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볼시위 때도 비난받았던 천덕꾸러기 20대
화난 20대, 스스로 정치적 목소리를 내기 시작
멘토 열풍, 20대에 대한 시각 변화 보여줘
 

어느덧 이명박 정권 5년이 마무리 되고 있다. 5년 사이에 20대의 정치적 위상은 그 어느 때보다도 급격히 변화했다. ‘88만원 세대’를 통해 발생한 세대 담론이 강력한 힘을 발휘했고, 20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증가하였다. 그러나 관심이 늘어났다고 해서, 그것이 긍정적으로 작용하지만은 않았다. 취업시장의 축소와 비정규직 증가, 등록금 상승, 주거문제 등 날이 갈수록 청년문제는 늘어만 가는데, 20대들은 자신의 권익을 대변해 줄 수 있는 그 어떠한 방법도 가지지 못하고 있었다. 운동권은 이념색이 너무 강해서 현실 문제를 대변해주지 못했고, 20대들이 많이 참여하는 동아리나 대외활동들은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드물었다. 그런 상황에서 386들은 무조건 거리에 나와서 시위를 하라고 독촉하기 바빴고, 그보다 더 윗세대들은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압박을 주었다. 사회는 20대를 기성세대의 시스템을 따라야 하는 수동적인 세대로 인식했고, 이는 20대가 정치적 주체로 성장하는데 큰 장애가 되었다.

그러나 정치에 가장 무관심하다고 여겨졌던 20대들이 서서히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사회가 20대를 바라보는 시선 역시 확연히 달라졌다. 청년문제 해결, 등록금 문제가 이번 대선의 큰 화두로 떠오른 것은 어떻게보면 당연한 일이다. 또한 대선 후보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20대의 마음을 잡아야 승산이 있다는 생각으로 20대들에게 적극적으로 구애를 해오고 있다. 이것이 또 다른 방식으로 20대를 ‘이용’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20대가 유의미한 정치적 주체로 대접받고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사회가 20대를 바라보는 모습, 그리고 20대가 자신들을 스스로 규정하는 모습이 달라졌고, 그렇기 때문에 20대들의 정치적 위상도 변했다는 점이다.

 


 

[2007년-2009년]  20대, 너희들은 호구다

‘호구’ 어수룩하여 이용하기 좋은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20대는 호구였다. 취업이 안되는 이유를 보수층에서는 ‘눈을 낮추지 않아서’ (이명박 대통령) 라고 말했고, 개혁세력은 사회는 ‘청년들이 목소리를 내지 않아서’라고 이야기 했다. 기성세대들이 만들어 낸 문제를 청년들의 탓으로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심지어 <88만원 세대>에서도 청년문제 해결방안으로, 상징적인 의미에서 20대들이 스스로 짱돌을 던지고 바리게이트를 치는 것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결국 우석훈 박사는 “죽어도 바리케이트를 치지는 못하겠다는 20대만 더 많아졌다”고 지적하며 “청춘이여, 정신 좀 차려라”고 말하며 절판을 선언했다.

2008년 전국을 뒤덮은 촛불시위 열기에도 20대는 주역이 되지 못했다. 분명 20대 참여율이 객관적으로 수치화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10대가 나서는데 20대는 뭐하고 있냐는 볼멘소리만 높을 뿐이었다. 촛불시위가 조금 지난 뒤에 나온 김용민의 ‘20대 개새끼론’은 이런 맥락에서 터져나와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다. 물론 ‘20대 개새끼론’은 아직도 유효해 보인다. 이번 총선에서 20대 여성 투표율이 8%밖에 안됐다는 루머가 퍼지는 등, 야권이 선거에서 지면 그 패배의 탓을 20대로 치환하려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공지영 작가는 4.11 총선의 야권 패배원인으로 ‘젊은이들의 정치 무관심’을 들었으나, 다음날 SBS 여론조사에서 서울 20대 투표율이 60%가 넘는 것으로 예상되자, “서울 20대 넘 감동”이라며 태도를 바꿨다. 마찬가지로 촛불시위 당시에도 이러한 방식으로 대선, 총선 패배를 원인을 찾지 못한 야권 지지성향 기성세대의 분노가 ‘만만한’ 20대로 전달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18대 총선에서 20대 투표율은 28.05% 30대는 35.2%였다. 탄핵 정국으로 정치적 관심이 커졌던 17대 총선역시 20대 투표율은 44.65% 30대 투표율은 51.5%였다. 투표율을 보자면, 전 세대에 걸쳐서 정치적 관심이 줄어든 것일 뿐, 20대만 유독 정치적 관심이 줄어들었다고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정치 참여가 없다고 비난 받는 것에서 그친 것은 아니다, 권력과 힘이 대학을 장악하는 것을 학생들이 눈뜨고 봐야 하는 상황을 만들면서 실제로 학생들을 ‘호구’로 만들어버린 경우도 있었다. 한예종에 좌파 낙인을 찍고 황지우 총장을 사퇴시켜서, 학생들이 전면적으로 반발했던 한예종 사태, 대학을 기업화하고 과를 구조조정 하는 동국대·중앙대의 움직임, 학생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진행됐던 서울대 법인화 등 ‘대학’이라는 20대의 공간마저 빼앗기고 있었던 것이다.

 

[2010년~ 현재] 더 이상 지켜볼 수 없던 20대, 목소리를 내다

김예슬 선언이 시작이었다. 2010년 3월 고대생 김예슬이 자퇴선언을 해서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가 자퇴하면서 쓴 ‘김예슬 선언’은 현재 젊은이들이 겪고있는 경쟁사회의 현실을 적확하게 짚어 내면서, 많은 젊은이들의 가슴을 울렸고 기성세대에게는 충격을 주었다. ‘김예슬 선언’에는 스펙과 자격증을 위해 무한경쟁을 펼치는 사회와, ‘대기업에 부품을 공급하는 하청업체’가 된 대학에 대한 비판이 들어있었다. 김예슬의 자퇴선언은 ‘졸업장 인생’으로 살고 싶지 않다는 저항이었고, 나아가 더 이상 기성세대들이 만들어 놓은 경주 트랙에서 달리지 않겠다는 반란의 시작이었다.

ⓒ 대학생나눔문화

 

그리고 2010년 3월, 청년 유니온도 만들어졌다. 최초의 세대별 노동조합으로서, 만15세부터 39세 이하의 청년 노동자로 구성된 청년 유니온은, 청년들의 권익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었다. 이들은 ‘청년실업자 아르바이트생의 권리를 직접 찾겠다’며 청년 유니온을 만들었고 실제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피자업체 30분 배달제 폐지, 편의점 최저임금 실태 알리기, 카페베네 주휴수당 지급등 20대들이 몸으로 느끼는 부당함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알리고, 잘못된 관행을 바꾸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2011년에 벌어진 반값등록금 시위는, 촛불시위 이후 최대 규모의 시위가 되면서 등록금 문제와 동시에 청년문제 전반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등록금을 대부분 부모님이 내주는 한국의 현실에서, 등록금은 단순히 학생들의 문제만은 아니었으므로 학생들뿐만 아니라, 기성세대들도 시위에 긍정적으로 참여하면서 규모가 커졌다. 반값등록금 시위는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반값등록금 시위 이후 국가 장학금이 늘어났으며, 대학들도 등록금도 인하하거나 최소한 동결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또한 반값등록금 시위를 주최한 한대련이 서울시장 보궐선거 전 박원순 시장에게 ‘서울시립대 반값등록금 공약’을 요구했고, 이를 받아들인 박원순 시장이 당선 후 시립대 반값등록금을 현실화시키면서 서울시립대가 첫 ‘반값등록금’ 학교가 되었다.

그밖에도 미국에서 시작된 오큐파이 운동을 한국에서 실현한 ‘오큐파이 여의도’ 운동, 기존의 운동권식의 투쟁에서 벗어나서 함께 즐겁게 투쟁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낸 서울대의 ‘본부스탁’등 대학생들의 사회적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또한 학생주거네트워크, 민달팽이 유니온, 청년실업네트워크 등의 활동을 보면 청년문제가 심화되면서, 거리에서의 시위나 투쟁만으로 그치지 않고 꾸준하고 상시적인 20대들의 활동이 이어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2011년]  ‘아프니까 청춘이다’ 멘토 열풍

2010년 말에 나온 김난도 교수의 책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100만부가 넘게 팔리는 소위 ‘대박’을 치면서, 멘토 열풍이 한국을 휩쓸었다. 청년문제를 겪으며 큰 어려움을 겪고있는 20대에게는 눈높이를 맞추고, 진솔한 이야기를 해주는 멘토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사회적으로 공감을 얻은 것이다. 나아가 멘토들의 말이나 글이 20대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힐링’의 효과를 준다고 하여 ‘힐링’이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다.

이런 열풍을 타고 안철수 교수는 젊은이들의 멘토를 자처하여, ‘청춘 콘서트’를 통해 젊은이들과 호흡하며 대중적 인기를 얻게 된다. 경쟁과 스펙쌓기에 시달리는 젊은이들과 눈높이를 맞추고,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려는 시도가 성공했던 것이다. 또한 혜민스님, 이외수 작가 ,‘국민할배’ 김태원 등도 멘토로 떠오르면서 20대들을 격려하고, 힘을 북돋아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열악하고 불안한 상황에 빠져있는 젊은이들은 자연스레 의지하고, 위로받을 대상을 찾게 되는데, 그 점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멘토 열풍을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멘토 열풍은 불과 몇 년 사이에 20대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극적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동안 기성세대들이 20대를 생각 없고 의식 없는 세대로 생각해 비난하기만 급급했다면, 이제는 20대들이 처한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한 것을 알고 자신들이 위로해주려고 나섰다. 적어도 이제 20대들이 사회참여를 안 해서, 20대들이 노력을 덜 해서...등 청년문제의 원인을 20대의 탓으로 돌리는 목소리는 많이 사라졌다. 기성세대들이 20대의 현 상황을 어느 정도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멘토의 ‘힐링’이 청년문제의 해법이 될 수는 없다는 의견이 많다. 공감과 위로는 줄 수 있을지언정, 근본적으로 상황을 개선할 수는 없을 것이다. 20대를 사회적 약자로 보고, 그동안 기성세대들이 만들어놓은 시스템이 20대들을 억압하고 있는 상황은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청년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단순히 조언을 해주거나, 너무도 당연한 말을 하는 멘토링으로 가능하지 않다. 멘토들이 20대에게 감정적으로 큰 힘을 주었던 것은 긍정적인 부분이긴 하나, 반면에 이러한 멘토들이 ‘20대는 원래 불안한 법이다.’ ‘하면 된다’식의 말들만 전하면서 20대들이 겪는 고통을 개인적으로 극복해나가야 하는 과정으로 치부하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었다.



[2012년] 20대, 정치적 주체로 인정받을 수 있나

5년동안 20대의 정치 참여는 분명 늘어난 듯 보인다. 기존 학생운동을 주축으로 하던 정치 참여에서 벗어나, 다양한 집단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20대들이 늘어나고 있다. SNS를 통해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고, 나꼼수에 가장 열광적으로 반응했던 것도 역시 20대였다. 그리고 나꼼수 비키니 사태때, 과감하게 나꼼수에게 반기를 들었던 것도 20대를 주축으로 이루어진 여성커뮤니티인 삼국(화장발, 쌍화차코코아, 소울드레서)카페였다. 촛불시위 이후 진보진영에 반기를 들고 나타난 한국대학생포럼이나, 미래를위한청년포럼 등의 보수 대학생들의 활동이 활발해진 것도 주목할 만하다.

2008년 총선때 급속히 떨어졌던 투표율은 2010년 지방선거, 2012년 총선을 거치면서 서서히 올라가는 추세이다. 정치계에서도 20대를 주목할 수밖에 없다. 새누리당은 총선을 앞두고 비대위 위원으로 정치 쪽에서 전혀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던 27살 이준석 클라세 스튜디오 대표를 영입한다. 또한 대권을 준비하고 있던 문재인 후보의 상대로 27살 손수조 새누리당 미래세대 위원장을 내세운다. 젊은이들의 의견을 반영하고, 20대를 정치의 중심으로 끌어오겠다는 쇄신책이었다.

마찬가지로 통합진보당과 민주통합당에서도 ‘락파티’라는 이름으로 청년비례대표를 선발하면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이들은 사회적으로 고통 받고 있는 청년들을 위한 비례 대표를 공개적으로 선발한다고 발표하며, 청년문제에 관심을 갖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또한 청년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청년당까지 등장하여, 19대 총선에서 20대와 청년문제가 큰 화두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실상 20대 국회의원은 단 한명도 나오지 않았고, 민주당은 청년비례대표로 뽑힌 4명을 전부 당선 가능권에 공천하겠다고 했다가, 말을 바꿔 2명의 비례후보만 당선 가능권에 넣는 등 과정상의 문제가 생기기도 했다. 정치권에서 20대를 정치적 주체로 인정하고 그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려고 하기 보다는, 단순히 정치적 도구로 이용한다는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특히 야권세력의 경우 20대의 반 새누리당 정서를 믿는 경향이 강하다. 젊은이들이 자신을 찍어줄거라 믿기 때문에 투표를 더욱 독려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행태야말로 20대들의 정치적 주체성을 무시한 것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20대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을 위해 더 나은 정책을 제시할 생각은 안하고, 무조건 ‘개념 있는 20대를 믿는다’고 하면 그건 20대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20대의 정치참여가 5년전에 비해 크게 증가하고 청년문제가 대두되면서, 20대들이 정치적으로 유의미한 세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래서 각 대선주자들도 청년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20대가 정말 ‘정치적 주체’로 인정받고 있는지 아직은 확신할 수 없다. 20대는 여전히사회적 기반이 없기 때문에 과소대표되고 있는 세대이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이 20대의 정치적 위상을 새롭게 규정지을 기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