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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적부터 거짓말은 ‘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배웠다. 사실이 아닌 말을 꾸며내어 사람들을 속이는 행위는 결코 옳지 못하다는 것을 강력하게 교육받았다. 늑대가 양을 잡아갔다고 재미로 거짓말을 했다가 끝내는 동네 사람들의 신뢰도 잃고 무지막지한 피해까지 입은 양치기 소년의 일화는 입에서 입으로, 그렇게 여러 세대에 걸쳐 전해졌다. 양치기 소년의 이야기는 거짓말이 가져오는 위험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보편적인 예가 되었고, 거짓말이 지닌 부정적인 면을 알리는 대표적인 이야기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요즘은 거짓말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예전과 많이 달라진 것 같다. 거짓말을 하는 행위 자체를 무겁고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마치 일상에서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듯 아무렇지 않게 거짓말을 하고, 그런 행태를 유머의 소재로 삼기도 한다. 언론에서 다루었던 단골 거짓말 목록만 해도 수두룩하다. CEO가 가장 많이 하는 거짓말, 아르바이트생이 가장 많이 하는 거짓말, 구직자/면접관이 가장 많이 하는 거짓말, 연예인이 가장 많이 하는 거짓말 등등. 이처럼 거짓말과 우리와의 거리는 몹시 가깝다. 또한 거짓말을 전혀 안 하고 사는 것은 거의 불가능처럼 보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털어서 먼지 한 점 나오지 않는 성인군자가 아니라, 약간의 먼지는 나오는 평범한 부류이기 때문이다.


 거짓말에 대해 진지한 태도를 갖지 않는 것, 거짓말이라는 행위에 무감각해지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일까? 하얀 거짓말이라고도 불리는 선의의 거짓말을 포함해 우리가 하고 또 당하기도 하는 다양한 종류의 거짓말은 살아가면서 피할 수 없으니 굳이 따지려 드는 것이 더 우스운 꼴이 되는 걸까? 불현듯 걱정이 든다. 어떤 포장을 하더라도 결국 거짓말은 거짓말일 따름인데, 어느새 모두들 거짓말을 감싸는 무언의 합의를 한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재미를 느껴 장난삼아 하는 거짓말, 남의 이목을 끌어 보고자 하는 거짓말, 자기 방어형 거짓말, 친분을 위해 하는 거짓말 등 종류도 다양한 거짓말은 이미 살아가는 하나의 방편으로 자리 잡은 듯하다. 비밀을 지키거나, 평판을 유지하거나, 감정을 감추거나, 처벌을 피하기 위해- 그 외에도 무수히 많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 우리는 거짓말을 한다. 하지만 거짓말은 치명적인 약점을 지니고 있다. 이 세상 어디에도 완벽한 거짓말은 없다는 것이다.


 거짓말은 지속 가능한 비책이 될 수 없다. 눈 가리고 아웅이라는 옛말처럼 잠시 그 상황을 모면하는 데 쓰이는 게 고작이기 때문이다. 비록 그것이 좋은 의도에서 한 말일지라도 생명력이 짧게 마련이다. 만약 운이 좋아 거짓말을 통해 한 번의 고난과 처벌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런 종류의 행운은 오래가지 못한다. 따라서 거짓말은 늘 임시방편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거짓말을 되풀이할 경우 인간관계의 덕목 중에서도 특히 중요시되는 신뢰 관계에 대단한 타격을 입힐 수도 있다. 한두 번은 그 혹은 그녀의 잘 짜여진 말에 고개를 끄덕여 줄 수 있지만, 늘 같은 이유나 핑계로 위기를 모면하려는 거짓말을 한다면 분명 의구심부터 피어오르게 될 것이다. 이는 비단 되풀이되는 거짓말에만 적용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한 번의 거짓말만으로도 충분히 믿음에 금이 갈 수 있다는 말이다. 점점 더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판국에 거짓말은 이 분위기를 더 공고하게 만들 수 있는 위력을 지녔다. 거짓말로 인해 신뢰가 깨어진 사회에서는 모두가 서로를 의심하게 될 지도 모르는 일이다. 사회를 건강하게 유지시키는 데 꼭 필요한 뒷받침 요소가 바로 신뢰이다. 거짓말은 그러한 신뢰 관계에 손상을 입힐 가능성이 다분하기에 반드시 지양해야 한다.


 거짓말이 지닌 가장 치명적인 한계는 거짓말은 결코 진실이 아니라는 점이다. 거짓말 앞에 많이 관대해진 사회에서 진실은 잠시 그 힘을 잃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진실은 숨겨도 어느새 빠져 나오는 주머니 속 송곳처럼, 자연스럽게 모습을 드러내기에 쉽게 간과할 수 없다. 거짓말은 아무리 다양한 이유를 달더라도 어찌됐든 거짓이기 때문에 진실 앞에서 힘을 잃는다. 단순히 도덕적 우위만 따진다고 가정해도 거짓말은 늘 진실 뒤로 밀리게 되는 것이다.


 
2008년 한 인터넷 사이트의 거짓말 관련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79.3%가 선의의 거짓말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했고, 그 이유로 ‘거짓말이 필요한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인정한 응답자 중 78.4%)이라고 답했다. 거짓말의 의도가 무엇이었느냐가 중요하며, 내용이야 어떻든 결과가 좋으면 용인할 수 있다는 반응도 나왔다. 하얀 거짓말이 필요악이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지만 덩달아 거짓말의 그늘마저 지우고자 하는 듯 보여 씁쓸하다. 예상 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를 모두 용인해 준다면 나쁜 거짓말로 낙인찍히는 거짓말이 과연 몇 개나 될까. 거짓말이 말 그대로 거짓말이기 때문에 경계하는 분위기가 당연시되는 때가 하루빨리 도래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