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남성 채식주의자, 아직은 낯설다. 게다가 채식 요리를 연마하는 중이라니, 확실히 새롭다. 그런데 그가 풀어놓은 이야기는 단순히 새로움을 넘어 혁신이라고까지 부를 수 있을 정도로 견고하며 싱싱하다. ‘생각의 전환’을 체험하게 해준 그, 이환희(28) 씨를 만났다.





 

Q. 가장 궁금한 것부터 물어보겠다. 왜 채식주의자가 되었는가.
우선 채식주의자가 아니라 '베지테리안'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겠다. 베지테리안이 vegetable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데, 사실 그것은 건강함, 생명력 등을 뜻하는 라틴어 vegetus에 어원을 두고 있다. 베지테리안은 단순히 취향에 의해 채식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과 사회, 나아가 전 지구 생태계의 건강을 위한 삶의 철학을 실천하는 사람이다. 아무튼 채식을 하게 된 이유는 단순한데, 건강 때문이다. 대학 입학  불규칙적 생활과 음주, 비뚤어진 식습관 때문에 몸이 나빠졌다. 두통과 근육통이 심해져 병원도 다니고, 급기야 강직성 척추염(자가면역질환의 일종) 진단을 받아 군까지 면제받았다. 구체적으로, 작년 어머니께서 갑상선암 진단을 받으셨을 때 자연치료를 하시고자 단식을 시작하셨는데, 그 때 함께 하게 되었다.

 

Q. 단식을 했다니.
민족생활교육원(전라도 화순)에서 재야민족의학자인 장두석 선생의 지도하에 33일 간 단식과 회복식을 병행했다. 선생께서 나를 대표적인 ‘현대병’ 환자라고 하며, 육식을 하지 말고 화학조미료가 포함된 모든 시중 음식을 섭취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그래서 채식을 시작하게 되었고, 지금은 예전의 증상이 깨끗이 사라졌다. 원래 편식이 심했고, 안 먹고 사는 게 소원인 사람이었는데, 식욕도 왕성해지고 체질이 완전히 바뀌어 모든 음식을 맛있게 잘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또 밀폐된 공간의 탁한 공기를 쉽게 감지하는 등 건강한 쪽으로 예민해졌다.

 

Q.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개인적인 이유에서 채식을 시작하게 된 것 같다.
그렇다. 다분히 이기적인 이유다. 원래 동물의 생명권이나 채식의 생태적 가치 등에 대한 의식은 있었으나 그것을 생활로 연결시키는 것은 어려웠다. 지극히 이기적인 이유에서 채식을 시작했지만 결과적으로 그러한 가치들을 실천할 수 있으니 결국 이타적이고 긍정적인 행동이 된 셈이다. 가족 모두 채식을 하고 있는데 특히 누나는 육아를 하면서 아이를 위해 스스로 체질을 변화시켰다.

 

Q. 베지테리안이 된 것에 단순히 건강 챙기는 것 이상의 가치를 두고 있는 것 같은데.
사실 베지테리안으로서의 삶은 민주주의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시민이 자기통치를 이루는 것, 곧 자신의 생활을 능동적으로 관리하는 것이다. 개개인이 그러한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질을 갖추고 있어야 사회의 민주주의도 실현 가능하다고 본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너무나 의존적이다. 자본이 제공하는 저질의 오염된 것들이 일상의 의식주를 장악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사람들은 그로 인해 아파진 몸을 다시 병원이라는 의료 자본에 의탁한다. 심지어 자기 힘으로 나을 수 있는 것도 병원에 가서 고쳐달라고 하지 않나. 돌이켜보면 옛 사람들은 스스로 생산한 것을 누리며 살았다. 채식을 시작하고 나서 단지 동물성 식품을 먹지 않는 데서 그치지 않고 직접 텃밭을 일궈서 거기에서 나오는 것들을 먹기도 하고, 직접민주주의적 대안으로 거론되는 협동조합의 한 형태인 생협에서 친환경 물품들을 구입하며, 대기업 자본에서 생산된 것들은 되도록 피한다. 공장에서 대규모로 만들어지는 화학조미료, 농약, 보존제 범벅의 ‘생명력’이 거세된 식품들에 종속되어 있는 현재의 고리를 끊어내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앞으로는 병원이라는 의료자본에 나를 맡길 생각도 없다. 단식과 채식을 하면서 아프기 전에 몸을 관리하고, 아프면 스스로 낫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Q. 상당히 새로운 의미부여다. 20대와 베지테리안으로서의 삶을 연결지어 하고 싶은 말이 있나.
베지테리안으로서 사는 것은 환경, 건강, 생명과 연결된다. 이 가치들은 전지구적, 전세대적이기 때문에 굳이 20대에 국한해서 생각하기는 어렵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얘기는, 나중에 아이를 낳을 수 있는 현재 20대가 몇이나 될까 하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나 오염된 환경에서 살고 있다. 일본의 경우 20년 후 인구의 3분의 1이 암 환자일 것이라는 진단이 나오는데, 한국도 다르지 않다. 생활이 자연으로부터 철저히 유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일 수록 자기를 죽이는 음식을 주로 섭취하고 있으며, 밤낮이 바뀐 것부터가 이미 자연에 역행하는 행위다. 몸에 꽉 끼는 옷을 입어 신진대사를 방해하고, 발암물질이 함유된 선블록을 바르면서 생명력 가득한 햇볕을 차단한다니, 지극히 반자연적인 생활 아닌가. 생태적 가치니 뭐니 다 무시해도 좋다. 지금부터라도 베지테리안으로서의 삶, 자연친화적 생활이 어떤 것인지 스스로 알아보고, 자기 자신의 건강을 위한다는 '지극히 이기적인 동기'로나마 그렇게 살기 위해 노력하면 정말 좋겠다. 내가 그러했듯이.결국, 사람이 건강해야 그 사회도 건강한 것 아니겠는가.

 

Q. 이쯤에서 과거가 궁금해진다. 대학 생활은 어땠나.
정치에 관심이 많았다. 대학 입학하자마자 개혁국민정당(후일 열린우리당으로 흡수)에 당원으로 가입했었다. 송두율 교수 입국 때에 한 개인의 인권과 학문과 사상의 자유가 침해받는 상황을 보고는 지인들과 함께 구명운동 및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을 하기도 했다. 건강 때문에 1년 휴학했다가 복학해서는 전공인 사학에 걸맞게 답사탁본부 동아리 활동을 하기도 했지만, 주로 연애에 몰두하느라 학교를 빼먹는 일도 잦았다. 잠시 공백을 두다가 민주노동당이 분당된 직후 진보신당에 가입했고, 녹색당 창당 소식을 듣고 작년 12월에 당적을 옮겼다.

 

Q. 베지테리안으로서의 삶과 녹색당이 잘 연결되는 듯하다. 정치 의제화에 있어서 녹색당이 어떤 가치를 지녔다고 보는가.
녹색당이 내세우는 가치들에서 가장 공감하는 것은 탈핵, 탈원전, 탈토건이다. 차기 대통령에게서 바라는 것도 이러한 가치에 관심을 기울여주는 것이다. 양극화 문제 해결, 올바른 분배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하고 시급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건강과 생태 문제다. 후쿠시마 사태에서도 보이듯이, 현재는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 생태계가 온전히 돌아야 빈부격차 해소도 의미가 있지 않겠나. 그 문제를 핵심 의제화하고 있기 때문에 녹색당은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녹색당이 이야기하는 것이 어떤 이념보다도 가장 현실적인 것이라고 본다. 물론 녹색당에 가입하게 된 이유에는 녹색의 가치뿐 아니라 좌파의 핵심 가치인 ‘노동’과 관련해서도 매우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는 것도 포함된다.

 


Q. 제안하고 싶은 정책도 ‘녹색’과 같은 맥락일 것 같다.
좀 거칠게 얘기하자면 설령 국가시스템이 무너져도 농업이 농업이 탄탄하면 ‘먹는’ 문제가 해결되니 국민이 굶어죽을 일은 없다. 따라서 농민 기본소득 보장하는 등 장려책이 필요하다고 본다. 농사짓는 공무원을 만들어서 노는 젊은이를 채용하는 것도 괜찮지 않나. 식량 자급률이 점점 줄어들어 외국 수입 농산물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두려운 상황이 올 수도 있다. 특히 20대와 관련해서는, 가장 중요한 게 일자리 문제다. 위험할 뿐만 아니라 고용 창출효과가 낮은 원전을 대신하여 녹색당이 주장하는 친환경 에너지 사업은 일자리를 크게 늘릴 수 있다. 실제 독일에서 그러한 일이 있었고, 그로 인해 녹색당 지지율이 상승한 바 있다.

 

Q. 차기 대통령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현재 모든 대통령 후보들이 복지국가 구축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런데 지금 세계경제가 불황이고, 특히 수출 중심의 한국 경제는 더더욱 힘들 수밖에 없다. 한 마디로 복지관련 지출을 늘릴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유시민 씨는 “당분간 가난하게 삽시다.”를 잘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이 차기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앞으로 ‘영원히’ 조금씩 가난하게 삽시다.”와 그에 맞는 정책을 내놓는 대통령을 바란다. 불필요한 소비를 줄여나가는 정책과 더불어 친환경 재생에너지 개발에도 노력했으면 좋겠다. 현 유력 후보들 중에는 이에 진정으로 관심 있는 사람이 없는 것 같지만.

 

Q. 앞으로의 진로는 어떻게 생각 중인가? 최종적 목표도 궁금하다.
남들에게 '생기'를 주는 일을 하고 싶은데, 교사가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교육대학원에 들어갔지만 임용공부도 힘들었고, 교사가 내 천직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 인문사회, 생태 관련 서적을 전문으로 발간하는 1인 출판사를 차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관련 분야 책을 다루는 괜찮은 출판사에 무급인턴으로 들어가서 일을 배워보고 싶다. 또 요즘 어머니가 다시 편찮아지셔서 고향인 상주에 내려가 대신 가사노동 중인데, 자연스럽게 채식 베이킹을 중심으로 베지테리안용 요리를 시작하게 되었다. 하다 보니 재밌고 뿌듯했다. 레시피를 따라하기도 하고 이것저것 개발하기도 하면서, 유기농 채식 베이킹을 중심으로 동네 빵집들과 연대해서 협동조합을 만들어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최종적인 목표는 귀농이다. 수익이나 생계를 목표로 하는 게 아니라 자연을 나와 연결된 하나의 유기체로서 파악하고,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편안한 마음으로 농사지을 수 있는 농부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추상적이면서 궁극적인 목표는 소박하게 살되, 어느 집단에서든 건강한 자극을 불어넣을 수 있는 사람이 되자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내 생활의 보수성을 내가 가진 이념의 급진성에 맞출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Q. 20대 후반을 보내면서, 20대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부모님 두 분 다 교사시고,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분들이었기 때문에 나는 상대적으로 처지가 좋은 20대에 속한다. 그래서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처지는 안 되지만, 20대를 옥죄는 것은 사회구조적 문제이므로 개인의 문제로 환원해 자괴감 느끼지 말았으면 한다. 대신 사회를 보는 비판적인 시각을 길렀으면 좋겠다. 또 그러한 날카로운 눈을 통해 사회적 모순에 대해 분노하게 되면 그것을 잘 표출했으면 한다. 단, 계속 화나 있으면 병나니까 (웃음) 날선 시각을 가지되, 개인적으로는 '난 잘 될 거야'라며 낙관하는 태도를 가지면 좋겠다. 한편, 20대의 문제는 너무 멘토에 열광하는 것이다. 멘토에 의지하기보다는 '민주시민'의 자세로 자기의 몸과 마음이 건강할 수 있는 방법을 '스스로' 끊임없이 찾아봤으면 한다.



인터뷰 제의를 받았을 때 잘 말할 수 있을지 조금 걱정되었다는 이환희 씨는, ‘최대한 가벼운 마음’으로 이야기를 이렇게나 깊게 풀어냈다. 한 번의 단식 이후에는 60일이 지나야 또다시 단식이 가능하지만, 그것을 모르고 더 건강해지고 싶은 욕심에 금지 기간에 단식을 재차 감행했던 그는 지난 겨울 생사를 오갔다고 한다. 그 힘든 계절을 무사히 났다며, 그는 겨울을 이겨냈다고 해서 ‘삼동초’라고 불리는 유채에 자신을 비유했다. 삼동초처럼 고난의 겨울을 딛고 더 건강하고 더 맛있어진 사람이 되고 싶다는 그에게서 씩씩한 생명력을 보았다.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생각하며 여유로운 삶을 영위할 줄 아는 그는 진정 건강하고 적극적인 청춘이었다. 그의 일보가, 특히 그의 베이커리가 아주 기대된다. 한 번 먹어보라고 그가 내밀었던 유기농 곶감 머핀이 굉장히 맛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