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타.’의 황금사자상 수상과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일궈낸 공전의 히트로 올 한해 문화예술계는 희소식에 들떠있었다. 그러나 문화산업 중에서도 각광받는 화려한 방송가를 제하면 아직 대중화의 시작점에 방점을 둔 공연 무대라는 계열은 여전히 직업으로 택하기에는 험난하고 낯선 환경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보통의 편견을 벗어던지고 꿈을 향해 경주하는 수백만의 이들이 있다. 오늘 고함이 만난 사람 또한 그 중 하나다. 마술사. 단어는 익숙하지만 아직은 생소하고 낯선 직업이다. 카메라를 든 마술사라면 더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무대라는 한 가지 키워드로 마술과 영화를 흡수하려는 20대, 주말에는 마술 공연을 하면서 주중에는 영화학과의 학업을 위해 팀 기획회의를 나선 그를 카페에 앉혔다. 바로 마술학과를 졸업하고 청주대학교 영화학과에 대학 중인 마술사 신철호 씨(22세)다.



Q. 마술사, 평범한 직업은 아니다. 어떻게 선택하게 되었나.


시작은 중학교 2학년 때 친구의 마술을 보면서였다. 무대 위에서 손짓과 동작하나에 놀라는 표정을 짓고 감동을 받는 관객들을 보면서 마술의 세계에 대한 동경을 가지게 됐다. 때문에 그 기억을 잊지 못해 취미생활로 시작해서 동호회를 찾아가게 되었고 마술 액션을 하나 둘 씩 배우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처음 무대에 올라 관객들에게서 돌아오는 반응을 접했는데, 마술을 통해서 얻은 희열과 감동이 잊히질 않더라.

그러면서 무대공연도 하고 거리마술도 하게 됐는데, 사실 믿진 않겠지만 어렸을 때는 내성적인 성격이어서 처음 거리마술에 나섰을 때 굉장히 떨었던 기억이 난다. 모르는 사람에게 대뜸 말을 걸기가 힘들지 않은가. 하지만 마술이라는 목적이 있으니까 여러 사람들에게 말을 걸 수 있었고 각양각색 반응에 재미있기도 했다. 그래서 어떤 날은 아침 9시에 길을 나서서 밤 11시까지 거리마술을 하면서 사람들을 대하는 법, 사람들의 감정을 캐치하는 법을 배워나갔다. 그러면서 서서히 내성적이었던 내가 변해가는 것을 느끼게 되더라. 사람 만나는 재미도 그렇게 알아갔고.


Q. 평범한 직업이 아니기에 진로로 선택하기엔 힘들지 않느냐. 마술사를 선택하기까지 내적인 갈등이 많았을 것 같은데.

많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그래서 처음 내 마술사 이름이 SOME이었다. (웃음) 마술에 빠지게 되면서 지나치게 빠질까봐 지은 이름이었다. 말 그대로 마술을 조금만 하자. 라는 의미로. 지금 사인을 SOME인 것도 그 이유. 아무튼 중학교 때 학급 리더 역할, 부모님의 공부에 대한 기대, 마술에 대한 열의 사이에서 내적으로 방황을 많이 했다. 마술을 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액션을 익혀야 하고 영상도 많이 봐야 하고 그러면서 또 자신만의 새로운 액션들을 창작해 내야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래서 학교 시험 친 후에 나온 성적을 보면 한숨이 나온 적도 많았다.

하지만 결국 고등학교 2학년 때, 이 생각들을 마무리 지었다. 바로 내 마술 멘토인 박문수 마술사 선생님 덕분이었다. 선생님께서 정말 힘든 순간에도 자신이 마술을 하면서 여전히 행복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을 때, 나는 ‘행복’에 대해서 참 많은 생각을 했다. 그래서 얻은 결론이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을 걷자.”라는 거였다. 그게 마술이었다. 그 후 아버지께 마술을 하면 내 자신이 행복해 질 수 있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그걸 인정해 주셨을 때, 그때부터 갈등을 접고 마술에 몰입할 수 있었다.


Q. 학창시절과 대학생활 대부분을 책과 보내는 20대들이 많은데 마술을 하면서 책이 아닌 다른 경험을 많이 했을 것 같다. 어떤 점이 좋았나.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경험도 좋지만 직접 몸으로 체험하면서 느끼는 것 또한 인생의 큰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마술을 하면서 또래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가장 좋았던 점이 마술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사람에게 다가가 짧은 시간이나마 그 사람을 알게 되고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이다. 또 사람들의 감정을 금방금방 캐치할 수 있는 재미, 그런 것들이 큰 메리트였다. 그래서 지금은 사람을 대할 때 ‘이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구나’ 하는 것들이 보인다. 여타 다른 직업들도 그럴 수 있겠지만 마술은 사람을 직접 대하고 이 사람에 한발 앞서 의외성을 주어야 하기 때문에 심리전이 강해야 한다. 그래야 사람의 행동 예측하고 그에 대한 자신의 반응을 생각해낼 수 있다. 그래서 사람을 대하는데 보다 철저하게 된다. 때문에 나쁜 점 하나는 본의 아니게 직업적으로 타인의 행동을 앞서 계산하게 된다는 거.

하지만 그런 단점보다 장점이 더 큰 이유는 나의 예측이나 계산이 사람을 기쁘게 해줄 수 있는 방향으로 간다는 것. 나의 행동 하나에 타인이 신기함을 느끼고 그게 놀람과 웃음으로 나타나는 것. 그것이 결국은 모두의 행복으로 마무리 된다는 것. 그게 매력이다. 그리고 그 반응들이 바로 앞에 있는 나에게 직접 전달되니까. 그래서 마술사와 관객 사이에는 이기심이 없다. 그게 좋다.


Q. 그런데 지금은 마술사면서도 영화학과에 다시 진학했다. 영화학과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꿈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 당장 사회에 나가서 직접 마술사로 생활하면서 대외활동하고 커리어를 쌓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다시 대학을 선택한 이유는 세상에는 아직 내가 더 배워야 할 것들이 있고 그걸 통해 스스로 더 많은 능력을 키우고 싶어서였다. 영화가 가지고 있는 시나리오적 강점과 기술친화적인 무대기획, 더불어 홍보 마케팅에 대한 것까지. 그러면서 세부전공으로 택한 연기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어차피 무대 위의 모든 삶이, 마술사건 서커스건 배우건, 모두 배우라고 생각한다. 모두 다 연기가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나아가 마술과 연극이라는 서로 다른 장르적 영역을 넘어서 매지컬이라는 장르를 개척하고 싶다. 사실 매지컬이라는 장르가 우리나라에 있기는 하지만 아동들에 초점을 맞춘 공연이 대부분이고 그런 열악한 환경에 공연가로서 한계를 느끼곤 했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선 연기를 연기자만큼 소화할 수 있는 마술사가 부족하며, 마술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고 있는 시나리오 작가도 찾기가 힘들다. 또 공연적인 효과를 위하여 특수하게 쓸 수 있는 무대를 확보하기도 힘들고. 무대 콘텐츠의 다양성과 좀 더 양질의 무대를 위해서 이런 것들을 스스로 배우고 싶었다. 그래서 조금 더 나이가 들면 이런 매지컬이라는 장르의 성장에 기여해 공연의 다양성을 높이고 싶다. 요새 많은 사람들이 ‘융복합’을 강조하고 있지 않은가. 이를테면 매지컬도 공연에 있어서의 ‘융복합’이다. (웃음)




Q. 하지만 여전히 영화와 마술의 접점은 상상하기가 힘들다. 
그렇다면 영화와 마술의 접점, 무대와 필름의 사이에 당신의 꿈은 어디에 있을까.

보통 별개의 장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영화를 처음 만든 사람의 직업이 마술사와 깊게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보통 연극, 마술, 무용 같은 순수 무대극 같은 경우엔 고대 그리스의 제 의식에서 뿌리를 찾는다. 주술사나 종교 신앙적인 초자연적인 것들 말이다. 특히 연극이나 마술은 그리스의 디오니소스 제에 근본이 있다. 영화는 카메라가 등장하고 난 후 무대예술에 기술이 결합되어 나타난 새로운 현상이었다. 영화는 무대예술의 순간성을 극복하여 보전가능하고 지속적인 매체를 만들어 내면서 발전되어 나간 거니까. 이러한 지속성을 마케팅과 결합시켜나가면서 마케팅 쪽 영역에선 영화에서 배울 점도 많고. 


Q. 그럼 보다 직접적으로 연극학과를 갈 수 있지 않았을까. 영화학과를 선택한 이유는?

이전에 청주대학교에 연극영화과가 있었다. 지금은 영화학과가 남았는데 학과 뿌리가 같기 때문에 연극과 영화파트 수업을 같이 들을 수 있다. 그리고 특히 또 영화학과를 선택한 이유는 전에 이미 마술학과의 무대마술전공을 졸업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도 무대 쪽으로 배워야 할 것들이 많이 남아있지만 좀 더 영역을 넓혀 영화 쪽으로 많은 것들을 배우고 싶었다. 영화나 영상은 전문적으로 배워야만 하는 기술적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기술적인 부분을 놓칠 순 없어서, 그리고 목표점인 매지컬이라는 공연기획을 위해서 시나리오적 역량을 강화시키기 위해서라도 영화학과의 진학이 필요했다. 또 무대인으로써는 볼 수 없는, 무대와 분리되어야지만 무대를 제대로 볼 수 있다는 생각도 있기도 했고. 예를 들어 연극은 연속적이어서 컷 분할이 자연스럽지 않지만, 영화에선 컷 분할이 필요하다. 그런 기준들의 감각을 익히게 되면 그런 기술들을 공연에 적용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Q. 당신의 인생에서 ‘무대’ 혹은 ‘마술’이란?

내게 무대란, 나는 누구인가를 증명하는 길이다.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자신을 증명할 한 가지 방법을 선택한다고 생각한다. 나를 표현하는 도구적인 방편. 한 분야를 선택해서 성장해 가는 길 말이다.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공부일 수 있고 누군가에겐 그것이 돈일 수 있고 누군가에겐 그게 무대이고 ‘쇼’일 수 있다. 이를테면 마술과 영화는 나를 보여 줄 수 있는, 내가 걸어가는 길을 기꺼이 증명할 수 있는 마스터피스다. 장인정신 같은 거. 세상에 나를 보여 주고 싶다.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보여주고 싶다. 나를 소개하는 어떤 것. 세상 사람들이 여기에 존재하는 나를 알아줬으면 내가 세상에 어떤 것을 말하는지 호소하는지 어떤 것을 원하는지, 사람들과 소통하고, 나를 공유하고 싶은 생각이 강하다.

그리고 그 공유는 진실해야 한다. 마술을 위해서 연기를 배우지만 연기를 배우면서 느낀 것은 연기가 ‘진실’을 보다 더 ‘진실’되게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다. 연기란 ‘주어진 상황과 반응여 개처럼 단순하게 반응할 수 있는 것.’ 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게 바로 연기가 아닌가 싶다. 연기라는 리액션을 통해 보여주고 싶은 것을 순수하게, 그리고 진실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것. 물론 연기에 대한 판단은 관객의 몫이다. 하지만 표현하는 나와 반응하는 관객의 메시지가 제대로 전달될 때 그게 바로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이 아닐까. 때문에 나는 이 길에 기꺼이 몰입하고 몰두하며 관객들과의 하나의 공간을 만든다. 나와 관객들이 공유하는 소통의 공간 말이다. 그리고 그 공간 안에서 행복과 희망, 꿈. 긍정적인 삶의 에너지를 주고받고 싶다.


Q. 차기 대통령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공연에 대한 의식적 부분을 개선해 줄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나라의 공연문화는 아직 ‘이리 오너라’ 문화에 가깝다. 예술가를 광대놀음이라고 생각하는 문화가 여전히 남아있다. 그런 탓인지 해외에는 무대 예술가를 초청할 때 시스템을 갖춘 후 초청하지만 우리나라는 무대 예술인이 그 시스템을 스스로 만들어 나가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차기 대통령에 당부하고 싶은 것은 우리 사회에 있는 문화계 분들이 각광받고 중요시 여겨질 수 있는 토양을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나는 문화인을 사회라는 열매의 껍질이라고 생각한다. 문화인들은 모든 것을 방어해줄 수 있으면서 속이 썩어도 끝까지 형태를 유지시켜줄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차기 대통령도 우리나라라는 열매가 조금 더 단단하게 맺을 수 있도록 그 껍질 또한 아낌없이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활발하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굳이 마술의 영역에 국한되지 않더라도, 더 많은 문화적인 영역에 투자와 지원이 필요하다. 그래서 공연하는 사람들이 보다 각광받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