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고만 살았나요?

 누군가에게 속아서 분통을 터뜨리거나, 누군가를 속여서 낄낄거리며 재미있어 한 적이 있는가? 그런 경험이 한 번도 없다면 그것은 거짓말일 것이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본의 아니게 수많은 거짓말들을 접하며 성장한다. “엄마가 금방 갔다 올게”라는 말부터 시작해서 잘못을 저질렀을 때 반사적으로 나오던 말 “제가 안 했어요.”, 병원에 갈 때마다 듣던 말 “하나도 안 아파요.”, 학창 시절에 지긋지긋하게 들어왔던 “엄마 친구 아들은 전교 1등이더라.”라는 말까지. 그리고 유년 시절을 지나, 성인이 되어도 우리 주변에서 거짓말은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의 성장판과 함께 자라났던 거짓말은 이제 우리에게 상대방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 전에 의심하기를 요구한다. 그래서 우리는 거짓말에 이리저리 채이며 하게 된 말은 이 한 마디다.

“속고만 살았나요?”

 

우리로 하여금 ‘속고만 살았나요?’라는 말을 하게 한, 흔하고도 일상적인 거짓말들은 대강 이렇다.

  

                                                            이미지출처 www.chosun.com/site/data/html_di...045.html  



거의 다 왔어. 금방 도착해.

 오늘은 친구 A와 오후 5시에 만나서 영화를 보러 가기로 하였다. 약속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허겁지겁 뛰어 왔지만 약속 장소에 와 보니 정작 A는 보이지 않는다. 초조한 마음에 A에게 전화를 하였지만 A가 하는 말은 이렇다.

“거의 다 왔어. 바로 앞이야. 금방 도착해.”

그러나 약속 장소의 바로 앞까지 거의 다 왔다고 말했던 A는 5시 10분이 지나도 보이지 않는다. 결국 나는 A의 몫까지 영화 예매를 하였고 먼저 들어가서 영화 예고편을 보고 있을 때쯤 A가 헝클어진 앞머리를 매만지면서 나타났다.

 

3일 뒤에 다시 오세요.

 꽃샘추위를 맞아 감기에 걸린 B는 병원에 갔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진료를 마치고 진료실을 나가는 B에게 꼭 하시는 말씀이 있다.

“약을 먹은 후 경과를 지켜봐야 하니까 3일 뒤에 다시 오세요.”

이에 대한 대답으로 B는 항상 “네”라는 말만 하였지만 실제로는 3일 뒤에 병원에 다시 찾아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약을 먹은 후에도 병이 낫지 않을 만큼 심각하게 아파서 병원에 어쩔 수 없이 다시 가게 된 상황을 제외하고.

 



고마워. 잘 쓸게.

 초등학생 딸이 생일 선물로 핸드폰 줄을 주었다. 선물을 준비한 딸의 정성이 감동적이다. 그런데 언뜻 보기에도 딸이 선물한 핸드폰 줄은 내 취향이 아니다.

“고마워. 잘 쓸게. 엄마가 오래 쓸게.”

딸의 선물이 고맙긴 하지만, 선물이 마음에 드냐고 묻는 딸에게는 이 말 외에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점포 정리

 C는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어느 한 옷 가게를 보게 되었다. 이 가게의 유리창에 큼지막하게 써 놓은 글자는 단 네 글자뿐이다.

‘점포 정리’

이 네 글자에 솔깃한 C는 당장 그 옷 가게에 들어가서 아주 예쁘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살만한 옷을 산다. 그런데 3개월이 지나도 이 가게는 문을 닫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나날이 번창해 가는 그 가게를 보며 C는 앞으로 ‘점포 정리’란 글자가 붙여져 있는 가게는 들어가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이미지출처 blog.ohmynews.com/daeguedu/categ...page%3D4




10% 할인. 사은품 증정.

 D는 광고 책자를 보면서 할인 쿠폰이나 사은품 증정 쿠폰을 오리는 게 취미다. 하지만 공을 들인 만큼 여태껏 제대로 된 할인이나 사은품의 혜택을 받아본 적이 없다. 할인이나 사은품의 혜택보다 더 까다로운 조건들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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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인과 사은품 혜택은 큰 글씨로 써져 있지만 정작 꼭 보아야 할 조건들은 쿠폰 오른쪽 아래에 매우 작은 글자로 써 있어서 이 조건들을 자세히 보지 못한 D는 종종 헛걸음만 한다.

 

뽑아만 주신다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선거철이 되면 후보들은 친근한 이미지로 다가와 악수를 하면서 당당하게 다짐을 한다.

“뽑아만 주신다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 당당한 다짐을 굳게 믿고 투표하면 큰 코 다치기 쉽다. 당선이 된 후 태도가 돌변하는 후보를 비롯해서, 선거철에 내세워졌던 화려한 공약들은 쉬쉬거리면서 하나 둘씩 감추어져 버린다. 그리고 다음 선거철, 모든 후보들이 입을 모아 외친다.

“뽑아만 주신다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미지 출처 : ask.nate.com/knote/view.html%3Fn...3D368628



 세상에는 거짓말에 속는 상황과 거짓말을 하는 상황이 공존하고 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거짓말에 속을 수밖에 없는 상황과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도 존재한다. 거짓말 같은 상황에 직면하면서 때로는 이 말이 거짓말일 것이라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릴 때도 있다. 이 때 “그건 거짓말이야.”라고 말을 끝맺기 전에 한 가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다. 아무리 거짓말이라고 하더라도 그 속에는 진실, 즉 거짓말을 한 이유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나에게, 혹은 내가 상대방에게 거짓말을 한 이유가 무엇인지 한 번쯤 짚어본 후에 거짓말에 관한 판단을 내렸으면 좋겠다. 속고만 살아온 이와 속이면서 살아온 이가 거짓말 속에 숨겨진 진실을 매개로 소통할 때, 이때가 바로 거짓말의 진정한 매력이 아닐까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