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정치, 사회 쪽의 견해가 꽤 상반되는- 조금 과장하여 말하면 ‘평행선을 달리는’ 친구가 한 명 있다. 보통 이럴 경우 서로의 지향점이 워낙 달라 몇 번 이야기하고 크게 다투거나, 그게 아니면 아예 입을 꾹 닫게 마련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우리는 여전히 어떤 문제에 대한 생각을 자유롭게 나누고 있다.


 대학생이 예전만큼 ‘지성인’으로 추앙 받지 않는, 지나치게 수가 많아 흔해져 버린 지금은 사회 문제에 대한 견해를 나누는 것 자체가 그리 익숙한 일이 아니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서로의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건 어쩌면 행운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 친구와 내가 다른 지점에 시선을 두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되풀이한 것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어떤 부분에서 타당성이 부족했고, 상대방의 주장 어느 부분이 나를 ‘찌르는지’를 제대로 느꼈던 특별한 시간으로 받아들였다. 2008년을 뜨겁게 달구었던 촛불집회에서부터 전교조, 쌍용차 노동조합 파업, 대표적으로 보수/진보로 언급되는 언론에 대해서까지 이야기를 했는데, 보통은 확실한 답이 내려지지 않은 채로 끝이 났다.


  여러 가지 생각이 공존하며, 서로 섞이고 스며들다가도 아프게 부딪치기도 하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보는 나는 이런 답 없는 토론이 좋았다. 생각의 차이는 느낄 수 있는 동시에 어떤 문제에 대해 각자가 가진 또렷한 신념까지 알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얼마 전 맥 빠지는 일이 벌어졌다. 한 사안에 대한 생각을 때로는 옳고 그름의 문제로 판단하는 내 방식에 정면도전해 버려 이야기가 더 이상 이어질 수 없었던 것이다(이때 난 뉴라이트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냈었다).


※ 출처 : http://pds17.egloos.com/pds/200911/07/19/d0099319_4af450871a41c.jpg  



 나는 사람들이 가진 다양한 생각을 무시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존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존중’이 모든 상황에서 적용된다고 보지는 않는다. 어떤 문제에 대해 입장을 드러낼 때 그것을 ‘다른 의견’이 아니라 ‘틀린 생각’으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다는 말이다. 함께 이야기 나누는 친구는 당연히(?) 이의를 제기했다. 옳고 그른 것은 결국 주관적인 판단이기에 수학, 과학처럼 답이 완벽한 것이 아닌 이상 얼마든지 여러 가지의 시각 차이가 발생할 수 있으니 그것을 존중해야 한다고.


 그 친구의 말은 수업시간에 반복해서 들었던 가르침과 방향을 같이 했다. ‘언제나 열린 마음으로 대화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무시하지 말고, 다양한 시각 생각을 모두 존중해야 한다’는 가르침 말이다. 실제로 나 역시도 그런 태도가 타당하다고 여겨 괜히 타인과의 대화에서 내 의견을 조금 덜 드러낸 적이 많았다. 그런데 어느샌가부터 괜히 오기가 생겼다. ‘왜 난 항상 꼭 남의 의견을 존중하며 내 입장까지 중립적인 체 해야 하는 거지?’ 하는 불만이 고개를 들고 만 것이다.




※ 출처 :
http://fsis.go.kr:8084/file/editor/file/EMB00000fb4065e.jpg



 어느 주요 일간지에 따르면 요즘의 20대들은 G세대로 지칭되며 ‘세상에 열려 있지만, 내가 세상의 중심’이라는 가치관을 지녔다고 한다. 그런데도 왜 나는 그 동안 주관적인 판단으로 말미암은 개인적인 견해를 드러내는 데 머뭇거렸을까. ‘쟤 은근히 편협하다’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는 타인의 경계 어린 시선 앞에 당당하지 못했던 건 아닐까. 어쩌면 기계적인 중립을 지키려 애쓰는 것이 더 솔직하지 못한 태도였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가끔씩 내가 선택한 방향이 맞는지 뒤를 돌아보며 고개를 갸웃하기도 하지만, 앞으로도 이런 삶의 방식을 바꿀 생각은 없다. 그리고 사소한 일에서도 적당히 간격 좁히며 소극적으로 의견을 표출했던 많은 이들에게도 이런 태도가 나쁘지 않다고 강변하고 싶다. 오히려 확실한 자기 생각이 없기에 논의는 활발하고 건설적으로 진행되지 않고 양시론, 양비론에서 어설프게 봉합된 채 끝난 적이 더 많지 않았던가? 혹시나 편협하다는 오해를 받을까봐 그 동안 기계적인 중립을 지키며 내 안의 목소리를 무시해 왔다면, 그것이 더 비겁한 행동이 아니었을까? 더 이상 물에 술 탄 듯, 술에 물 탄 듯 사람들과의 어우러짐을 위해 내 주관을 희생하고 싶지 않다. 걱정하지 않는다. 조금은 편협해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