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는 긴 제목에도 불구하고 -혹은 폭력은 어떻게 발생하고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라는 거창한 부제목이 더 눈길을 끄는 소설이다.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폭력은 무엇이며 그 과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이 책의 폭력은 바로 언론의 폭력이다. 

1974년 2월 20일 수요일, 독일전통 카니발 축제에서 저녁 6시 45분경 한 여인은 지인이 주최하는 댄스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집을 나선다. 그리고 나흘 후 저녁, 그녀는 발터 뫼딩 경사의 집 초인종을 누른다. 그리고는 자신이 자기 아파트에서 베르너 퇴트게스 기자를 총으로 살해했다고 자수한다. 그녀는 조금도 후회하는 바가 없다고 이야기 한다. 자수를 하기 전 후회의 감정을 느껴보기 위해 시내를 이리저리 배회했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이야기 한다.

그녀는 어쩌다 살인까지 저지르게 되었는가?

주인공의 이름은 카타리나 블룸. 그녀는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 가정관리사로 일하면서도 자기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27살의 젊은 여자였다. 늘 성실하고 진실한 태도로 주위의 호감을 사던 총명한 여인 카타리나가 도대체 왜 살인을 저질렀을까. 이 살인 사건의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 화자는 2월 20일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닷새간의 그녀의 행적을 재구성하여 이를 보고한다. 수요일 저녁 카타리나 블룸은 한 댄스파티에 루트비히 괴텐이라는 남자를 만나 첫눈에 반했고 함께 밤을 보낸다. 그는 그녀가 기다리던 보기 드물게 진실하고 다정한 남자였다.

하지만 그 이튿날 경찰이 그녀의 집에 들이닥쳐 가택 수색을 벌이더니 급기야 그녀를 연행하기에 이른다. 괴텐은 은행강도에 살인 혐의까지 있는 인물로 그동안 계속 언론과 경찰에 쫓기고 있었다는 것. 그런 괴텐을 경찰이 카타리나의 아파트를 봉쇄하면서 체포할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이튿날 그의 행적이 묘연해지자 그녀를 연행한 것이다. 그리고는 카타리나가 경찰의 조사를 받고 있으며 괴텐과 자신의 행적에 대해 묵비권을 행사 중이라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그녀는 세간의 호기심의 대상이 된다. 

 
그녀를 화제의 중심으로 만든 언론은 “차이퉁”지다. 차이퉁 지의 기자는 카타리나에 대한 행적을 알아내기 위해 그녀의 변호사를 찾아가 그녀에 대해 다짜고짜 부정적인 말을 지껄여 대기 시작했다. 이에 불쾌함을 느낀 변호사는 그녀를 보호하기 위한 말을 하였고 이러한 변호사의 말은 신문기사에서 이용되고 왜곡되어 오히려 그녀를 추잡한 여자로 만들었다. 

“강도의 정부(情婦) 카타리나 블룸이 신사들의 방문에 대한 진술을 거부하고 있다. (중략) 이제 겨우 스물일곱 살인 가정부가 어림잡아도 110,000마르크나 나가는 아파트를 어떻게 소유하게 되었나? 그녀가 은행에서 강탈한 돈의 분배에 관여했나? (중략) <<차이퉁>>은 언제나 그랬듯이 이 사건을 계속 추적, 보도한다! 배후 관계에 대한 전반적인 소식은 주말 판에서.”  -차이퉁지의 보도 묘사 中-


황색 저널리즘이란, 대중의 원시적 본능을 자극하고 호기심에 호소하여 흥미본위의 보도를 하는 센세이셔널리즘(Sensationalism) 경향을 띠는 저널리즘이다. 내용에 있어서 모든 방면에 선정적인 사실을 소재로 하고 천박한 내용의 기사를 주로 담은 언론을 두고 하는 말이다. 당시에는 미디어가 대중화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전후로 정신적으로 피폐해졌을 때라 대중들이 언론에서 담은 말들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은 초기 황색 저널리즘에 의해 처참하게 유린당한 개인의 명예에 관한 보고서와도 같다.

“(중략) 어머니는 죽어가고 있는데 그 딸은 강도이자 살인자인 한 남자와 다정하게 춤추었다는 것 자체가 이미 너무 기이한 일이고, 그녀가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전혀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는 것은 거의 극도의 변태에 가깝다. (중략) 이제 최종적으로 확실해진 사실은, 카타리나 블룸이 피로 물든 괴텐의 도주를 도왔다는 점이다. (중략) 블룸은 좌파 그룹의 지령에 따라 틀림없이 S.의 경력을 파괴해야 했을 것이다.” -차이퉁지의 보도 묘사 中-


글의 카타리나는 당시 괴텐과 하룻밤을 보내고 나서 그를 탈출시키기 위해 하수도배관을 통해 아파트를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도와줬다. 그리고 카타리나에게 치근덕대던 신사의 별장 열쇠를 괴텐에게 주면서 그의 은신에 공범역할을 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아챈 경찰은 괴텐이 숨어있는 은신처를 습격해 체포한다. 결국은 공범혐의와 살해혐의까지 있는 카타리나와 괴텐이 같이 구속이 되기에 이른다.

물론 이 상황을 객관적으로 봤을 때 이 부분에서 카타리나의 잘못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다. 혐의의혹이 있는 용의자를 은신시키는데 일조하고 과정이 어떻게 되었든 살인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차이퉁”지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 아니라 “차이퉁”지 만의 사실을 만들어 보도한다. 두 세줄 정도의 문장만으로도 카타리나의 혐의를 고발할 수 있었지만 위의 보도묘사에서 볼수 있듯이 변태에 가깝다라거나 뜬금없는 좌파 그룹의 지령 등의 말로 "차이퉁"지가 주장하는 사실과 카타리나의 진실이 다름을 보여준다. "차이퉁"지는 그 과정에서 한 개인의 명예가 추락할 만큼 추락했고 소박하기 짝이 없던 그녀는 살인까지 저지르게 되었다. 그녀의 명예는 회복되지 않은 채로.
 

누구를 위한 언론인가?
 



언론의 힘은 대단하다. 이 책이 쓰인지 30년이 넘었지만 이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는 것은 슬픈 일이다. 바로 우리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얼마 전 소속사 계약 체결로 방송복귀를 점치고 있는 국민MC 강호동. 그는 최고의 MC자리에서 잠정 은퇴라는 현재의 위치까지 왔다. 그의 탈세혐의 의혹과 종편행에 대한 루머로 시청자들로 하여금 배신감을 들게 했지만 이를 조장한 것은 바로 언론이다. 이른바 마녀사냥. 상대가 누가 되었든 간에 실제로 마녀를 사냥하는 것은 수용자일지라도 마녀를 사냥할 수 있게 손에 무기를 쥐게 해주는 것은 언론이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이런 것이 정도가 심해지면 “사실(Fact)”는 더 이상 중요치 않게 된다는 점이다. 약간의 이 사실들로 추리해내고 공상 해낼 수 있는 좀 더 선정적인 예상들과 좀 더 눈길을 끄는 자극적 멘트. 그리고 이런 입맛에 맞는 기사를 위해 기존의 사실들이 선정적으로 보이게끔 왜곡되고 오도되기 시작한다. 그렇게 알권리라는 명목 하에 한 개인의 인권은 종말을 맞이한다.

그래서 게이트 키퍼(Gate keeper)역할을 하는 기자라는 존재가 중요하다. 기자는 자신이 쓰고 싶은 기사를 써야 하는 것이 아니라 수용자가 알아야할 사실만을 기사로 써야 한다. 또 사실이라는 것도 관점에 따라 그 가치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보수정당의 대선후보가 보수언론에서는 환영받고 진보언론에서는 비판을 받는것 처럼. 이 책은 기자 지망생들이 자신들이 기사를 어떤 관점에서 쓰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질수 있고 곧한 개인의 명예를 좌우할 수 있음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경각심을 일깨워준다.  
 


30년전의 언론, 지금과 무엇이 다른가

이 책의 서두에는 이런 말이 있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인물이나 사건은 자유로이 꾸며낸 것이다. 저널리즘의 실제 묘사 중에 <<빌트>>지와의 유사점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의도한 바도, 우연의 산물도 아닌 그저 불가피한 일일 뿐이다.”

작가는 소설 앞에서 이 이야기가 허구임을 밝히고, 실제 “빌트”지를 염두에 두고 쓴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빌트”지와의 유사성을 강조한 셈이 되었다. 그래서 당시의 “빌트”지가 보였던 ‘눈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폭력’. 즉, 언론의 폭력을 이야기하고 있다. 가정관리사로 성실하게 일하면서 근검절약으로 아파트까지 소유하고 있는 스물일곱 살의 이혼녀 카타리나 블룸의 개인적인 명예가 언론의 폭력에 의해 처참히 짓밟히고 그 결과 그녀가 기자를 살해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살해라는 ‘눈에 보이는 명백한 폭력’을 초래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폭력’을 다루는 것이다.

이 작품은 독자들의 저속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선정적인 언론이 어떻게 한 개인의 명예와 인생을 파괴해 가는가를 처절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결국 그것이 언론사 기자의 피살로 이어지는 폭력의 악순환을 보여준 것이다. 카타리나 블룸처럼 평범한 개인이 “살인범의 정부”나 “테러리스트의 공조자”가 되고 마는 과정은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아도 결코 낯설지 않은 장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