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뒷산 대나무 숲에서 이발사가 외친 이 한 마디 때문에 온 나라가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옛날이야기다. 대나무숲이 가상 세계에 자라났다. 지난 11일 ‘출판사 옆 대나무숲’(@bamboo97889)이라는 계정이 생긴 이후, 디자인회사, 통신회사, 광고회사, 이공계 연구실, 방송사, 촬영장 등의 옆에도 대나무숲 계정이 생겨났다. 같은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끼리 비밀번호가 공개된 ‘공용 트위터 계정’을 사용해 업계의 부조리를 폭로하는 것이 ‘대나무숲 트위터’의 핵심이다.

반응은 뜨겁다. 트위터의 확산성은 어김없이 발현됐다. 원조 격인 ‘출판사 옆 대나무숲’의 경우 계정이 생긴지 1주일도 되지 않아 3400명이 넘는 팔로워가 모였고, 2천 개 이상의 트윗이 익명의 사용자들에 의해 작성됐다. 충격적인 내용을 담은 ‘멘붕의 트윗’들은 다른 유저들에 의해 계속해서 리트윗되며 퍼져나가고 있다. 다른 대나무숲들도 비슷한 상황이다. 대나무숲에는 열악한 노동 조건 속에서 당하는 억울한 일들을 하소연할 곳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직접 밝혀낸 ‘실제 사례’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어떻게 보면 단순한 노동자들의 독특한 ‘한풀이’로 보일 수도 있다. 혹자의 말처럼 갑질 당하는 을은 이 세상 어디에나 존재하므로 대나무숲에서 나오는 얘기들이 그리 특별한 얘기는 아닌 것도 맞다. 그러나 업종별로 각각의 대나무숲에 모인 고함들은 업계마다 가지고 있는 불합리한 구조를 적나라하게 폭로하고 있다. ‘출판사 옆 대나무숲’에는 출판계의 고질적인 대필작가 문제나, 편집 일에만 전념할 수 없는 편집자들의 근로 여건 등에 대한 비판이 맴돈다. ‘방송사 옆 대나무숲’에는 계약서도 안 쓰는 비정규직 파견 방송 근로자들이 주당 20만원밖에 안 되는 헐값에 부림을 당하고 2년 후에는 헌신짝처럼 버려지는 현실이 드러난다. 대부분의 대나무숲 이용자들은 주말에도, 야간에도 일터를 떠나지 못하는 처량한 신세다.

‘당나귀 귀’ 이야기에서 이발사는 너무 말하고픈 이야기를 아무도 듣지 못하는 데서라도 하기 위해 대나무숲을 찾는다. 그리고 들은 사람 없었던 이야기는 신기하게도 모두의 귀에 들어가게 된다. 트위터 대나무숲을 찾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공중을 향해 날려 보내는 갈 길 잃은 목소리를 세상 사람들이 알기를, 그리고 이 폭로를 통해 자신이 발을 담그고 있는 현실이 조금이라도 개선되기를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알고도 대나무숲 트위터를 ‘특이한 일’ 정도로 웃어넘길 수 있나. 익명이라는 형식을 빌려서라도 사람들의 억울한 목소리가 모아지고 있는 이상, 이를 방관해서는 안 된다. 목소리를 조직하고 이를 통해 업계의 문제를 파악해 개선하려는 노력이, 광활한 대나무숲의 끝에 있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