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우리나라 가수가 한글로 된 노래로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는 게 얼떨떨하면서 자랑스럽다. 우리 것을 세계가 알아주는 게 괜히 뿌듯한 당신, 그런 당신에게 묻는다. 국악의 12율을 알고 있는가? 우리 음악 한 자락은 알고 있는가?
 

황태중임남보다 도레미파솔라시가 더 익숙하고, 교양 있고 품격 있어 보이는 클래식은 들을지언정 국악은 고리타분하고 지루하다고 생각하는 우리나라에서 ‘우리의 소리’를 ‘우리의 악기’로 연주하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 가야금 전공의 김현정씨(24)를 만나 들어보았다.


Q. 가야금을 전공했는데,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어렸을 때부터 음악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중학교에 입학했는데, 학교에 국악부가 있어서 들어갔다. 거기서 처음 가야금을 배웠는데 너무 재밌더라. 우리 학교가 중학교, 고등학교가 같은 재단이어서 고등학교에도 국악부가 있었다. 한 날은 연습하고 있는데 고등학교 선배가 보더니 전공해 볼 생각 없냐고 해서 중 3때 본격적으로 가야금을 하게 됐다.


Q. 스카우트 될 만큼 소질이 있었나보다. 그래도 취미로 악기를 할 때와는 마음가짐이나 조금 달랐을 것 같다. 입시 준비하면서 힘든 점은 없었나?
가야금을 전공하기로 마음먹고 레슨 선생님을 구했는데 처음이니까 내 수준과 실력을 고려해서 선생님을 찾기가 힘들었다. 일단 소개 받은 선생님과 수업을 했는데, 이게 입시를 위한 레슨이니까 이론적 설명을 듣기보다는 단순히 선생님의 연주를 듣고 따라 하기 바빴다. ‘왜 이 곡을 이렇게 연주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없으니까 흥미가 떨어지고 지겹기도 했다.



Q. 대학교는 실기 위주니까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그래서 예체능은 공부 못하는 학생들이 대학교 가려고 한다는 얘기도 있는데.

실제로 공부는 못하는데 집에 돈이 많은 애들이 잠깐 레슨 받아서 대학에 들어오는 경우가 있긴 하다. 그렇다고 예체능계 학생들이 전부 공부를 안 하는 건 아니다. 나는 인문계라서 예고에 다니는 애들과 경쟁하려면 야간자율학습을 빼고 (그 시간에) 연습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김천예고는 야자까지 다 했다고 하더라. 그리고 국악고등학교 학생들은 공부를 너무 잘해서 차라리 그 성적으로 과학고등학교나 외국어고등학교에 진학할까 할 정도라고 한다.


Q. 그럼 소수의 학생들 때문에 (예체능 계열은 공부 못한다는) 편견이 생긴건가?

솔직히 소수라고 말하긴 힘들다. 서울대나 한예종(한국예술종합대학교)처럼 실기 못지않게 공부를 잘해야 하는 몇몇 학교를 제외하면 일반 예술대학교는 성적을 많이 안보는 게 사실이니까. 그러다보니 공부로 대학 가기 힘든 애들이 악기를 대학 입학 수단으로 이용하는 일이 많다.


Q. 그런 애들이 대학에 들어오면, 4년 내내 악기를 해야 되는데 제대로 해낼 수 있나?

그런 애들은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대학 수업을 들으면서 흥미가 생겨서 오히려 더 열심히 하는 경우고, 또 하나는 대학에 와서도 별 흥미를 못 느껴서 대충 졸업하는 경우. 후자는 집에 돈이 많으니 그렇게 졸업하고도 가게를 차리거나 개인 사업을 하거나 그러더라.


Q. 음악에 뜻이 없던 학생들이 대학에 와서 흥미가 생겼다면, 대학 수업은 앞서 말한 입시 레슨과 다르게 제대로 가르치는 건가?
대학교니까 교수님들 개개인의 실력이 뛰어난 건 맞다. 하지만 본인이 악기를 잘 다루는 것과 학생들에게 잘 가르치는 것은 차이가 있다. 아무래도 예체능은 가르치는 능력보다 실력이 우선이니까, 교수법을 정통으로 공부한 사람이 교수가 되기보다 그 분야에서 실력이 우수한 사람이 교수가 되는 일이 많다. 그러다보니 (학생 입장에서) 대학은 학위를 따기 위해 다니는 거고, 제대로 배우고 싶으면 따로 레슨을 받아야한다. 다만 대학생 정도의 수준이 되면 내가 내 수준에 맞는 선생님을 찾게 되고, 그 선생님에게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으면서 흥미가 생기게 된다. 젊은 레슨 선생님들 중에는 스스로 이론 공부를 해서 곡의 해석과 느낌을 정확하게 가르쳐주는 분들이 계신데, 그런 선생님을 만나면 악기가 재미있고 즐거워진다.


Q. 실력도 있으면서 잘 가르치는 교수는 일반 과에서도 찾기 힘들긴 하다(웃음). 그런데, 유독 예체능 계열에서 교수들이 문제가 되는 것이 있다. 지난해 서울대 음대 김인혜 교수의 폭행사건으로 예술 대학 교수들의 금품요구나 비리 등의 문제점이 지적됐는데.

비리나 폭력을 옹호하려는 건 아니지만 어느 집단이나 정치적인 성향이 있기 마련인데 이게 ‘대학교’고 대상이 ‘학생’이라 문제가 더 커지는 것 같다. 그리고 예체능이 기본적으로 돈이 많이 들고, 활동 영역이 좁아서 인맥이 중요하기 때문에 위에서 부당한 요구를 해도 울며 겨자 먹기로 참고 넘어가는 게 많다. 이게 곪아서 터진 게 작년 김인혜 교수 사건인거다.



Q. 그럼 (예체능은) 돈이 없거나 인맥이 없으면 실력만으로는 인정받기 힘들겠다.
대회에서 수상을 하면 실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데 거기서도 비리가 없다는 보장이 없으니까 애매하다. 아, 동아 콩쿠르라고 동아일보사가 주최하는 대회가 있는데 여기는 국악, 서양음악, 무용 등 여러 분야가 있어서 비리가 통하지 않는 곳이다. 그래서 동아 콩쿠르에서 수상을 했다고 하면 인맥이나 돈에 관계없이 정말 실력만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그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특히 ‘국악’이니까 서양음악이나 무용처럼 외국에서 먼저 이름을 알리고 국내에서 유명해지기도 힘들다. 아니면 아예 대중적 성공을 해야 하는데, 사실상 이것도 불가능하다. 사람들이 국악에 관심이 없으니까.


Q. 하긴, 국악에서 유명한 사람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사람들이 알고 있는 국악인이라고 해봤자 사물놀이의 김덕수 씨, 미궁으로 유명한 황병기 씨, 서편제의 오정혜 씨에 그친다. 정작 국악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명한 이생강, 김일륜, 이경섭 씨는 아무도 모른다.


Q. 국악이 대중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는 것은 사실이다. 국악인으로서 이렇게 된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나?

가장 큰 이유는 교육의 부재다. 우리 학교 다닐 때 음악 교과서를 보면 국악은 거의 5페이지도 안되게 나와 있었다. 그나마도 학교의 음악 선생님 대부분이 서양음악 전공이라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넘어가는 일이 많다. 그러다보니 학생들 중에 도레미파솔라시도는 알면서 우리나라 음계는 모르는 사람이 대다수다. 가끔씩 궁상각치우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건 중국 음계고, 우리나라는 황태중임남이다. 이것도 단소 때문에 배우는 일부 음계고 원래는 12율이라고 해서 황종, 대려, 태주, 협종, 고선, 중려, 유빈, 임종, 이칙, 남려, 무역, 응종이 정확한 국악 음계다. 음악 시간에 이런 것들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으니까 12율을 아예 처음 듣는 사람도 많을 거다. 이게 우리의 현실인데, 국악에 대한 관심이 생길 수가 있겠나.
2007년쯤에 교과부에서 교육과정을 개정하면서 국악 비중을 30% 정도 더 늘리라고 했는데, 늘리면 뭐하나. 가르칠 교사가 없는데. 무턱대고 비중만 늘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Q. 결국 교육체계가 문제인 건가.

대중적이지 못한 가장 큰 이유가 국악 교육이 제대로 안 된다는 거고, 좀 더 세세하게 들어가면 문제점이 한 두 개가 아니다. 사극 드라마나 영화에서 국악이나 전통음악이 소재가 될 때도 제대로 된 고증을 통하지 않아서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면 동이라는 드라마가 있었지 않나. 거기서 장악원(*조선시대 궁중에서 연주하는 음악과 무용에 관한 일을 담당한 관청)을 소재로 했는데 장악원에 악기가 거꾸로 세워져 있다거나, 해금을 연주하고 있는데 얼후(중국 악기) 소리가 난다거나 그런 오류가 많이 있었다. 우리처럼 국악인이 보면 바로 알 수 있는 오류지만 보통 사람들은 관심이 없으니 그냥 넘어간다. 그런데 문제는, 이게 중국으로 수출되는 드라마라는 거다. 우리나라의 역사 드라마에서 중국 음악이 배경음으로 나오면 중국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하겠나.


Q. 정말 나라 망신이다.

그러니까 아리랑도 빼앗기고 다 빼앗기는 거 아닌가. 우리나라 것이 확실한데 이걸 보존하고 유지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니까 외국에서 호시탐탐 넘보는 거다. 그럴 때마다 국악인으로서 안타깝기 그지없다.


Q. 그래서 무형문화재(속칭 인간문화재)를 통해 명맥을 유지하려 하는데 잘 안 되는 것 같다.

무형문화재 제도도 문제가 많다. 보통 문화재라고 하면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인정을 받아서 문화재로 지정하는 게 순서인데, 무형문화재의 경우에는 심사를 받아서 지정하기 때문에 주관적 판단이나 인맥이 많이 작용한다. 고(故) 함동정월 선생(가야금산조의 명인)의 자서전 격인 <물은 건너봐야 알고 사람은 겪어봐야 알거든>에 보면 무형문화재 제도의 문제점이 나온다. 그는 무형문화재가 되고 나서 관청에서 한 달에 몇 푼 던져주고는 마음대로 부려먹으려는 태도를 보이는 데 화가 났다고 밝혔다. 명인은 존재 자체로 존경받을 가치가 충분한데, 이런 식으로 취급하면서 문화재로 지정해놓는다고 전통을 지키느니 하는 게 말이 안 된다.


Q. 우리나라에서 (국악을) 지키기도 힘든데, 국악의 세계화는 더욱 어렵겠다.

국악의 세계화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 것 같다. 가끔 우리(동기들)끼리는 외국에 나가서 거리의 악사들처럼 야외공연 하면 좋겠다며 이야기하는데,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아서 힘들다.



Q. 어떤 어려움이 있나?

서양 악기는 큰 홀에서 많은 청중을 대상으로 연주하도록 만들어진 악기라 소리도 크고 울림도 크다. 그런데 국악은 사랑채 연주라고 해서, 전통적으로 좁은 방에서 몇몇 양반들을 위해 연주하는 음악이라 악기의 소리가 작다. 그래서 거리공연 한 번 하려면 악기마다 마이크가 필요하다. 악기의 음량도 각각 달라서 마이크 레벨도 따로 맞춰야하고 여러 가지 번거로운 점이 많다.
국악 중에 정악이라고 있는데, 정악을 외국인들이 들으면 어떻게 이런 음악이 있을 수 있냐며 감탄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어려움 때문에 국악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보여줄 기회가 없으니까 아쉽다.


Q. 언젠가 국악을 세계화 하려는 꿈이 있나?

글쎄, 지금은 그렇게 거창한 꿈을 꾸지는 않는다.


Q. 그럼 본인의 현재 꿈은 무엇인가?

나는 레슨 선생님이 되고 싶은데 내가 가야금을 배우면서 느꼈던 부족한 점을 혼자 공부해서 제자들에게 진정한 교육을 하고 싶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주위에 하면 돈과 인맥이 있어야 제자를 성공가도에 올려놓을 수 있다고 말하더라. 그렇다면 난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없을 것 같다(웃음)






Q. 이 땅의 20대들은 현재 각종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불안을 해소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걸 굳이 해결하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20대는 원래 불안한 시기 아닌가. 그걸 못 견뎌서 빨리 안정된 것을 찾으려고 하니까 공무원이다, 선생님이다 하며 소위 말하는 안정된 직장에 목매는 것 같다. 좀 더 힘들고 오래 걸려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게 장기적으로 볼 때 평생 행복한 길 아닐까. 나는 가야금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이고 좋아하는 일이라서 지금 당장은 불안하더라도 계속 하다보면 잘 될 거라는 자신이 있다. 그래서 현재가 불안정해도 별로 초조하지 않은 것 같다.


Q. 앞으로 계획은?

돈에 연연하지 않고 제자와 많은 걸 털어 놓을 만큼 인간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 아까 말한 대로 인맥과 돈이 없어서 제자 입장에서 좋은 선생님은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잘 가르치는 참 선생은 될 수 있을 것 같다.


Q. 마지막으로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

내가 국악을 전공해서가 아니라, 국악이 알고 보면 정말 매력 있고 재미있는 악기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한복입고 전통 음악이나 민요만 연주하는 게 아니라 요즘 추세에 맞게 신곡도 많이 나온다. 토크쇼 같은 데서도 세계적인 첼리스트, 발레리나는 심심찮게 볼 수 있는데 국악 하는 사람들은 볼 수 없는 것도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기 때문이다. 대중들이 많이 관심을 가져줘야 대회 같은 곳에서 비리도 줄어들고 전통도 이어갈 수 있다.


Q. 그럼 정말 마지막으로 좋은 국악음악 추천 좀 해 달라.

많이 알려진 노래 중에 ‘아름다운 나라’라고 있다. 한번 쯤 들어봤을 텐데 이 노래의 저작권은 대한민국 국민에게 있다니, 그 의미도 너무 멋진 노래다. ‘아름다운 나라’에서 가사를 빼고 음만 듣고 싶으면 ‘플라이 투 더 스카이’를 들으면 된다. 같은 노랜데 가사가 있고 없고의 차이다.
그리고 옛날에 <웃찾사>에서 나온 ‘쑥대머리’란 노래가 있다. <웃찾사>에서는 개그 소재로 쓰였지만 가사를 들어보면 춘향이가 변사또의 숙청을 거절하고 고문을 당하면서 이몽룡을 그리는 슬픈 노래다. 가사에 집중해서 들으면 더 와 닿을 거다.
그 밖에도 ‘멋으로 사는 세상’, ‘난감하네’ 등등 국악에도 다양한 장르가 많으니 한번 쯤 들어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