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는 나쁜 건가?

지난 712, 포털 다음 만화속세상에 신작웹툰이 나왔다. ‘나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라는 제목의 신작웹툰은, 의미심장했던 제목처럼 예고편부터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작가가 현존하는 유흥업소인 텐 프로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서울의 밤이야기를 (15세 관람가로)풀어내겠다고 적었기 때문이다. 이를 본 누리꾼들은 댓글에 다음과 같은 불만을 터뜨렸다.

다음 만화속세상

 

누리꾼들의 거센 항의에 다음(DAUM)은 해당 웹툰을 19세 관람가로 지정하고, 해당웹툰에 대한 해명을 하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 그렇게 사건은 마무리되었으나, 댓글은 남았다. 웹툰에는 수많은 댓글이 달려있었고, 그 중 추천을 받아 베스트로 등극된 댓글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성매매에 적대적이었다.

우리는 성매매에 적대적인 베스트 댓글들과 높은 추천수로부터 무엇을 볼 수 있는가. 바로, 현재 성매매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인식이다. 댓글을 쓴 누리꾼이 우리 국민의 전부를 대변할 수는 없지만, 많은 국민들이 성매매에 대해 부정적이고 적대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어느 정도 인정할 수 있는 사실이다. ,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을 하나 던져보자. 그들의 말처럼 성매매는 정말 정당화 될 수 없는 나쁜 것일까. 또한 성매매 종사자는 절대 미화될 수 없는 사람인가.

   

성욕이 나쁜 거라고? 자연스러운 거지!

일단 성매매가 이루어지는 근본적인 원인부터 되짚어보자. 군소리 할 것 없이 성욕이다. ‘성욕은 인간이라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세 가지 욕구 중 하나다. 다시 말해, 성욕은 필수적인 본능이다. 그런데 여기서 성욕은 나머지 두 욕구와는 다른 취급을 받는다. 식욕과 수면욕의 경우, 과하거나 부족하지 않다면 해당욕구를 해소하는데 별다른 제지가 없다. 그러나 성욕은 항상 절제의 미덕을 강요받는다. 어째서?

뉴시스

한국의 윤리정서에 따라 우리는 을 입에 담기 조심해야하고, ‘성욕을 경멸해야한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윤리라는 고정관념은 우리에게 성욕은 나쁜 거니까 억제해!’라고 명령한다. 그러나 윤리의 문제에서 ?’라는 질문은 가끔 묵살된다. 왜냐하면, 당연한 것이니까. 그러나 강요를 이기고 윤리와 대면한다면, 우리는 성욕이 왜 나쁜지윤리가 설명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쉽게 말해 우리는 속았다. 성욕의 해소는 나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일 뿐이다. 마치 식욕과 수면욕이 우리에게 자연스러운 것처럼 말이다.

물론 성욕을 인정하느냐, ‘성욕을 해소하기 위한 성범죄를 인정하느냐는 전혀 다른 문제다. 성욕해소를 위해 상호동의 없는 성범죄를 저질렀다면, 중벌을 받아 마땅하다. 이는 모두가 동의 하리라고 생각한다.

 

 성노동이다.

성욕은 나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명확하다. 그렇다면 왜 성욕을 해소하는 성매매는 나쁜 것이 되어버리는가. 성매매를 경멸하는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성은 고귀한 것이기 때문에, 성을 사고파는 것은 옳지 못하다.’ 그러나 성행위를 사고판다고 해서, 자체를 파는 것도 아닐뿐더러 성의 고귀함과 가치가 사라지는 것 또한 아니다. 과연 많은 사람들이 성매매가 이루어지면 안 되는 이유로 꼽는 성의 고귀함혹은 몸이라는 매매할 수 없는 가치가 실제로 성매매를 통해 퇴색되는가.

이 고귀한 이유는, 인간의 생명을 탄생시키는 단일하고 유일한 방법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행위를 사고팔면 갑자기 인간의 생명을 탄생시키는 성의 역할에 무언가 문제가 생기는가. 그렇지 않다. 그렇다고 이 오직 생명의 탄생을 위해서 작용해야만 의미가 있는가. 피임을 위해 쓰이는 수많은 콘돔을 생각해보면, 그것도 아니다.

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이제까지 필자가 말한 의 의미로부터 성매매 종사자를 성노동자라고 불러야만 한다는 점을 도출해야한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 즉 우리의 남성과 여성이란 어떻게 사고 팔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머릿속에서 맴도는 매물은 성이 아니라 성행위 혹은 성노동이어야 한다. 성매매라는 단어에는 성행위의 매매성의 매매로 유도하는 기능이 있기에 우리가 성노동자들을 성매매 종사자라고 부르는 순간 성노동자가 성행위가 아닌 을 팔고 있다고 생각하도록 하는 일종의 경향성에 따른다. ‘몸을 판다라는 말 또한 마찬가지로, 진실로 육체를 파는 것이 아니라 행위력을 파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자신이 가진 단 하나의 육체를 팔아버리는 듯한 느낌을 준다.

성행위가 노동으로 작용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이렇게 생각해보자. 사실상 성노동자는 개그맨 혹은 마사지·안마 관련 종사자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성매매 종사자가 행위를 통해 성적쾌락을 판다면, 개그맨은 웃음 혹은 재미라는 쾌락을 팔고, 안마 종사자는 상쾌함 혹은 개운함이라는 쾌락을 판다. , 세 직종 모두 노동(1. 사람이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얻기 위하여 육체적 노력이나 정신적 노력을 들이는 행위, 2. 몸을 움직여 일을 함. 네이버 어학사전)을 했을 뿐이다. 단지 성행위/성노동에 이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것이 노동이 될 수 없다고 말하기 힘들다. 청소노동자, 안마노동자 등과 많은 노동자처럼, 성노동자 또한 스스로 이미 한 명의 노동자다.

 
- 성노동자의 권리, 그들이 정말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앞서 언급한 관점 이외에, 현재 성노동을 하고 있는 분들의 인권을 위해서라도 성노동의 인정은 분명 필요하다. 일단 성노동의 음지화로 인한 피해를 어느 정도 막음으로서 성노동자의 인권을 보장할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쉬쉬하는 한국의 분위기 덕분에 성노동은 지속적으로 음지화가 되어왔다. 이렇게 음지화 된 상태에서 성노동자들은 인신매매 혹은 노예계약 때문에 그곳을 빠져나가지 못하거나, 성병에 걸리기 일쑤다. 그러나 성노동을 어느 정도 양지로 끌어 올린다면, 성병에 대한 진단과 처방 등을 용이하게 할 수 있으며, 불법적 계약 또한 음지화 되었을 때에 비해 수월하게 제제할 수 있다. (음지화된 성노동을 양지화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국가에서 직접 성노동자들을 관리하는 공창제의 방식과 현재 불법인 성노동을 비범죄화 시키는 방식으로 나눌 수 있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두 가지 방법 중 무엇이 성노동자의 인권을 지키기에 적합한지에 관해서 다루지 않고, 일단 공창제의 방식을 차용하였다.)

일요시사

또한, 궁극적으로 성노동자가 스스로의 권리를 깨닫고 주장할 수 있게 된다. 사실상 성노동자 중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 이유로 성노동에 종사한다. 혹자는 성노동자가 본래 그 직업을 원하지 않았음을 근거로 성노동자를 직업으로 인정하기를 부정하지만, 수많은 노동자들이 흥미/적성/의지보다 경제적 이유로 자신의 직업에 종사하는 것을 고려한다면, ‘진정한 적성을 발휘하는 직업이 아니니까 그건 직업이 아니야라고 하는 말은 어폐가 있다. 세상에 몇이나 적성이 맞아 막노동판에서 일을 하겠는가.

안타까운 것은 성노동자를 부정하는 사람들로 말미암아 발생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성노동자를 스스로 위축하게 한다는 것이다. 성노동자는 노동자. 그들은 노동자, 그리고 인간으로써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 우리는 성노동자를 한명의 노동자로 인정하고 존중해야 하고, 성노동자는 인정과 존중을 통해 스스로 떳떳해져야 한다. 둘 중 어느 한쪽이 포기한다면 사회는 변하지 않는다. 우리가 불편한 진실과 맞닥뜨리고 불합리함을 깰 때야 비로소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인간다운 삶을 살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