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다’는 명사 뒤에 붙어 ‘성질이나 특성이 있음’의 뜻을 더하고 형용사를 만드는 접미사다. 드라마에서 남자가 ‘너답지 않게 왜이래’라고 하면 여자가 ‘나다운 게 뭔데!’라며 버럭 화를 내는 장면을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다운 게 뭔데’는 드라마 속 여주인공이 아니라 ‘청춘론’에 지친 20대가 세상을 향해 내뱉고 싶은 대사다. 각종 매스컴에서 떠들어대는 ‘청춘, 청춘, 청춘’ 그놈의 ‘청춘’ 타령에 우리들은 ‘그래서 청춘다운 게 뭔데!’라고 반문하고 싶다. 대관절 청춘이 무엇이기에 세상은 20대를 가만두지 않는 것일까. ⓒ 블로그 경제놀이터
‘청춘’은 만물이 푸른 봄철이란 뜻으로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에 걸치는 인생의 젊은 나이 또는 그 시절을 말한다. 개념적으로 보면 20대를 청춘으로 지칭하는 것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세상이 20대에게 강요하는 청춘은 단순히 그 시기를 말하는 게 아니라 일종의 성격을 부여한다. 그것도 기성세대의 시각으로, 그들이 만들어놓은 ‘청춘다움’의 틀. 이를테면 낭만이 있고, 패기와 열정으로 똘똘 뭉쳐있으며, 도전정신 가득하고,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 일어나는 그런 존재.
그들이 말하는 ‘청춘다움’이란 무쇠 팔, 무쇠 정신을 지닌 철인이다. 그리고 이 프레임에 어긋나는 20대는 ‘나약하다’고 치부해버린다. 그래, 그럴 수 있다. ‘가난하다, 여자다, 장남이 아니다’ 등등의 이유로 배움에 뜻을 접고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던 세대들, 강의실이 아닌 거리로 나가 ‘민주주의’라는 대의를 위해 투쟁한 세대들이 보기에는 현대의 청춘들이 나약하고 답답할 수 있다. ‘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되는 어른들의 단골 레퍼토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겨 냈어’로 끝나며 취업난을 이겨내지 못한 청춘들을 옥죄어온다. ‘청춘이라면 그 정도는 견뎌야지’라는 충고와 함께.
한창 취업준비로 정신없는 김희정 씨(24)는 “학점 4.0이 넘고 토익 900점이 넘어도 서류조차 붙기 힘든 게 현실이다. 이렇게 고(高)스펙자들도 취업이 안 되는 상황은 모르면서 우리더러 열정과 낭만이 없다고 하는 어른들이 답답하다”고 말했다.
대학생 유지호 씨(23) 역시 “등록금이나 취업난 같은 20대와 밀접한 사회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너희는 20대, 청춘이니까’ 이 한마디면 된다고 생각하는 게 문제다. 청춘 멘토라는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도 ‘사회 구조를 바꾸자’가 아니라 ‘이런 현실이 힘들겠지만 누구나 겪는 과정이니까 이겨내라’는 식이다”라며 본질을 외면한 충고를 경계했다.
이지민 씨(24)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는 어느 세대에게나 있다. 청소년 자살문제, 경쟁 중심의 교육제도, 중장년층의 기러기 아빠 문제, 노인 문제 등 각 세대별로 아픈 부분이 있는데 이건 말 그대로 ‘사회의 문제’이기 때문에 주체가 주체의식을 지닌다고 해결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그런데 왜 청년 실업, 취업난, 등록금 같은 20대의 사회문제는 사회가 아닌 ‘20대의 탓’으로 돌리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씨의 말처럼 20대는 사회구조의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청춘’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걸 감내해야 한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청춘 담론에서 정작 20대는 제 3자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김영현 씨(24)는 “정작 우리는 가만히 있는데 자기들끼리 ‘따끔한 독설을 해줘야 한다’, ‘아니다, 독설보다 위로가 필요하다’ 그러면서 싸우는 것 같다”며 “청춘이 다 같은 청춘이 아니고 저마다의 개성과 고민이 있을 건데 이를 싸잡아서 나약한 청춘으로 치부하는 기성세대들의 시각이 불쾌하다”고 말했다.
19살이 20살이 됐다고 갑자기 철이 들고 어른이 되는 게 아닌데 세상은 20대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높다. 근 19년 간 수동적인 인간형에 최적화 된 정규 교육을 받으며 살아온 이들에게 하루아침에 열정을 지닌 존재가 되라는 요구는 너무나도 버겁다. 우리는 세상에 외치고 싶다. “우리에게 청춘다움을 강요하지 마세요”
뜨거운 감자 - <청춘> 中
돌아가는 시계바늘 찢어지는 하얀 달력
이상은 아주 큰데 현실은 몰라주고
가진 건 꿈이 전분데
돌아오지 못할 강물처럼 흘러간다
다시오지 않는 아름다운 나의 청춘
무뎌지는 나의 칼날 흐려지는 나의 신념
느낄 수 있을 만큼 빠르게 변해간다
세상은 이런 거라고 위로해보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다
서러움의 눈물 한없이 흘러내린다
돌아오지 못할 강물처럼 흘러간다
다시오지 않는 아름다운 나의청춘
언제부터 이런 건지 나 혼자만
이런 건가 후회만 많아지고
한숨은 길어지고 세상은 이런 거라고
위로해보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다
서러움의 눈물 한없이 흘러내린다
돌아오지 못할 강물처럼 흘러간다
다시오지 않는 아름다운 나의 청춘
'20대의 시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중한 한 표 행사하라 떠들지만, 투표는 ‘그림의 떡’? (0) | 2012.11.13 |
---|---|
자전거 이용자 700만 시대... 서울시 자전거 인프라는 어떤가 (0) | 2012.11.07 |
고함20 기자들이 말하는 "나는 수능 날 이렇게 먹었다!" (0) | 2012.11.06 |
“정신 차려” vs “정신없이 즐겨라”, 국내외 에너지 음료 광고 비교 (0) | 2012.11.05 |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 1년, 무엇이 바뀌었나 (1) | 2012.11.0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