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의 역사관이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박 후보는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서 인혁당 사건에 대해서 “대법원 판결이 두 가지로 나왔으니 앞으로의 판단에 맡겨야 되지 않느냐”고 말해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논란이 된 인혁당 사건은 1975년에 일어난 조작된 공안사건이다. 8명의 사건 희생자는 사형선고를 받은지 18시간 만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고, 이는 유신체제의 폭압성과 잔인함을 보여주는 사법살인으로 역사에 기록됐다. 인혁당 사건의 사법살인이 집행되었던 4월 9일을 두고 국제법학자회는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선포할 정도였다. 민주화 이후 인혁당 사건의 실체를 밝히려는 수많은 노력 끝에, 결국 2007년에는 재심을 거쳐 8명의 희생자에게 무죄가 선고되었다. 박 후보가 말하는 두 개의 판결은 1975년과 2007년의 판결일 것이다.


 



 

그러나 2007년의 재심을 통해서 19775년의 판결은 효력을 잃었다. 2007년의 판결만이 사법부의 유일하고도 명백한 판결이다. 과거의 잘못된 판결을 바로잡기 위해 재심을 결정하고 판결을 바로 잡은 것인데, 두 개의 판결을 동등한 위치에 놓는 것은 가당치도 않은 일이다. 만약 박 후보가 5년 전의 판결을 인정하지 않고, 그것을 역사적 판단에 맡긴다고 한다면 이것은 대한민국 사법체계에 대한 도전을 의미한다.

게다가 긴급조치의 위헌판결로 비춰봤을 때 위헌적 요소가 다분한 유신헌법과, 민주화 이후의 헌법을 동일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대통령은 헌법을 준수하고 수호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유신헌법을 긍정하는 것은 대통령 결격사유에 해당한다. 박 후보의 헌법관, 사법관, 역사관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로서는 괜찮을지 모르겠으나, 대통령이 되기에는 심히 위험하기 짝이 없다.

어제 박 후보는 “재심 판결을 존중한다” 고 말을 바꿨다. 그러나 그 말만 들어선 1975년도의 판결이 잘못되었다고 인정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유신독재 체제에서 국가가 자행했던 폭력과 인권말살을 인정하고, 유신헌법 자체에 대한 전면적인 인식 변화가 있어야 한다. 적어도 지금과 같은 역사 의식으로는 대통령 자격이 없어 보인다.

박 후보는 인혁당 사건 희생자 유족들이 동의하면 만나고 싶다는 의견을 밝혔다. 그러나 ‘사과’라는 말 한마디 제대로 쓰지 않으면서, 단순히 쇼를 하기 위해 만나자는 건 너무나 뻔뻔한 행태다. 인혁당 사건이 조작된 공안 사건이라는 것을 명확히 인식하고, 유족들에게 진심을 담아 사과를 해야 한다. 또한 인혁당 사건뿐만 아니라 유신체제에서 희생당하고 고통 받았던 사람들 모두에게 용서를 구한다면, 그것이 진정한  ‘국민대통합’을 실현하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