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2012 괴산 페스티벌 라인업이 발표되었을 때였다. 이름이 예쁘다고 생각했고, 궁금해졌다. 그녀의 곡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올해 갓 스무 살이라니, 한 번 놀란다. 이미 1집을 발표한 싱어송라이터라니, 두 번 놀란다. 합정 역 근처 고즈넉한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참 맑다’는 생각에 세 번 놀라고, 기어이 부러워지고 만다. 곽푸른하늘, 그녀를 만났다.



Q. 벌써 1집을 내셨죠. 앨범 소개부터 해주세요.


저는 대안학교를 다녔는데, 음악 하는 아이로서 성과물을 내고자 졸업앨범 식으로 작년 여름에 만들었어요. 누가 내 음악을 들을지 알 수도 없는데 무턱대고 앨범부터 만드는 건 너무 이른 시도가 아닐는지 고민이 많았던 때라 확신이 없는 상태였어요. 선생님과 친구들 앞이 아니면 아무에게도 제 음악을 들려준 적이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막상 발매되고 나서는 노래를 하는 게 재미있구나, 생각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열심히 해보겠다고 다짐했어요 그래서 그 앨범이 데뷔 앨범이 되었죠.



Q. 대안학교에 다니셨군요. 그럼 언제 처음 음악을 시작하신 거예요?

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중, 고등학교까지 대안학교에 다녔어요. 중3 때 클래식 기타를 배우는 친구를 따라가서 함께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그 때 악보도 처음 보았으니 늦게 시작한 편이죠. 그 전까지는 좋아하는 게 하나도 없어서 모든 게 불만스러운 십대였는데, 고등학교 때 좋아하는 게 처음 생긴 거예요. 음악.


Q. 고등학교 생활이 어땠는지 궁금해지는데요?


제가 다닌 학교는 예술에 중점을 둔 학교라서 저처럼 음악 하는 친구들 외에도 영화, 연극, 문학 등을 하는 아이들이 있었어요. 국영수 같은 정규 교육과정 수업은 없어요. 공부하고 싶은 사람은 공부하고 책을 읽고 싶으면 책을 읽었어요. 저녁에는 자기가 꿈꾸는 것을 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저는 그 시간에 기타를 치고 노래를 만들었어요. 자유로워 보일 수 있는데, 나태해지고 고립되기 쉽다는 문제가 있어요. 또, 언제든지 졸업할 수 있어요. 저는 1년 반 정도 다니다가 2010년에 졸업했어요. 졸업하고 나서는 아무것도 안 하고 혼자서 ‘은닉’했어요. 그렇게 1년 동안 끙끙대며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작년에 앨범을 내게 된 거예요.


Q. 그럼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있어요?

앨범을 낸 뒤로 1년째 여기저기서 공연을 계속 하고 있어요. 작년에 앨범 작업 때문에 못 봤던 검정 고시를 올해 봤고요. 그런데 대학은 아직 안 가도 될 것 같아요. 곡을 쓰다 보니 글을 잘 쓰고 싶어져서 글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지금은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경험을 더 하자는 마음이 가장 커서, 올해는 계속 공연을 하면서 흘러갈 것 같아요. 최근에는 카페 언플러그드라는 카페 겸 공연장에서 제 이름을 걸고 한 채널을 받아 음악도 들려드리고 이야기도 나누는 팟캐스트를 시작했는데요, 저는 말을 잘 못하기 때문에 “매번” 큰일났다! 어떡하지! 이런 심정으로 해 가고 있어요. 그래도 못 하는 것에 도전한 거니까 쉽게 끝내고 싶지 않아요.


Q. 스무 살. 어찌 보면 로망이 가득한 나이잖아요. 본인이 생각하는 스무 살은 어때요?

그냥 보내기 아까운 시기. 두 달밖에 안 남았다고 생각하니 아쉬워요. 스무 살이 너무 좋거든요. 나름대로 제 스무 살을 잘 만끽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스무 살이 되기 전에는 ‘스무 살은 지금과는 달랐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어요. 더 많이 경험해서 저의 세계가 좀 넓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던 거죠. 일반 학교 학생들, 제 주변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저는 몰랐으니까요. 그런데 한편으론 무섭기도 했어요. “십대”라는 방패가 없어지고 스스로를 잘 책임져야 하니까요. 막상 스무 살이 되고 나서는 그 무서웠던 것들이 견딜 만 했어요. 생소했던 것들(홍대의 예술 하는 사람들, 분위기 등)을 보니까 신기하기도 하고. 다만 너무 휩쓸리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가고 싶은 길을 잊어버리거나, 뜻밖에 힘든 일이 생겼을 때 너무 빠져드는 등 무언가에 휩쓸리는 게 가장 무섭다고 생각해요.





Q. 앨범의 모든 곡들을 스스로 썼다고 했는데, 가장 마음에 드는 곡은 뭔가요? 그리고 어떻게 만들었나요?


가장 애착이 가는 곡은 가장 처음 만든 습작곡 <바람만 불어>이에요. 아직도 그 때 그 곡을 어떻게 썼는지 하나도 기억이 안 나요. 또 <나, 모르는 것이 많아>라는 곡이 가장 나를 잘 설명해준다고 생각해서 좋아해요. 자기도 잘 모르는 자신을 설명하고 싶지 않은데 언뜻 보이게 되는, 그런 복합적인 감정이 담겨 있어요. 저 또한 아직 저 자신을 잘 모르고 확신이 부족한 상태예요. 지금 제가 말할 수 있는 제 모습은, 조용하다, 조용한데 착한 건 아니고요. (웃음) 솔직한 마음을 선뜻 표현하기에 조심스러운, 속으로 많이 생각하는 사람 같아요. 경험이 많이 필요한 학생이에요.

 


Q. 음악과 관련해서 기억에 남는 경험이 있다면?


올해 5월, 처음으로 단독공연 한 날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처음으로 저만을 보러 사람들이 와주신 건데, 기분이 정말 좋았어요. 너무 떨어서 아무 생각도 안 났지만, 사람들이 같이 고개를 흔들흔들, 리듬을 타며 귀 기울여주는 모습을 보고는 정말 음악 하는 게 이렇게 재미있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그 때 강렬하게 들었어요. 아직도 내 음악을 좋아하실까, 안 좋아하시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을 하는데 요즘은 그래도 많이 용기가 생긴 것 같아요. 좋아해주시는 분들 만나면 정말 좋아요.



Q. 또래들과는 조금 다른 삶을 살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요?


탱자탱자 놀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학교를 다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친구들한테 이렇게 말했을 때 내가 가장 나아 보인다는 대답을 들었어요. 어떻게 보면 제가 좀 더 먼저 사회에 나와 경험을 하고 있는 거니까요. 지금 생활에 100% 만족하지 못한다는 면에서 또래들과 크게 다르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요즘 들어 계속 뭔가가 약간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되는 것 같고.


Q. 롤모델이나 닮고 싶은 뮤지션이 있다면? 어떤 사람이 되고 싶나요?


다른 분들 공연하시는 걸 관객 입장에서 볼 때마다 항상 자극 받고 배울 점을 봐요. 콕 집어서 누굴 닮고 싶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이런 음악 나도 했으면 좋겠다, 이런 글 나도 썼으면 좋겠다, 이렇게 바라곤 해요. 원하는 건 항상 많아요. 최근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잠언 시집을 읽으면서는 항상 감사해야지, 이렇게 다짐을 많이 했는데 덮고 나서는, 기억이 나지 않네요. 아이 부끄러워라. 꽉 찬 사람이 되고 싶어요. 단순히 음악가가 아니라 ‘예술가’가 되고 싶어요.



Q. 뮤지션으로 활동하면서 어떤 어려움이 있나요?


대부분 저를 잘 모르시는 분들이, 제가 어리니까 뭣 모르고 음악을 한다고 말씀하세요. 다른 경험

을 해 보는 게 낫지 않겠니, 이렇게. 그런데 저도 마냥 좋아서 나중에 현실적으로 힘들어질 수도있다는 생각을 안 하는 건 아니거든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크게 생각하려고 하지 않는 편이에요.




Q. 대선 관련해서 정치권에 제안하고 싶은 정책 혹은 대선 공약이 있다면?


관심은 참 많지만 나랏일을 잘 몰라요. 지금 생각나는 건, 버스 요금이요. 버스 기사 아저씨들 월급을 줄이지 않되, 계속 올라가니까 좀 낮추면 어떨까? 싶어요.



Q. 차기 대통령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대통령이기 전에 자신도 국민이라는 걸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대통령이라는 특별한 직책을가진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잘 해주셨으면 해요. 그 자리에서 내려오면 다 똑 같은 국민이고 사람인데요 뭐.



Q. 이십대에 첫 발을 들여놓은 사람으로서 하고 싶은 말을 들려주세요.


예측할 수 없던 일도 많이 일어나고, 질풍노도의 이십대 ‘사춘기’를 보내고 있는 것 같아요. 혼자 여기저기 찾아다니고, 혼자 노래를 부르고, 모든 것을 혼자 해가야 한다는 것이 어려워요. 현재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고 있거든요. 그런데 멀리 계시면서도 항상 격려해 주셨어요. 네가 선택한 것이니 열심히 해 봐라, 이렇게요. 어쩌면 옆에 가까이 없어도 언제든 기댈 수 있는 부모님이나 선생님들이 계시다는 사실이 혼란스러운 가운데서도 계속 나아갈 수 있게 하는 발판이 아닐까 싶어요. 스무 살의 발걸음이 최고로 순수하고, 풋풋한 것 같아요. 첫 마음가짐이니까요. 무언가를 실행하지 않았어도 마음을 스무 살처럼 유지하려는 모든 노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내년에는 또 바뀔 수도 있고, 서른 살이 되었을 때에는 아, 그게 아니었나 보다, 할 수도 있지만 지금까지 제가 말한 것들이 “곽푸른하늘이 스무 살 때 먹은 마음이다.”임에는 확실하니까요.




'스무 살’과 ‘뮤지션’이라는 정체성 중 어떤 게 더 자신을 잘 표현한다고 생각하는지 물었을 때, “두 단어가 함께 있는 게 더 보기 좋은 걸요.”라고 대답하는 곽푸른하늘 씨. 나중에 언제든 음악이 아닌 다른 것이 재미있어지면 그때엔 그걸 할 것이라고, 언제든지 그럴 마음이 있다고 말하는 그녀의 눈동자는 맑고도 단단하다. 진중함과 풋풋함이 예쁘게 섞여 있는 그녀의 발걸음을 응원하는 의미로 <있는 듯, 없는 듯>이라는 타이틀이 적힌 그녀의 앨범에 사인을 받아 돌아오는 길, 왠지 덩달아 순수해진 것 같은 느낌은 단지 ‘기분 탓’만은 아닐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