. 미국의 안보 우산이 ‘헌법 9조’의 물리적 토대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일본식의 ‘보통국가화’, 헌법 9조의 무력화 움직임은 미국과 일본간 안전보장에 대한 합의가 시간을 두고 유동적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한편 미국은 클린턴-부시 1,2기 행정부에 걸쳐 동북아의 최대 골칫거리인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 애썼지만 한미 양국 정권간 협조 실패, 북한 측의 갑작스런 정세 변화 등 원인으로 성과는 전무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취임 초기부터 전임 행정부가 벌여놓은 중동의 전쟁을 수습하는데 바빠 사실상 동북아는 뒷전이었다. 아프가니스탄, 이라크의 일이 어느 정도 수습된 지금 미국은 확실히 아시아로 돌아오려 하고 있다. 그러나 그 아시아는 동북아라기 보단 아태를 의미한다. 미국이 아태로의 복귀를 우선시할 수 밖에 없는 급박한 이유 또한 있다. 남중국해에서 잇따른 중국과 인근 국가간 영토 분쟁이 그것이다. 이래저래 미국은 동북아 문제에 두 팔 걷고 나설 형편이 못 되며, 이때 가장 적합한 대리인은 일본이 되는 것이다. (다음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