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시절, 교과서에서 처음 만났던 '간호사'는 하얀 옷을 입은 '백의의 천사'였다. 그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간호사를 순백색의 옷을 입은 상냥한, 아픔까지 치료해주는 천사 같은 존재라고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백의의 천사'들은 3교대, 2교대 근무를 하면서 자신을 돌볼 시간조차 없이 일하고 있다. 밤낮이 바뀐 생활과 불규칙한 식사시간 등 많은 것들이 간호사들을 힘들게 만든다.

떨림과 설렘으로 '간호사'로서의 첫 발을 내디뎠다는 간호사 정현아(23)씨. '간호사'라는 이름표를 달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녀에게는 처음 느꼈던 감정들이 사라진지 오래다. 하지만 그녀는 힘든 근무환경 속에서도 '행복을 주는 간호사'를 꿈꾼다. 새내기 간호사 정현아씨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나라 간호사의 현실을 마주할 수 있었다.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인천의 종합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간호사 정현아입니다.


Q. 어느 과에서 근무하고 계시는지요? 업무에 대한 소개도 부탁드립니다.

저는 올해 졸업을 해서 일을 시작한 지 4개월 된 신규간호사로 내과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내과에서는 호흡기, 감염, 소화기, 내분비 등을 담당하고 있는데, 이와 관련된 처치와 시술 업무를 주로 하고 있습니다.


Q. 언제부터 간호사를 꿈꾸셨는지요?


고등학교 3학년 때, 어머니의 권유로 처음 간호사라는 직업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어요. 진로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이 많았었는데,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간호사'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Q. 간호사가 되기 전과 된 후에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어떤 것이 있나요?


간호사가 되고 난 후, 개인 시간이 많이 사라졌다는 게 가장 많이 달라진 점인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평소 생각했던 간호사의 이미지와 많이 다르더라구요. 간호사가 하는 일이 생각보다 많고 복잡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아직까지도 힘들다는 생각이 듭니다.


Q. 처음으로 병원 현장에 투입되셨을 때, 어떤 생각이 드셨어요?


제일 처음에는 떨렸어요. 그리고 '내가 잘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도 됐고, '열심히 해보자', '할 수 있다'는 다짐을 하기도 했죠. 새로운 환경에 맞닥뜨렸다는 기대감과 설렘이 가장 컸던 것 같아요.


Q. 자신의 직업을 선택했다는 것을 뿌듯하게 느꼈던 순간이 있나요?


환자분들이 '간호사님'이라 부르면서 저에게 의지하고, 저의 간호로 회복 또는 퇴원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뿌듯함을 느껴요. 환자분 중에 저를 '이쁜이'라고 불러주면서 저를 좋아해 주셨던 할머니가 계셨어요. 그런데 할머니께서 퇴원하신 지 한 달 후에 재입원을 하신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프기도 했어요. 재입원하신 할머니께서 저를 잊지 않고 '이쁜이'라고 다시 불러주셨을 때, 뭉클하기도 했고요. 다행히도 다시 건강해지셔서 집으로 돌아가시는 모습이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Q. 예상치 못한 환자들과 밤낮이 바뀐 생활 등 여러 가지 힘든 점이 많으실텐데요, 어떤 점에서 가장 큰 스트레스를 받나요?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 것 같아요. 흔히 병원에서 '진상환자'라고 부르는 환자를 만났을 때가 첫 번째 경우예요. '진상환자'는 변태 행각을 벌이는 환자, 소리를 지르거나 난동을 부리는 환자와 같이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환자들을 말해요. 또한,  직장 생활이다 보니 가끔 겪게 되는 동료 간의 마찰로도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아요. 제가 일을 시작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고, 나이도 어리다 보니 혼날 일도 많고 적응하는데 어려움이 크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는 것 같아요.


Q. 이 일을 하면서 후회해 본 적은 없나요?


이 일을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후회'는 항상 생각하고 있는 단어인 것 같아요. 하지만 아직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 거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고 있어요.


Q. 추석과 같은 명절에는 눈코 뜰 새 없이 분주한 곳이 병원인데요, 명절과 같은 바쁜 시기에는
어떤 식으로 휴식을 취하시나요?


보통 명절에는 휴식을 취할 시간이 없어요. 평소보다 병원을 찾는 환자 수가 많아서 정신이 없거든요. 그런데 이번 추석에는 생각보다 바쁘지 않게 보냈기 때문에 평소와 같은 근무 환경을 유지했던 것 같아요.


Q. 간호사들 대부분이 3교대, 혹은 2교대로 일하고 있는데 이로 인해서 발생하는 아찔한 에피소드가 있나요?

저희 병동은 3교대 근무를 하고 있어요. 그래서 먹는 시간, 자는 시간이 불규칙해져서 생활리듬 또한 엉망이에요. 생활리듬이 깨지다 보니 만성피로를 가지게 되어 항상 피곤하다는 느낌을 받고 있어요. 이런 상태로 환자들을 간호하다 보니 의료사고가 날까 걱정도 돼요. 그래서 근무 중에는 맑은 정신을 유지하려고 노력해요. 2교대 근무를 하는 병동의 간호사분들은 하루 12시간씩 일을 하신다고 해요. 간호사들 중에는 몸이 안 좋은 간호사들이 대부분이고, 허리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많아요.


Q. 다른 직업에 비해 휴식을 취할 시간도 짧고, 정해져 있지 않은 휴가에 개인 시간을 갖는 것이 힘드실 텐데, 휴가 외에 만족감을 찾고 있는 부분이 있으신가요?


아직은 취미나 개인 활동을 할 만한 여건이 되질 않아요. 없는 시간을 쪼개서 취미생활을 하거나 운동을 하려고 노력해 보지만 아직은 만족감을 찾을 만한 시간을 가질 수가 없어요. 여유가 생기면 그때 찾아볼 생각입니다.


Q. 아직 미혼이신데, 결혼을 하고 나면 어떤 점이 가장 힘드실 것 같나요?


일단 남편의 아침밥도 챙겨주고, 출근준비를 도와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3교대 근무이기 때문에 아침에 남편을 만날 수 있을 가능성이 적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집안일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아기를 낳으면 아기를 돌봐줄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걱정도 커요. 그래서 결혼을 하고 나면 계속 일을 해야 할지 고민이 돼요.


Q. 주변에 결혼하신 간호사분들의 경우는 어떤가요?


근무 중에는 대부분 시어머니님 댁이나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시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아이들과 함께 있을 시간도 적고, 오프가 아니면 아이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없어요. 그래서 대부분 결혼을 하고 나면 상근직으로 옮기는 경우가 많아요.


Q. 현재 우리나라의 간호사에 대한 인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우리나라에서 '간호사'는 무조건 친절해야 한다는 의식이 강한 것 같아요. 이런 의식이 오히려 간호사들을 힘들게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간호사들이 아무리 친절한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수용할 수 있는 선이 있는데, 가끔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 환자분들이 있으시거든요. 심한 말로 저희를 '종 부리듯' 하는 분들도 계시구요. '간호사'이기 이전에 우리도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저 같은 경우는 어려보이기 때문에 종종 반말을 하거나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는 분들이 계세요. 저도 엄연한 '간호사'인데 그럴 때는 조금 기분이 상하기도 해요.


Q. 한국이 간호사를 하기에 좋은 환경인 것 같나요?


한국은 간호사를 하기엔 좋지 않은 환경인 것 같아요. 미국 같은 경우는 간호사 1명이 담당하는 환자의 수가 적은 편인데, 우리나라는 간호사 1명에게 너무 많은 환자들을 돌보기를 원해요. 그래서 체력소모도 크고요.


Q. 개선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처우에는 어떤 것이 있나요?


제일 먼저 사람들의 의식이 개선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30년쯤 전에 '간호원'에서 '간호사'로 명칭도 바뀌었고, 그만큼 '간호사'에 대한 배려가 시작되었다고 생각되었는데 아직도 '간호원', 혹은 '아가씨'라고 부르는 분들도 많으시구요, 호칭과 마찬가지로 조금 견디기 어렵게 대하는 분들도 계세요.
또한,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다른 직업군에 비해 간호사 집단의 힘이 매우 약한 것 같아요. '간호사'는 의사의 아랫사람이 아닌데, 무시를 당할 때도 있고. '간호사'가 조금 더 존중받았으면 좋겠어요. 간호조무사와의 명확한 구분도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Q. 요즈음 의료개정법으로 인한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간의 대립이 핫이슈인데, 실제 현장에서는 어떤 모습인지 궁금합니다.

아직 표면적으로 현장에서 대립하는 경우는 없어요. 하지만 간호조무사가 간호사로 취급받기를 원하는 경우가 간혹 보이기도 해요. 하지만 간호사와 간호조무사는 근무영역부터 다르죠. 확실히 다르게 구분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개정안이 시행되면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직접적인 문제들에 대해서 듣고 싶습니다.


환자들이 혼란스러워질 거예요. 누가 간호사인지, 간호조무사인지 헷갈리는 경우가 많아져 '간호사'에 대한 신뢰도가 하락하게 될 거고요. 이는 간호사의 위상과도 관련된 문제라고 생각해요. 또한,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간의 업무가 겹치는 부분이 생겨 서로 입장이 난처해질 거예요.


Q. 간호 인력난 해결을 위해 간호사 정원의 3분의 1 정도를 간호조무사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대우를 받으면서 일하길 원하는 간호사도 없을 거고, 간호사 면허증을 가지고 간호조무사의 일을 한다면 면허증을 취득한 의미가 없게 되는 거잖아요. 간호사를 배려하지 않은 주장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Q. 안정적이라고 알려진 것에 반해 간호사는 이직이 잦은 직업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직을 생각해 본 적이 있으신가요? 이직이 잦은 이유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네, 생각해 본 적이 있어요. 당연히 생각해 볼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우선은 과를 옮기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돼요. 내과나 응급실과 같은 힘든 과에 근무하게 되면 편한 과에서 근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또한 간호사의 세계는 여자들이 많아 시기와 질투 등으로 인간관계의 영향을 많이 받기도 해요. 인간관계가 힘들어서 병원을 나가는 경우들도 종종 봐왔어요.

아예 다른 직업을 택하는 경우도 많아요. '간호사'라는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만을 생각하고 다가왔다가 자신의 적성과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다른 길로 가시는 분들도 많아요. 계속 얘기하고 있지만, 생각보다 체력소모가 심하고,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심한 직업이기 때문에 학교에서 공부하던 것과 실제 현장은 너무 달라요. '간호사'라는 직업은 정말로 자신의 적성에 맞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인 것 같아요.


Q. 학생들에게 '간호사'가 직업 선호도 조사에서 상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간호사를 꿈꾸는 이들에게 말해주고 싶은 것이 있나요?


간호사가 부족하기 때문에 되고자 하면 취업이 잘되는 것은 사실이에요. 하지만 이 길에 들어서기 전에 다시 한 번 잘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어요. 일반적으로 병원에서 보는 간호사의 모습과 실제 업무는 많이 다르기 때문이에요. 생각지 못했던 일들을 마주하게 되기도 하고, 의자, 환자, 간호사들 간의 관계가 매우 중요하므로 이를 잘 컨트롤 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성향을 잘 파악해야 하고, 많은 고민을 해봐야 해요. '할 수 있다'고 마음먹었던 분들도 그만두는 경우가 많거든요.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절대 '쉬울 것 같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 돼요. 보람찬 일들도 많지만, 정말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체력관리와 같은 자기관리에도 철저해야 하고. 정말로 많은 고민을 해본 다음, 굳은 다짐을 가지고 시작하셨으면 좋겠어요.


Q. 정현아씨의 꿈은 무엇인가요?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세요?


빨리 적응을 끝내서 환자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사랑이 넘치는 간호사가 되고 싶어요. 그래서 환자들뿐만 아니라 이 일을 하는 저 자신과 저의 주변 사람들 모두 행복함을 느끼게 하는 게 저의 꿈이에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친절하고 설명 잘하는 간호사'가 되고 싶어요.



Q. 차기 대통령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조금 뻔한 이야기지만, '서민을 위한 정치'를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Q. 정현아씨가 느끼는 불안은 무엇인가요?


나의 20대, 청춘이 이렇게 끝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렇게 밤낮이 바뀌어서 일만 하면서 지내다가 많은 것을 잃을 것 같아요.


Q. 2012년 20대들이 겪고 있는 특수한 불안을 해결하려면 가장 먼저 바뀌어야 할 게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와 같은 처지에서 불안을 안고 있는 분들에게는 간호사의 여가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즉, 간호사의 근무조건이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