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한데 쉴 곳이 없어요

방학기간에도 과독서실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보인다. 열심히 공부해 피곤한 탓인지 책상에 엎드려 자는 남학생들이 간간히 보이지만, 여학생들의 경우 책상에 엎드려 자는 경우가 많지 않아 보인다. 대부분 한 건물에 하나 꼴로(학교마다 사정이 다르긴 하지만) 여학생 휴게실이 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학기 중에도 휴게실의 유무 때문에 몇몇 남학생들이 불만을 토로했던 것이 떠오른다. 여학생에 경우, 일과시간 혹은 시험기간에 받은 피로감을 잠깐의 낮잠으로 풀 수 있지만, 남학생들은 과방에 배치된 의자에 눕거나 책상에 엎드려서 자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여학생 휴게실은 부러움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여학생 휴게실은 필요한데

생리통이라는 아픔을 인식하고 그들을 위한 공간을 만드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여성복지에 대한 인식이 일반화된 덕분에 경희대, 목포대, 부산대, 서울대, 연세대, 전남대, 한양대 등 전국에 있는 대부분의 대학교에는 이제 여학생 휴게실이 필수 공간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그런데, 여학생 휴게실이 생리통의 완화를 위해서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였거나, 감기 등의 병으로 인하여 약해진 심신을 쉬게 하기 위해 쓰이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면 휴게실이 이러한 ‘단순 휴식’을 위해서도 사용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남학생 휴게실 또한 있어야하는 것이 아닐까. 현재 남학생 휴게실이 존재하지 않고 여학생 휴게실만 존재하는 표면적 이유는 '생리'다.

한 남학생이 과방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을지대 여자휴게실 [출처 :http://eulji_univ.blog.me/120140718334]




졸리고 아픈데 어디서 쉬어야 하죠?

남학생 휴게실의 필요성을 말하기 위해서는 일단 남성과 여성을 떠나서 ‘단순 휴식을 위한 휴게실이 필요한가.’의 문제가 선결되어야 할 것이다. 과연 학교에 단순 휴식을 위한 장소가 있어야만 할까. 휴게실 자체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이들은 ‘학교가 공부하는 공간인데 잠자는 공간을 뭐 하러 만들어주어야 하느냐’고 말한다. 그러나 학교가 공부를 위한 공간이라고 해서 휴식을 위한 공간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니다.

휴식공간은 복지다. 헌법 제10조에 명시되어 있듯,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수 있고, 국가는 이를 보장해야한다. 기본적으로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많은 학교는 사람답게 공부할 수 있는 곳이 되지 못하는 듯하다. 요즘은 스펙이다, 학점이다 하면서 수많은 학생들이 중앙도서관이나 학과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특히 시험기간이 되면 과열된 학구열 덕분에 도서관에서 다 못잔 잠을 원망하며 눈을 붙이는 학생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이(특히 남학생들이) 편히 누워 피로를 풀 장소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학구열뿐만이 아니라 흔한 잔병치레도 학생의 수면이 필요한 이유다. 그렇지 않아도 출석을 학점에 반영하는 경우가 많은데다가 병결을 할 경우 출석으로 인정해주지 않는 교수도 있기 때문에 아픈 몸을 이끌고 수업에 들어오는 학생들이 많다. 물론 그들은 대부분 수업시간에도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고 졸거나 힘들어한다. 여학생휴게실이라도 있다면 남는 공강시간을 이용하여 조금이라도 쉴 수 있지만, 남학생의 경우는 대부분 수업을 포기하지 않으려면 하루 종일 끙끙대야하는 것이다.


쉬면서 해야 공부도 잘 한다

물론 학생들의 휴식을 위해 각과마다 ‘과방’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하였던 ‘아픈 경우 혹은 정말 졸릴 경우’에 과방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이 그들의 상태를 호전시키기 힘들다. 소파마저도 없는 과방이 존재할뿐더러(물론 있더라도 많은 사람이 쉴 수도 없고), 과방 자체가 ‘조용한 휴식’을 위한 공간이 아니기에 많은 학생들의 대화소리로 편히 쉴 수 없기 때문이다.

학생이 입시와 취업을 위한 기계가 아닌 사람이라는 것을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학생들이 졸리고 힘들고 아프다고 말하면 참고 이겨내야 한다고만 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이 과연 바람직한가. 필자는 지성의 전당이라 불리는 대학에서 ‘아프건 졸리건 알아서 공부하라’는 것이 그리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공부건 일이건 간에 하는 사람이 건강해야 할 수 있는 것이다. 오히려 공부를 위해 휴식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남학생은 더럽고, 아무데서나 쉬어도 되나요

더욱 안타까운 것은 남자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 때문에 남학생들의 휴식이 상대적으로 홀대받는다는 것이다. 남학생 휴게실 개설에 대해 (남학생 휴게실이 없는)충남대에 재학 중인 강모군은 “남자들은 아무데서나 쉴 수 있어서 굳이 필요치 않은 것 같다.”고 말했으며, 숭실대와 충북대에 각각 재학 중인 이모군과 정모군은 “남학생 휴게실을 만들면 담배를 피우거나 술판을 벌여 난장판이 될 것이다.”라며 부정적인 견해를 표했다. 이는 남자에 대한 무의식적인 견해, 예컨데 ‘남자는 아무데서나 자도 괜찮다’ 혹은 ‘남자는 깨끗하게 공간을 쓰지 못 한다’와 같은 생각이 남성들 스스로에게까지 내재해 있음을 보여준다.

우선, 과연 남자는 아무데서나 쉬어도 되는가? 남성이 여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육체가 튼튼하다는 것은 옳다. 그러나 남성이 여성에 비해 육체가 튼튼하다는 것이 ‘수면을 위한 휴식공간이 없어도 된다.’는 것으로 확장될 수는 없다. 남성도 편히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권리를 분명 가지고 있다. 상대적으로 튼튼하다고는 하지만 남성이 항상 아프지도 않고 졸리지도 않은 괴물은 아니지 않은가. 남성은 아무데서나 자도 충분하다는 인식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라는 전제에서부터 어긋났다.

또한 ‘남자가 깨끗하게 공간을 쓰지 못 한다’는 인식 또한 옳지 않다. 남학생 휴게실이 있는 것으로 확인된 가톨릭 대학교에 재학중인 서모군에 경우 “우리 대학교의 남휴게실은 잘 운영되고 있다. 소란을 피우면 쫓겨나며, 기숙사에 살지 않거나 집이 먼 사람들이 시험기간에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고 하였으며, 건양대학교 관저캠퍼스에 재학중인 전모군은 “휴게실에서는 정말 딱 잠만 잔다. 음식물도 반입금지이며, 소란을 피울 수 없다.”고 말하였다. 이는 “우리 학교의 남학생 휴게실은 제대로 관리가 안 되어있지만, 여학생 휴게실 또한 관리가 안 되어있는 곳은 정말 더럽다고 한다,”고 증언한 경희대 안모군의 발언과 함께 생각해 보았을 때, (소란을 피우면 안된다거나, 음식물 혹은 담배의 반입을 금지한다거나 하는)관리가 제대로만 되어있다면 성별과 관련 없이 청결하고 조용한 휴게실 사용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제는 남학생 휴게실도 함께 존재해야

학생의 복지를 위해서 성별과는 별개로 휴식공간은 항상 필요하다. 또한 아직은 일반화되지 않은 남학생 휴게실도 필요하다. 학생은 쉬지도 못하고 공부하기 위해 대학에 온 것이 아니며, 남성은 아무데서나 쉴 수 있도록 태어나지 않았다. 사회가 조금 더 학생들의 인권과 복지를 중시하고 성별의 벽을 뛰어넘을 수 있을 때, 학생인권은 한 발자국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