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말 서로 다른 예능프로그램이 뜨거운 이슈가 되었다. 하나는 6개월만의 파업 끝내고 돌아온 국민예능 MBC의 ‘무한도전’이고 또 다른 하나는 유력한 대선후보로 주목 받는 안철수 원장이 출연한 SBS ‘힐링캠프’다. 지지자들에겐 방송을 통해 그의 진솔한 모습을 다시 한 번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그에게 호감을 갖지 않은 사람들은 방송의 내용을 혹평했다. 그 와중에 안철수 원장의 “나는 상식파”라는 발언이 다시금 세간의 주목 받고 있다. 
 

7월 23일 SBS 힐링캠프에 출연한 안철수 원장 ⓒ 연합뉴스


방송에서 진행을 맡은 이경규씨가 자신이 이념적으로 보수인지 진보인지 묻는 질문에 안철수 원장은 “보수와 진보 이전에 상식과 비상식을 구분해야 한다. 저는 상식파이다”라는 모호한 대답으로 즉답을 피했다. 상식 대 비상식이라는 그의 프레임이 이번 방송을 통해 처음 등장한 것은 아니다. 안 원장은 지난 10.26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박원순 시장을 두고 “상식과 비상식간의 대결에서 (시민이)상식의 손을 들어준 것”이라며 특유의 견해를 드러냈다. 
 
안철수 원장이 어떠한 의도를 갖고 ‘상식 대 비상식’의 프레임을 만들어 나가는지는 본인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정치인으로서의 경력이 없다는 자신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기존 정치권에서 사용하는 ‘진보와 보수’라는 프레임을 멀리 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는 자신의 저서 ‘안철수의 생각’에서도 “’낡은 체제’와 결별해야 하는 시대에 ‘나쁜 경험’이 적다는 건 오히려 다행이 아닌가”라는 발언을 통해 정치경험의 부족이라는 단점을 장점으로 바꾸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니면 정말로 그의 눈에 기존의 정치인들은 국민의 요구를 외면하고 자신의 사리사욕을 챙기는 사람으로 보였기에 자신을 ‘상식파’라 규정했을 수도 있다. 그의 의도가 어찌되었든 “나는 상식파”라는 발언을 두고 안 원장의 지지자들은 “통쾌하다.” “알기 쉽다.”며 호평을 쏟아내고 있다.
 
안철수 원장이 순수한 의도에서 자신이 원칙을 지켜온 삶을 살아왔고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를 상식파로 규정했다 하더라도 "나는 상식파"라는 발언은 정치의 언어로써는 적합하지 않은 선택이다. 정치는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공간이다. 정치를 상식 대 비상식으로 구분하는 이분법적 사고가 만연하게 되면 민주주의의 가치를 후퇴시킬 가능성이 높다.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은 토론과 합의로 이 둘은 상호간의 합리성을 인정하는 단계에서 출발한다. 나의 가치를 상식으로 규정하게 된다면 자연스레 상대의 가치를 비상식으로 정의되고 그 공간에서 더 이상 토론과 합의가 발을 붙일 여지는 없을 것이다. ‘상식 대 비상식’의 정치는 자연스레 정치의 공간을 축소시키고 민주주의를 후퇴시킨다. 
 

박원순 당시 후보를 지원방문한 안철수 원장 ⓒ 연합뉴스


정치적 견해가 다른 상대파의 합리성을 인정하지 않을 때 민주주의에 어떤 비극이 닥치게 되었는지는 우리의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다. 권위주의 시대의 지도자와 정치인들은 스스로를 ‘한국식 민주주의’같은 모호한 단어로 규정하고 자신의 정치적 반대파를 소위 ‘빨갱이’로 매도했다. 정치엔 ‘아군’과 ‘적군’만이 남게 되었고 토론과 합의보단 배제와 강제의 정치가 수십년간 이어졌다. 87년 이후 합법적인 선거를 통해 정권교체의 가능성이 열렸고 진보와 보수세력이 각각 정권을 교체하는 경험을 갖게 된 후에야 서로가 ‘빨갱이’나 ‘매국노’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들이 이제야 존중되기 시작한 시점에서 ‘상식 대 비상식’의 구도가 정치를 집어삼킨다면 한국의 민주주의는 다시 뒷걸음칠지도 모른다. 
 
한국의 정치가 발전적인 토의 없이 지나친 이분법적 사고 속에서 구태의연한 반목을 지속해온 것 또한 엄연한 사실이다. 정치를 처음 시작하는 안철수 원장과 대다수의 국민들의 눈에 이러한 모습이 부정적으로 비추어졌을 것이다. 안 원장이 좌우파의 정치를 거절하고 상식의 정치라는 키워드를 들고 나오고 국민들이 이에 열광하는 이유 또한 충분하다. 그러나 과도한 이분법적 사고가 문제가 되었듯이 의견의 구분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 또한 새로운 문제를 만들 수 있다. 민주주의의 세계는 서로 다른 신념을 가진 사람들의 다원적인 가치가 존재하는 공간이다. 내 가치가 소중한 만큼 상대의 가치도 소중하다고 인정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는 시작조차 할 수 없다. 안철수 원장이 애매모호한 단어가 아닌 구체적인 설계도를 통해 새로운 정치를 열망하는 대중의 지지에 화답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