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 30일,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한성백제박물관이 개관했다. 한성백제박물관의 '한성 백제'의 기원은 삼국시대의 국가 백제가 첫 도읍을 정할 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백제는 한강 유역 '하남 위례성'에 첫 도읍을 정했고, 도읍이 번성하자 '한성'으로 이름을 고쳤다. 이 때까지 경기도 광주, 서울 풍납동, 올림픽공원의 몽촌토성, 남한산성 등 다양한 곳들이 그 위례성이라고 주장되어 왔지만, 정약용은 자신의 저서에 '경기도 광주가 백제의 위례성이다'라는 말을 남겨 경기도 광주가 위례성이라는 주장이 대세였다.

 그러나 1997년 이후 풍납동에서 다양한 유물들이 출토되면서 풍납동이 위례성의 정확한 위치라는 지적이 힘을 얻었다. 또한 송파구 방이동에는 백제 초기의 무덤양식을 가진 무덤들도 있어 '하남 위례성'이 서울 남동쪽에 위치했다는 것이 기정사실화 되었다. 그리하여 서울시는 서울 곳곳에서 출토된 유물을 위주로 '한성백제박물관'을 건립했다. 한성백제박물관이 지어진 올림픽공원은 몽촌토성을 둘러싸고 있는데, 몽촌토성 또한 한성백제가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올림픽공원에 위치한 한성백제박물관



화려하고 깔끔한, 한성백제박물관


한성백제박물관은 크게 3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아랫층에는 실제로 발굴된 풍납토성의 일부분을 가져와 복원한 대형 작품을 전시해 놓았다. 1층에는 특별전시(현재는 개관 기념 전시 <백제의 옷맵시>라는 특별전이 진행되고 있다)와 선사시대의 유물을 전시한 상시 전시가 있다. 2층과 3층은 대부분 한성백제 시절의 유물들과 한성백제 발굴과 관련한 것들이 전시되어 있다. 어린이들을 위해 흥미거리가 될만한 게임기나 영상물을 준비되어 있고, 아랫층에서는 어린이, 중고생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까지 거의 매일 진행되고 있어 박물관이 전체적으로 틀이 잘 잡혀있다는 인상을 준다.


그런데 주의 깊게 살펴본다면, 한성백제박물관 안에 가득한 '풍납토성'이라는 이름에서 '역사보존'과 '지역발전'의 싸움에 대한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다. 한성백제박물관의 주요 전시물들은 현재 서울시 송파구 풍납동에 위치한 유적들에서 발굴된 것이다. 입구로 들어가면 마주치게 되는 웅장한 토성도 풍납동에서 발굴한 것을 복원한 것이다.

풍납토성을 이동, 복원한 전시물



화려한 한성백제박물관과 개발 제한에 묶인 풍납동

그렇다면 한성백제박물관에서 이렇듯 강렬한 존재감을 보여주는 풍납동은 어디고, 무엇일까.
풍납동은 서울 송파구의 오른쪽 끄트머리에 위치해있다. 올림픽공원과도 맞닿아 있으며, 거리는 불과 2km정도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풍납동에서는 확실히 곳곳에서 풍납토성을 찾을 수 있었다. 그다지 높지는 않지만 긴 풍납토성들이 동 곳곳을 둘러 싸고 있는 형태였다. 풍납토성 아래에 산책로가 있어 주민들이 많이 이용하고 있었다.

풍납동 내 풍납토성의 일부


 
문제는 이 풍납토성과 땅에서 나오는 유물 때문에 풍납동 주민은 10년이 넘는 긴 싸움을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현재 풍납동에는 높은 건물을 찾아볼 수 없고, 새로운 건물도 찾아보기 어렵다. 한강이 바로 옆이고, 지하철역도 있으며 잠실과 천호라는 큰 동네가 지척이라 많이 발전이 됐을법도 하지만 풍납동만큼은 공사중인 곳도, 새로운 건물도 거의 없다.

이는 1997년 당시 아파트 재건축 공사 중 쏟아져 나온 유물로 인해 풍납동이 백제의 첫 수도 '하남 위례성'의 유력한 후보로 떠오르자 문화재청에서 풍납동의 대부분을 '문화재 관리 구역'으로 지정한 데에서 시작되었다. 그 이후 건물 층 수 제한(3층이었으나 현재는 5층으로 완화되었다)과 같은 개발 제한이 생겼다. 또한 개발의 대상이 될 만한 빈 땅들은 유물 발굴 작업에 들어갔다. 그 외에 유물이 있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곳은 주민과의 합의 하에 건물을 철거한 후 유물 발굴 작업에 착수했다. 그 결과 풍납동의 곳곳에는 주변 풍경과 맞지 않는 빈 공터가 생기고 재건축, 재개발과 멀어진 상태다. 그러다보니 지리적 이점에도 개발업자가 손을 대지 않아 땅값이 옆 동네들에 비해 낮다. 이에 대해 풍납동에서 살고 있는 20대 H씨는 "내가 고등학생 때 유물을 파야된다고 집을 철거했다. 보상금을 받아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가긴 했지만 그런 이사가 즐거울 리는 없다. 풍납동의 현실이 답답하긴 하다"며 심정을 털어놓았다. 
 

최근까지 상가건물과 주택이 있었지만, 유물을 발굴하기 위해 철거되었다



초기에는 많은 주민들이 '알아서 보상해주겠지'라는 생각으로 기다렸다고 한다. 그러나 문화재 관리 구역으로 묶인 이후 정부나 문화재청에서는 별 소식이 없었고, 결국 '풍납동대책위원회'가 발족되었다. '풍납동 소식'이라는 인터넷 카페를 2006년 개설해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그들은 송파구와 서울시에 끊임없이 민원을 제기하고, 다양하게 시위를 하기도 했다. 올해 초 한성백제박물관이 건립된 날 박물관 앞에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문화재 살리다 지역주민 다 죽는다'며 항의하는 풍납동 대책 위원회



물론 정부와 송파구에서 아예 손을 놓고 있지는 않았다. 송파구청장, 문화재청장, 서울시장과 같은 사람들은 당선된 후 꼭 풍납동에 찾아와 주민들과 회담을 가졌으며, 영어마을 열풍이 불던 당시 일종의 보상 개념으로 풍납동에 영어마을을 짓기도 했다. 그 외에 낙후된 주거건물의 리모델링이나 도로 정비사업도 있었다. 유물 발굴을 위해 집을 철거하는 경우 3년 전에 통지하고, 보상금을 주고 있다. 유물 출토 지역과 가까운 곳의 건물주가 건물을 팔고자 할 때는 국가가 시세보다 약간 높은 가격으로 사들이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대책이 정작 주민들에게 큰 도움은 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땅이나 건물을 팔 경우 국가에서 사주기는 하지만 그것도 요청이 밀려 있어 평균 5년 정도는 걸린다고 한다. 자신의 집을 팔아 밖으로 이사를 가려고 해도 최소 5년이 필요한 셈이다.

게다가 많은 주민들이 앞으로도 크게 달라질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특히 풍납동 주민의 대부분은 풍납동에서 3,40년 이상 거주한 노인 분들이고, 저렴한 가격과 교통 여건을 보고 전세나 월세로 주거중인 젊은 층이다. 매일같이 바뀌는 서울과 달리 옛 모습을 좋아하는 나이든 주민과 어차피 자신의 집이 아니므로 땅값에 관여하지 않는 젊은 층들이 적극적으로 변화를 요구할리 없다. 피해는 입고 있지만 '그러려니'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문제가 별 진척이 없다보니 '풍납동 소식' 인터넷 카페는 풍납토성은 위례성의 정확한 위치가 아니라는 주장을 근거로 해 풍납동이 위례성이 아니므로 제한을 풀어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상태다. 예전에는 문화재 보존과 동시에 보상을 해달라는 입장이었지만, 그것이 잘 되지 않으니 궁여지책으로 내놓은 대안인 셈이다. 



역사보존과 지역개발, 두 마리를 동시에 좇을 수 있어야


한성백제박물관을 보고 있자면 한성백제라는 역사적 가치가 그대로 잘 보존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뒤에는 명확한 대책 없이 15년을 보내고 있는 풍납동이 있다. 유물을 잘 발굴하고 소중히 지키는 것이 중요한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문화재에만 치중을 하고 문화재 때문에 삶이 가로막힌 사람들을 등한시해서는 안 된다. 


최근 국토해양부에서 수익성이 낮은 지역과 사업성이 높은 구역을 묶어 개발하는 결합개발을 허용했고, 풍납동의 지역들도 결합개발 설명회를 개최하고 합의하는 등 결합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20대 초반인 기자가 50살 즈음 되면 문화재가 잘 관리되고 풍납동 전체가 하나의 역사공원처럼 거듭난 '좋은 모습'을 볼 수 있을거라고 말씀한 주민분의 말을 조금 더 앞당겨서 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