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우로 변신한 박유천, 그가 보고 싶다

보고 싶다. 그가 보고 싶다. 그의 훈훈한 외모 때문인지 한정우라는 매력적인 캐릭터에 동화된 박유천의 연기력 때문인지 매주 그가 보고 싶다. 드라마 '보고 싶다'는 아역들의 열연으로 호평을 받은 후, 성폭행범의 리얼한 연기로 또 한 번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성폭행 문제를 다시 한 번 더 수면 위로 드러내면서 문제적인 드라마로 논란이 되었다. 성폭행 피해자의 아픔이 극대화되어 피해자 가족의 복수로 귀결되는가 하면 또 다른 성폭행 피해자는 평생 그 아픔과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받은 상처를 안고 복수를 감행하려 한다. 어린 시절 겁이 많았던 정우는 수연이를 찾기 위해 형사가 되고 조이로 변한 수연이를 발견하지만 수연이는 한없이 차갑다. 정우는 수연이의 화가 풀릴 때까지 수연이를 기다리고자 한다. 수연이가 매몰차게 굴어도 정우는 변함없다. 기다려도 오지 않으면 오고 있는 중이라고 굳게 믿으며 자신이 받은 상처보다 수연이가 받아온 상처를 생각하며 수연이를 걱정한다. 그렇게 한정우(여진구, 박유천)는 삐딱해진 수연(김소현, 윤은혜)이 어린 시절의 이수연 본 모습을 되찾게 해 준다.




'보고 싶다' 가 보고 싶은 이유

드라마에서 다루기 무거운 소재인 성폭행 피해자의 심경을 멜로라는 장르 안에 둠으로서 문제를 부각시키는 데에는 성공했다. 그간 수많은 영화 '밀양' '오늘' 등에서 던져왔던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할 수 있는가.' 라는 물음에 대한 드라마 '보고 싶다' 의 답은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가해자는 용서받지 못하고 복수를 당한다. 피해자의 인권보다 가해자의 인권을 두둔해왔던 일부 사회의 시선에 화살을 던지며 피해자의 아픔을 부각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그러나 다른 성폭행 피해자의 엄마가 수연이의 성폭행범을 죽이고 수연이의 엄마가 다른 피해자 엄마에게 고맙다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지나치게 작위적이다. 게다가 지문을 없애는 것만으로 한정우는 수연이의 부분 범죄를 감출 수 있을 정도로 허술한 B급 범죄 수사물이다. 늘 등장하는 뻔한 재벌과 사이가 좋지 않은 부자관계, 삼각관계, 오른팔의 배신, 앙심을 품고 하는 복수 등이 속속들이 등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청자들이 '보고 싶다'를 애타게 보고 싶어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바로 차가웠던 수연이의 마음을 되돌린 한정우의 순정 때문이다. 순정은 오래된 소설에서나 볼 법한 인간 본연의 감정이다. 그러나 요즘, 00남 00녀는 많지만 순정남 순정녀를 찾기는 힘들다.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인스턴트식 사랑이 난무한 요즘, 한정우 같은 캐릭터는 거의 천연 기념물 급이다. 한정우의 순정은 차가워진 수연이를 다시 웃게 만들 뿐만 아니라, 시청자를 가슴 떨리게 만든다. '내게도 저런 순정남이 나타날 수 있을까 부터 나타난다면 얼마나 좋을까'까지 한정우라는 캐릭터는 무한한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미친 토끼'라는 별명을 지닌 형사를 연기하는 박유천의 연기는 일품이다. 박유천 이외에도 아역들의 바통터치를 이어받은 성인 연기자들(유승호, 윤은혜)의 자연스러운 연기에서 어린 시절 주인공들의 모습이 종종 보여서 아역 따로 성인 따로 놀지 않는 것도 이 드라마의 미덕이다.

반전도 ‘보고싶다’의 미덕. 뻔한 멜로드라마가 아니다

시청자는 드라마 주인공들의 갈등을 통해 드라마에 몰입하게 되고 갈등 해소가 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드라마 속 주인공과 하나가 된다. 갈등이 드라마의 핵심 요소라면 드라마의 숨겨진 반전은 오늘날 드라마의 트렌드다. 시청자를 멘붕에 빠트린 000드라마의 반전, 범인은 000이었다 등 드라마에 반전이 가미되면 시청자들의 이목을 끌기 쉽다. 사람들은 뻔한 드라마보다는 신선한 드라마, 예상치 못한 전개를 꿈꾸기 때문이다.

드라마 ‘보고싶다’ 에도 곳곳에 반전이 숨겨져 있었다. 강상철(성폭행범)을 죽인 사람이 정우가 친하게 지내던 청소부 아줌마로 밝혀지나 싶더니, 진범이 따로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정우는 진범으로 해리를 의심하게 된다. 해리의 온라인상의 조력자 ‘친구’ 는 한태준(정우 아버지) 회장의 오른팔이었다. 드라마 ‘보고 싶다’ 는 어린 시절 상처 입은 아이들의 단순한 사랑 놀음만 다루는 시시한 멜로 드라마에서 그치지 않았다. 드라마 ‘유령’ 처럼 정통 범죄 수사물은 아닌 B급 수사물이지만 나름대로 드라마 내에 호기심을 일으킬 만한 요소들을 배치했다. ‘보고싶다’ 는 다소 어설픈 추리물이지만 기존 한국 멜로드라마와는 차별화된 신선한 드라마라고 볼 수 있다. 신파로 흐를 수 있는 순정타령이 신파가 아닌 시청자의 눈물을 자아내며 감정을 자극할 수 있었던 이유에는 사랑 외에도 생각할 거리, 볼거리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겠다.



순정, 그 이름만으로도 풋풋한 순정이여.

반전도 반전이고 추리도 추리지만 한정우의 순정은 수많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영화 같은 사랑이 가능할 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갖게 한다. 상처받고 상처주고 상처는 또 다른 만남으로 치유하는 대체적인 사랑이 아니라 믿음을 기반으로 한 순정적인 해바라기 같은 사랑 말이다. 지고지순한, 한 사람만을 바라보는 순정이여. 어린 시절 아픈 기억 때문에 스물아홉이 되도록 여자 친구 한 번 사귀지 않고 애타게 수연이를 찾아왔던 한정우의 순정에 어느 여자가 넘어가지 않겠나. ‘폭풍의 언덕’ 의 히드클리프의 핏빛 순정에 버금가는 한정우의 순정은 수많은 여성들을 한정우 앓이에 빠트렸다. 수많은 시청자들은 한정우를 통해 순정을 꿈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