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어제 고용노동부가 ‘고용형태별 근로자 패널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2010년 4월 근무 중이었던 기간제 근로자 114만 5000명을 대상으로, 노동자들의 이동 경로와 근무형태 변화를 조사한 것이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한 직장에서 이직이나 해고 없이 2년 이상 근무한 사람 중 정규직으로 전환된 비율은 7.8%로, 100명중 겨우 8명꼴에 불과했다. 기간제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의 시행이 무색할 지경인 것이다.  

심지어 비정규직의 고용보장을 위한 기간제법이 오히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일자리 불안을 키우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난도 일고 있다. 나머지 80%는 같은 회사에서 계속 근무하더라도 그 고용형태가 무기계약직으로 바뀐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무기계약직은 기간제법 실행 이후 확산된 또 다른 고용형태로, 법적으로 고용이 보장돼도 그 처우와 임금이 낮다. 정규직도 아니고 비정규직도 아닌 ‘중규직’ 혹은 ‘무늬만 정규직’이라고 비난받는 이유다.

이렇듯 비정규직의 고용불안을 해소하고자 시행한 법조차도 오히려 그 불안을 심화시킬 뿐이다. 경제난이 심화됨에 따라, 취업으로 향하는 문 또한 좁아지고 있다. 일자리와 관련된 전 방위적인 불안이 고용시장을 뒤덮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피해를 입는 것은 오롯이 구직자와 노동자다. 불안으로 점철된 고용시장은 이들을 그냥 ‘을’도 아닌 ‘슈퍼 을’이 되도록 만든다. 정규직 전환이 보장되지 않고, 취업난이 극심한 상황에서 이들은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한 채 위축될 수밖에 없다. 취직이든, 정규직 전환이든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기업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질 좋은 일자리를 소리 내어 요구할 수도 없고, 정규직 전환을 당당히 외치기도 어렵다. 불안정한 고용시장은 구직자든, 노동자든 자신의 권리를 소리 내어 말할 수 없도록 폐쇄적이고 억압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출처; http://blog.naver.com/wfoshrfbor?Redirect=Log&logNo=150147548875)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이 한국은행 김중수 총재의 말이다. 김 총재는 지난 14일 인천 인재개발원에서 열린 출입기자단 대상 워크샵에서 “야근은 축복이다”라고 발언한 것이 알려져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우리나라 주당 평균 근로시간은 44.6시간으로 34개 OECD 회원국 중 2위이다. 김 총재의 발언은 불안으로 점철된 고용시장이 있기에 나올 수 있는 말이다. 일자리 불안은 노동자가 야근조차 감사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허무맹랑한 주장까지 펼칠 수 있게 한다. 슈퍼 을로서 야근도 황송하게 생각해야 하는 한국 노동자들의 현실이 처연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