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섯, 병역 의무를 마친 남자 대학생이 대학을 졸업할 만한 나이다. 보통 취업을 준비하는 나이에, 대학 시절 책을 읽고 틈틈이 써둔 글들을 모아 졸업과 함께 책을 낸 사람이 있다니. 평범한 대학생은 아니었구나 싶다. 취미로 글을 쓰거나 동아리에서 활동했다 하더라도 어디 책 한권을 뚝딱 써내는 것이 쉬운 일인가 말이다. 아니나다를까. 조곤조곤한 말투 안에서 책을 통해 얻은 진중함이 물씬 느껴진다. 본인의 저작 <스무살, 정의를 말하다>에서 느껴지는 단단한 문체와도 닮은 듯하다. 20대 저자 고재석 씨를 만났다.



Q.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네. 저는 대학에서 역사학과 정치학을 공부했고, 현재 대학원에서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문화연구, 예술사회학을 전공하고 있는 스물일곱 고재석이라고 합니다.


Q. 작년 출간된 <스무살, 정의를 말하다>는 어떤 책인가요? 소개 부탁드려요.

한 문장으로 갈음한다면, 또래나 후배, 혹은 넓게 보면 한국 사회의 젊은 사람들에게 “인문 시민이 되기를 권함”이라는 목적을 지니고 출간된 책이에요. 다종다양한 10개의 소재가 언뜻 보면 일원화된 틀에 묶이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제가 계속 마음속에 품고 있는 “인문 시민”이라는 개념을 사람들에게 공론화해보자는 생각에서 발행하게 되었습니다.



Q. 부제가 ‘우리 사회의 위선을 찢어발기는 10개의 인문학 프레임’이라고 되어 있는데요. 인문학과 사회와의 관계에 대해 관심을 많이 가지고 계신 것 같아요.


여기 쓰인 ‘인문학’은 대학의 분과 학문으로 불리는 문학, 철학, 사학의 합집합이라는 의미는 아니에요. 그보다는 정치학, 사회학, 언론학 등 사회과학을 포함하는 넓은 범주에서 썼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쓰는 인문학이라는 표현은 사회에 대한 얘기겠지요. 기업에 다니는 친구들이 경제라는 프레임으로 사회를 보고, 운동선수들이 스포츠라는 프레임으로 사회를 보듯이, 제 스스로가 사회를 보는 나름의 프리즘
이 인문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Q. 그럼 이 책을 쓰게 되신 계기는 무엇인가요?

우선 개인적인 계기는, 대학 시절을 나름대로 재미있게, 열정적으로 살았는데, 스스로에게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내가 이 시기에 사회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이 이것이었다, 하고 기록하고 싶었던 거예요. 사회적 계기라 할 수 있는 것은 스물 두세 살 즈음, 우석훈 교수님의 인터뷰를 보고 나서 생겼어요. 20대에게 인터넷에서 댓글만 달지 말고 책을 쓰라는 말을 해주셨는데, 댓글이 100장 모여지면 책이 된다고 하셨어요. “20대가 책을 쓰는 사회가 선진사회다.”는 말씀이 기억 속에 강하게 남았어요.


Q. 10개의 프레임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거나, 지금 상황에 특히 들어맞는 주제가 있다면 어떤 게 있으신가요?

첫 번째 프레임 “알리바이”입니다. 제가 가장 중요하게 바라봤던 당시(2010, 2011년) 한국사회의 문제가 참여에의 욕구였어요. 한국 사람들이 남에게 관심이 굉장히 많다고 생각해요. “나는 꼼수다”가 큰 인기를 끄는 것도 참여에의 욕구가 심층에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같은 맥락에서, 문제 제기를 할 때 자주 쓰이는 레토릭(수사)이 정의, 상식, 공정 같은 단어들인데, 그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빠르게 확산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욕구가 사회의 발전을 위해 좋은 도구가 될 수 있지만, 길을 잘못 들면 위험한 폭력의 도구가 될 수 있어요. 누구나 더 큰 권력에 대한 두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지만, 그 두려움이 있다고 해서 엉뚱하게 해소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얘기를 꼭 첫 글로 쓰고 싶었어요.


Q. 책이 발행되기까지 어려운 점이 있었다면?

저는 운이 좋은 경우라 발행 과정에서 어려운 점이 딱히 있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스물둘에 원고를 내 봤다가 거절당하고, 스물여섯 살에 다시 원고를 출판사 네 곳에 보냈는데 두 군데에서 긍정적인 답변이 왔어요. 원고를 고치는 과정이 어렵다면 어려운 과정이었어요. 책 컨셉에 맞게 써야 했기에 절반 정도 다시 써야 하는 상황이었거든요. 짧은 시간 내에 많은 원고를 마감 시간에 맞춰 써야 했는데, 처음으로 ‘마감에 쫓긴다‘는 게 뭔지 알 것 같더라고요. 지금 생각하면 그래도 즐거운 과정이지 않았나 싶어요.


Q. 20대에 이런 책을 쓰신 정도면 굉장한 성취를 이루신 거라고 생각하는데, 어떠신가요? 앞으로의 저작 활동 계획도 함께 듣고 싶습니다.

내년 8월에 마무리될 석사 논문을 쓰고 있기 때문에 지금 저에게 가장 중요한 저작 활동은 그거에요.(웃음) 혹시 계기가 된다면 ‘독서론’에 대해 단행본을 낼 수 있으면 좋겠어요. 대학 시절 가장 중요하게 얻은 것 하나가 많은 책을 읽고, 그 다음 내 손으로 글을 쓰는 것이었거든요. 직접 해 보고 배웠던 것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소비될 수 있는 좋은 방법, 독서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책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아주 오랫동안 해왔어요. 겨울방학 이후에 본격적으로 쓸 것 같아요.


Q. 책의 ‘저자 소개’ 칸에는 “통찰력을 가진 커뮤니케이션 학자와 감수성 있는 인문 시민으로 살아가는 것이 지금 가진 인생의 목표다.”라고 쓰여 있는데, 지금도 그러신가요? 바뀐 게 있으시다면?

고등학교 때 처음 신문을 읽고, 세상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때부터 변하지 않는 꿈이 있다면, 세상에 대한 통찰력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는 거예요. 좀 더 구체적으로는 공적 영역에서 활동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공적 영역에서 담론을 생산하고 내가 가진 지식을 사람들과 같이 토론하는 것이 인생의 목표에요. 좋은 사회과학자가 되는 것은 공적 영역에서 활동하는 중요한 방법이기 때문에 여전히 변함없고요. “다음 세상이 있다고 믿지 않기 때문에 동시대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나름대로 가치 있게 살고, 흔적을 남기는 것이 인간의 삶이라고 생각한다.”라는 안철수 교수의 말을 좋아해요. 저도 무언가 저의 흔적을 남길 수 있는 인생을 살고 싶습니다.



Q. 대학 시절은 어떠셨는지 궁금해요.

정말 재미있고, 행복했던 시간입니다. 정체성과 가치관을 형성하게 한 공간이 대학 시절 살았던 회기동인데요. 거기서 책을 읽고, 사람들을 만나고, 시간날 때마다 골목을 돌아다니며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키웠어요. 되든 안 되든 하고 싶은 것은 일단 다 하자는 생각에 밴드도 해보고, 3학년 때부터는 학생회를 시작했어요. 학교와 관련된 정책에 대해 목소리를 냈는데, 나의 가치관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인생 최초의 시간이었죠. 가치관이 형성되었던 시기였기에 행복했던 시간이었어요. 성공을 많이 했다기보다는 이것저것 풍성하게 경험함으로써 의미를 얻은 시간이네요.


Q. 20대가 지니고 있는 가장 장점이나 가능성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또는 현재 20대가 지닌 단점이 있다면?

저도 20대이고, 너무나 다양한 특징들이 있기에 굉장히 조심스러운데, 지금의 20대가 가진 큰 장점은 유연한 사고, 진취성. 표현의 자유라고 생각해요. 새로운 미디어의 발달로 인해 언제든지 좋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사회이기 때문이죠. 굳이 단점을 찾자면, 그 진취성을 공적 영역에서는 발휘하지 않는 것 아닐까요. 유연함과 진취성을 발휘하면 더 큰 힘을 만들 수 있을 텐데, 워낙 살기 힘든 시기이기 때문에 요구하기는 어렵지요. 따라서 세대적인 문제라기보다는 구조적 문제라고 봐요.


Q. 정치권에 제안하고 싶은 정책 혹은 대선 공약이 무엇인가요?

2008년 총학생회장 나갔을 때 내세웠던 공약 중 하나가 자취방 무이자 대출 공약 제도예요. 대학에서 가장 먼저 했는데,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겠다.” 같은 거창한 담론도 좋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작은 돈의 문제가 아닐까 해요. 제 선거 슬로건이 “Real Life"이었는데 이것은 이념보다 월세, 교통비, 식비 같은 문제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각 대학과 계약된 독점은행과 협의하여, 신용이 보장된 학생들에게 학교 차원에서 보증금을 대주는 정책을 제안하고 싶어요. 현재 서울시 차원에서 조금이나마 시행되고 있다고 알고 있지만, 임대주택의 경우 운 좋은 소수의 학생만 들어갈 수 있잖아요. 보증금 문제에서 부담을 줄여주면 학생들에게 괜찮은 보완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방에도 많은 대학이 있기 때문에 국가 차원에서 정책적으로 세밀하게 설계했으면 좋겠어요.


Q. 차기 대통령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얼마 전에 트위터의 어떤 기자가 자신을 소개하는 글에 “아군은 내 생각만큼 선하지 않고, 적군은 내 상상만큼 악하지 않다.”라고 쓴 것을 봤는데 공감했어요. 어차피 민주주의 사회가 통치가 아니라 협치에 의해 운영되어야 한다면, 대통령 개인이 철학적으로든 사상적으로든 그런 생각을 진심으로 품어야 하지 않나 생각해요. 누가 되더라도 저쪽 편을 다 쓸어버리겠다는 식의 생각으로는, 실제로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해요. 2008년 스물 세 살의 어린 애가 학생회장 한답시고 “Real Life"를 내세웠듯이,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누가 되는가보다는 자신들의 따뜻한 방이 더 중요하다, 라는 생각을 가져주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