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뗏목에 배가 표류하듯 흘러가는 대선 정국이다. 한 편의 잘 짜인 드라마 같았던 안철수 후보의 등장과 사퇴. 그리고 드라마마저 만들 수 없었던 심상정 후보의 사퇴와 한국 최초의 노동자 무소속 대선 후보의 등장까지. 선거 곳곳에 <사랑과 전쟁>을 방불케 하는 애증들이 넘친다. 진보·민중·노동 진영을 자처하며 나온 예비후보는 넷. 지지율은 합쳐서 2%도 되지 않는다. 이기려고 나온 선거가 아니라고 그들은 말한다.


part 1. 연대하자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분명한 노동적 기조, 하지만 확연히 다른 북한에 대한 시각 속에서 민주노동당은 시작부터 삐걱거렸을 게 분명했다. 이전부터 이어져 내려오던 학생 운동권의 큰 줄기인 민족 해방 전선(NL)과 민중 민주 계열(PD)이 진보 정당을 함께 만든다는 구상 자체는 참신했으나 많은 진통을 야기했다. 한 쌍의 연인이 헤어지는 데도 수많은 원인이 필요한데 하나의 정당이 분당까지 이르는 과정은 얼마나 많은 싸움과 실망을 거쳤을까? 민주노동당 내 대부분의 지도부가 NL 세력으로 교체되면서 결국 2008년, 이 동거는 한여름 밤의 꿈으로 끝난다.

이후 노회찬·심상정 등이 속한 PD 계열은 진보신당을 창당한다. 진보신당은 민주노동당과는 다르게 북한을 우호적 대상으로 여기지 않고 독재를 비판적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에서 탈당한 후 3년 동안 진보신당는 혹독한 시절을 경험했다. 노동계의 가장 큰 세력인 민주노총이 여전히 민주노동당을 지지해, 진보신당이 세력을 확장하는 데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 역시 총선을 맞아서 노회찬, 심상정과 같은 스타 정치인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2011년 뜻이 맞은 그들은 다시 합친다. ‘좌클릭’을 한 유시민계의 국민참여당까지 함께했다. 통합진보당의 탄생이었다.



part2. 너무 아픈 대선은 대선이 아니었음을 (feat. 이정희)



단일화는 언제나 범진보 후보들의 이슈였다. 그들에게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 ‘단일화를 해야지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은 노태우 정권을 탄생시킨 87년 대선을 통해 깨달은 가장 큰 자산이었다. 실제로 19대 총선 때도 통합진보당과 민주통합당은 야권 단일화와 정권 교체를 위해 결의한 바 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2012년 대선의 단일화 화두는 민주통합당의 문재인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후보로 넘어가게 된다. 원내 3대 정당이었던 통합진보당은 어디로 가버린 걸까?

때는 올해 3월로 넘어간다.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후보자 경선에서 부정 의혹이 발생한다. 이정희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는 물증이 없기 때문에 섣부르게 판단하기 곤란하다고 말했지만 이미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총선 당시 220만 표를 얻어 제3당으로 올라섰던 통합진보당의 지지율은 추락하기 시작했다. 이후 당내 갈등이 확산되면서 난투극이 일어나는 한편 창당한지 1년도 안되어 다시 분당한다. 통합진보당에는 결국 ‘당권파’로 불리는 경기동부 세력만 남았다. 이번 대선에서 이정희 후보는 1% 내외의 낮은 지지율을 보이며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통합진보당의 이정희 후보는 대선 단일화 국면에서도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5명의 군소 후보 중에서 인지도는 가장 높다. 공약도 다른 후보에 비해 선명하다. 우선 통합진보당이 현 정부에 비판적인 시각을 보이며 ‘반MB전선’으로 뭉치자고 주장했던 것만큼, 한미 FTA 폐기나 4대강 사업 중단과 같은 이명박 정부가 추진했거나 추진 중인 정책들을 되돌리는 공약들을 내세웠다. 또한 반값등록금 실현 교육법 개정이나 부패사학비리를 척결하는 대학 관련 정책과 비정규직 사용 사유 제한 법제화 등의 공약을 내놓았다. 또한 ‘COREA위원회’를 구성해 적극적으로 통일에 기여하는 대북 정책을 주장했다.

통합진보당을 나간 ‘진보신당 탈당파’와 ‘참여계’는 진보정의당을 창당한다. 진보정의당에서는 심상정 18대 대선 예비 후보가 야권 연대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출마를 선언했다. 대북 정책과 세부적인 복지 관련 공약만 다를 뿐 정치 혁신과 경제 민주화·노동정책 등의 공약은 이정희 후보와 대동소이하다.


이정희와 심상정, 둘의 지지율은 합쳐도 1% 남짓밖에 되지 않는다. 지지율이 다가 아니라고 이야기하지만 대중 정치인으로서 지지율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지금 이들의 심정은 시청률이 저조하지만 애써  시청률이 다가 아니라고 말하는 드라마 관계자의 심정과 비슷하지 않을까. (심상정 후보는 후보 등록 전 야권단일화를 위해 사퇴했다.)


part3. 여기도 사람이 있다



이야기는 다시 총선 직전의 진보신당으로 되돌아간다. 과거 진보신당을 창당했던 주역들이 모두 빠져나간 진보신당에게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먼저 진보신당은 원외(外)당이었던 사회당과 총선을 앞두고 합당을 한다. (정당법상 ‘흡수합당’, 당명은 진보신당으로 유지) 진보좌파세력을 최대한 결집하려는 노력이었다. 그리고 청소노동자 김순자를 진보신당의 비례대표 1번으로 혜성같이 등장시킨다. 아쉽게도 진보신당이 정당 득표율 3%을 넘지 못해, 김순자 후보는 국회에 들어가지 못했다. 하지만 청소노동자를 당의 비례대표 1번으로 세운 것은, 노동자와 서민을 대변하는 진보신당의 정체성을 명확히 보여준 선택으로 비춰졌다.

그리고 반년이 지났다. 진보신당은 이번 대선에서 후보를 내지 않았다. 당의 역량이 대선후보를 내기에 역부족이라는 판단에서였다. 대신 진보신당은 당 차원에서 ‘노동자 대통령 후보’로 대선에 출마한 김소연 후보를 지지하기로 결정한다. 김소연 후보는 금속노조 기륭전자 전 분회장으로 여러 투쟁들을 이끈 경력을 갖추고 있다. 지난 11월 4일 민주노총 금속노조, 공공운수노조 ‘노동자 대통령 선거투쟁본부 준비위원회’의 ‘노동자 대통령 후보 선출위원회’는 김소연을 대선 후보로 추대했다.

그러나 총선 당시 진보신당의 비례대표 1번이었던 김순자 후보는 무소속 출마를 결정한다. 김순자 후보는 진보신당의 방침에 대해 “(당에서 대선 후보를 내지 않겠다는 방침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대변하기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겠다는 것”이라며 진보신당을 비판한 이후 탈당한다. 당원들의 충격은 컸다. 게다가 김순자 캠프에는 진보신당 내에 있는 사회당계 인물들이 동참하는 것으로 알려져 파장은 더욱 커졌다. 이로 인해 사회당 계열 당원들과 이전부터 진보신당에 있었던 당원들 간의 당파 싸움이 일어났다. 평탄하게 진행된 것 같던 합당의 후유증이 뒤늦게 나타난 것이다.

김소연 후보와 김순자 후보, 이 두 진보·노동계 후보의 정치 타겟층은 비슷했고 공약 역시 마찬가지다. 김소연 후보와 김순자 후보는 단일화나 야권 연대가 노동자들의 삶을 해결해줄 수 없다고 말하며 4대 과제를 내놓았다. 지금 당장 노동 현장에 당면한 정리해고·비정규직법 철폐를 주장했고 여성·장애인·성소수자 등 인권 보장을 선언했다. 또한 재벌재산 몰수·무상교육·무상의료와 같은 복지 공약과 제주 해군기지 건설 중단·핵발전소, 4대강 사업 중단과 같은 환경·생태 관련 공약도 비슷했다. 김순자 후보는 울산과학대학교 청소노동자로 일했던 만큼 ‘청소노동자 안식제’를 공약으로 들고 나왔다.


하지만 이 두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될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여론과 미디어는 무심했다. 오로지 뉴스에서 보이는 건 문재인-안철수의 단일화를 통한 정권 교체, 그리고 이에 대항하는 박근혜 뿐이다. 이들을 포함한 지지율 조사는 찾아볼 수도 없다. 캐스팅보트(Casting Vote)는커녕 12월 19일 대선까지 보트(Boat)를 저을 사람도 부족하다. 이들의 정책에 찬성하는 사람들도 사표는 던지기 싫다는 입장이다. 당신은 어떤 자세로 대선을 기다릴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