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에게 별명이 있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별명 있니? 하는 물음에 없어, 라고 대답한다면 둘 중 하나다. 당신이 별로 인기가 없거나, 남에게 부각되는 특징 하나 없는 무미건조한 사람이거나.

하물며 일반인들도 그런데, 우리의 대통령 후보자님들께서는 오죽하시겠는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핫이슈인 분들이니 수많은 별명들은 지극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 중에는 어느 날 갑자기 누리꾼들에 의해 ‘뿅’ 하고 나타난 출처 불분명한 별명도 있겠다. 하지만 어떠랴. 결국 그런 별명들도 그 사람의 특징과 이력을 나타내는 좋은 장치 아닌가.




박근혜

수첩공주: 이제는 완전히 고유대명사다. 8년 전 국가보안법 개정을 놓고 벌인 열린우리당 측과의 4자 회담에서 얻은 이후로, 이제는 정말 입에 찰지게 감기는 별명이 되었다. 그때도 수첩에 적은 말을 되풀이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받았는데, 맙소사, 8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수첩은 그녀의 필수 아이템이다. 누군가가 말할 때면 어김없이 수첩이 펼쳐지고 펜은 바빠진다. “국민의 소리를 늘 수첩에 직접 적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수첩을 항상 보고 다닌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수첩공주라는 별명은 ‘원칙, 신뢰, 약속’의 상징이 되었습니다”라고 새누리당은 말한다. 그런데 이건 뭐, 애써 외면하는 건지 정말 저게 국민의 마음인줄 아는 건지. 진중권이 이렇게 말했다고. “풋, 그러다 수첩 분실하면 국가유고사태 벌어져요.” (자매품: 박설공주, 얼음공주, 유신공주)

발끈해: 이 별명의 시작은 조국 교수였다. 조 교수는 트위터에 “박근혜 전 대표는 불편한 질문과 비판을 참지 못한다”며 박 대표가 최근 ‘발끈’했던 질문 몇 가지를 이야기했다. 박근혜는 2004년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진행자가 한나라당 경제 살리기에 대해 질문하자 ‘지금 저하고 싸움하시는 거예요?’라 했고, 2011년 1월에는 복지문제와 관련된 기자들의 질문에 ‘한국말 모르세요?’라고 했으며, 그 해 9월 안철수 현상에 대한 질문에는 ‘병 걸리셨어요?’라고 대답했다. 조 교수는 엄숙하게 말한다. “영애 박근혜님이 ‘평민’들과 겸허히 소통하는 법을 배우기 전까지 새로운 별호를 지어 올리고자 한다. ‘발끈해!”

바꾸네: 7월 대선 출마 당시 박근혜의 캐치프레이즈는 ‘박근혜가 바꾸네’였다. 그렇게 입에 달고 다니던 ‘변화’와 ‘쇄신’을 강조한 문구다. 실제로 그 이후 ‘국민 대통합’이라는 기치 아래 봉하마을에 내려가기도 했고, 반값등록금을 외치는 대학생들, 비박계 의원들과 전격적으로 만나기도 했다. 10월 말에는 ‘유신 시대의 아픔과 상처를 안고 가겠다’며 직접 유신에 관한 사과를 했다. 그런데 이 별명은 전혀 다른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윤관석 민주통합당 의원은 지난 8월 이런 말을 했다. “원칙과 신뢰를 늘 강조한 박 후보지만, 정작 본인의 필요에 의해 입장 번복을 수차례 해 왔다”라고. 이에 빗댄 패러디. ‘박근혜가 (말을) 바꾸네!’

야근혜, 친근혜: 전자는 <힐링캠프>에서 한혜진 씨가 ‘일을 많이 하니까 ’야근혜‘ 어떠냐’라고 제안해 붙은 별명이고, 후자는 박근혜의 공식 페이스북 계정 이름이다. 불통 이미지를 극복하고 ‘친절한 근혜씨’ 이미지로 다가가려는 전략인가 보다. 대학생들과 만남도 가지고, 정책에 대한 구상도 꾸준히 하는 등 노력은 많이 하는 것 같은데, 왜 여전히 20대들은 박근혜를 ‘친근혜’라고 차마 부르지 못하는 걸까? 빨간 운동화가 아무리 이리저리 뛰어 주어도 결국은 박근혜가 구두를 신고 직접 뛰어야 할 텐데. 잠깐, 손에 든 그 수첩 좀 내려놓고.



문재인

노무현의 그림자: <힐링캠프>에서 문재인이 가장 좋아하는 별명으로 꼽은 별명. 은혜를 많이 입기도 했고, 노무현의 비서실장으로 정치를 처음 경험했으니 애착이 클 수밖에. 그런데 문재인이 지금도 그 별명에 애착을 가지는 게 좋을까? 반대파들이 문재인을 비판하는 이유 중 하나가 노무현의 모습이 그에게서 보이기 때문인데, ‘나는 노무현의 안에 있소’ 라고 선언하는 별명을 좋아한다라. 외연을 넓혀야만 할 상황에서 이게 무슨 말인가. <힐링캠프>에서 한혜진 씨가 ‘문제일’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노무현을 넘어선 1인자가 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데, 참 핵심을 잘 찔렀다. 차기 대통령이 전임 대통령에 묻어가면 아니아니, 아니 되오! (자매품: 노무현의 친구)

문제아: 이름도 이름이지만 레알 학창 시절 문제아 맞았다. 머리가 굵어지면서 사회에 대한 반항심도 생기고 고 3땐 술·담배도 했다. 고교 시절에만 네 번의 정학을 당했는데, 1·2학년 때는 유급처지에 놓인 친구에게 시험 답안지를 보여주다가 걸렸고, 3학년 때는 여름방학 끝날 무렵 학교 뒷산에서 술 마시고 담배 피며 놀다가 주임 선생님한테 걸렸다. 지금 마음씨 좋은 아저씨, 신사 이미지로 사람들의 호감을 얻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의외다. 오우, 역시 사람을 겉모습만으로 판단할 순 없나 봐, 그런데 어느 샌가, 이러한 과거가 멋지게 포장되어 나오네, 참, 이미지메이킹 능력 대박인 듯.

선비: 반듯하고 청렴한 이미지로 인해 붙은 별명. 그러나 이걸 좀 삐딱하게 보면 말 그대로 ‘샌님’ 아닌가? 대통령이 되면 카리스마가 부족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그래서다. 이에 문재인, 고심 끝에 히든카드를 내미는데! ’대한민국 남자‘라는 슬로건을 내걸며 특전사복을 입은 채 주먹을 불끈 쥔 모습을 선보였다. 그런데 이거야 원, 반감만 실컷 샀다. 왜 저렇게 강하게 남성성을 강조하느냐, 너무 가부장적이다, 등 다양한 욕을 먹았다. ’이건 뭐지……?‘라는 반응을 유발케 했던 이 슬로건, 안습하게도 결국 얼마 후 폐기되었다. (자매품: 신사)

덧. 박근혜의 ‘여성 대통령’론을 민주통합당 측에서 비판하고 있는데, 솔직히 ‘대한민국 남자’라는 이 희대의 슬로건을 생각해 보면 과연 민주통합당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가, 모르겠다. 여성 대통령이나, 대한민국 남자나, 너무 표면적인 것만 가지고 남성성이니, 여성성이니 하는 걸 논하는 거 아냐?

문제인: 주로 문재인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그의 이름에 빗대어 문재인을 ‘까기’ 위해 만든 별명. 발음도 같고 모양도 비슷해 문재인을 까고 싶어하는 이들에겐 안성맞춤이다. 주 사용처는 일베, 디시 등 보수 성향의 커뮤니티긴 하지만 인터넷 곳곳에서도 볼 수 있다. 뭐 이분들이야 그렇게 부르는 게 일상이라 치더라도, 반-박근혜 층에게도 자칫하면 ‘문제인’이라 까일 위기다. 안철수를 사실상 물러나게 한 원인으로 지목받는 상황에서 박근혜한테 진다는 건, 결국 친노를 제외한 거의 모두에게 까인다는 것. 이렇게 조금만 엇나가도 문제인이 될 소지가 크니, 참 문제다. (자매품: 문죄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