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본 없이 영화를 촬영했다고 한다. 애초에 영화로 제작할 생각으로 촬영한 게 아니라, 그저 토목공사로 인해 하루하루 변해가는 강의 모습을 기록하고 싶어서 한 장, 한 장 사진을 찍어 두었다고 했다. 원래 모습을 기억하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강이 어떻게 되어 왔다고 얘기할 수 없을 것 같았다는 거였다. 100m남짓을 걸을 때마다 한 번씩, 눈에 보이는 대로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강원도 태백에서부터 시작해 낙동강을 따라 걸으면서 찍은 사진들은 자연스럽게 한 편의 영화로 탄생하였다.

ⓒ공식블로그



어제(18) 오후 430, 왕십리 CGV에서 영화 <모래가 흐르는 강> 언론시사회 및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이 영화의 감독인 지율 스님이 참석해 영화를 관람한 후, 기자들의 질문을 받았다. 지율 스님은 지난 2003, 천성산 터널 공사 중단을 촉구하는 단식투쟁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당시 지율 스님은 20033월부터 3년 동안 5차례에 걸쳐 200일 동안 단식을 했다. 비록 천성산 터널 공사가 강행되면서 지난 201011월에 터널은 완공되었지만, 스님의 단식을 계기로 환경문제가 당시의 메인 이슈로 떠오르면서 국민들이 환경 문제에 대해 생각하도록 한 중요한 사건이었다.

<모래가 흐르는 강>은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의 변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본래 내성천은 피라미, 모래무지, 은어 등 맑은 민물에서만 사는 물고기가 많이 서식하는 깨끗한 하천이었다. 그러나 4대강 사업의 일환으로 시작된 영주댐 공사는 내성천의 생태계를 크게 위협했다. 민물고기들의 수는 눈에 띄게 감소했고 내성천 곳곳에 형성되어 독특한 생태계를 구성하던 모래밭 역시 크게 줄어들었다. 준설작업으로 인해 낙동강 본류가 깊어지면서, 이를 채우기 위해 지천의 모래와 흙을 퍼다 나른 것이다. 그 결과 몇 년 전까지 모래밭이었던 곳은 어느새 자갈밭으로 변해 있었다. 한편 내성천 곳곳의 산비탈은 벌건 흙이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댐 공사 과정에서 산에 있던 나무를 대거 베어 냈기 때문이다.

영주댐 공사가 내성천 자체에만 영향을 미친 건 아니다. 영주댐 공사 현장 근처에 있는 마을들은 당장 댐이 건설되면 수몰될 위기에 처해 있다. 마을 곳곳에 달린 현수막에는 주민들의 처절한 반대 외침이 크게 적혀 있다. 그러나 이미 공사가 확정된 상황에서 이들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시집 올 때부터 60년 동안 쭉 이곳에서만 살아왔던 할머니도 어쩔 수 없이 얼마 후면 이곳을 떠나야 한다. 영주댐 건설로 인해 645세대의 주민들이 강제로 이사를 가야만 하며, 38점의 문화재와 한반도 최대의 왕버들 군락도 댐 완성 이후에는 수몰될 예정이다.

그럼에도 영화는 시종일관 조용하다. 굴삭기가 내성천의 모래를 사정없이 퍼내고 하천에서 꺼낸 골재들을 잔뜩 쌓아 놓는 장면에서도, 영주댐 공사를 주관하는 삼성의 마크를 클로즈업하는 장면에서도, 내성천이 시간이 갈수록 어지럽혀지고 있는 장면에서도 영화는 감정을 분출하지 않는다. 다큐멘터리 영화에 항상 있는 내레이션조차 없다. 그 대신 영화는 장면과 자막을 통해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말없이 보여 준다. 밑동이 베인 나무가 산 전체에 걸쳐 쓰러져 있는 장면과 함께 제시되는 것은 식목일을 맞아 나무를 심었다는 뉴스 내레이션이다. 내성천이 조용히 흐르는 모습 다음으로 나타나는 장면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정신없이 돌과 흙을 퍼 나르고 있는 공사 장비들이다.

영화의 감독이자 주연인 지율 스님은 전면에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스님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 주려고 한다. 내성천 근처의 마을에서 아주 오랫동안 살아온 할머니, 곧 수몰될 초등학교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신나게 놀고 있는 아이들, 내성천을 유유히 거닐고 있는 온갖 새들과 동물들……그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지율 스님은 자막을 통해 묻는다. ‘댐 공사가 지역 주민들을 이주시키고 그곳에 물을 채우는 데 불과하다는 것이 얼마나 순진한 생각인가?’

이처럼 영화는 4대강 사업으로 인해 평온했던 한 마을이 얼마나 크게 무너질 수 있는지, 환경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개발 논리를 밀어붙였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가감 없이 보여준다. 애초에 영주댐 공사가 이미 진행 중인 공사다 보니 더 이상 내성천과 그 주변 마을에는 희망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공식블로그

 

그럼에도 영화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영화 말미에 지율 스님은 의 시점으로 얘기한다. “우리는 강이 변해간다고 이야기한다. 강은 우리가 변해간다고 이야기한다.” 강이 보기에, 우리가 지금 변하는 과정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 생명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에서 즐겁게 물놀이를 하는 아이들, 선생님의 손을 잡고 체험학습을 하러 가는 아이들을 보며 다른 한편으로는 희망을 엿본다. 이들은 그래도 강을 보고 느끼고 체험하면서 강의 중요성에 대해 조금씩 자각하지 않을까, 하는. 그래서 우리가 앞으로도 계속 강에 대해 파괴적으로 변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고, 어떻게 변할지는 모르는 일이라고 영화는 조용히 말한다.

영화 후에 이어진 기자간담회에서도 지율 스님은 일관되게 그러한 생각을 이어 나갔다. “가장 어려웠던 부분들은 사람들이 강이 이제는 회복 불가능하다, 이렇게 이야기할 때였어요. 저도 그렇게 될 것을 속으로 각오하고 제대로 바라보겠다, 하고 들어간 건데, 그럼에도 정말 섬칫섬칫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남아서 마지막까지라도 버텨야겠다, 이런 생각을 했어요. (댐 공사를 주관하는 업체인) 삼성의 표어를 보니까, 1퍼센트의 가능성만 있어도 움직인다고 해요. 그걸 보면서 생각했죠. 과연 우리 강은 몇 퍼센트로 우리에게 남아 있고, 얼마나 희망을 가질 수 있을지.” 스님은 어떻게 하면 이 문제에 대한 대안을 찾고, 이곳을 다시 바라볼 수 있을까, 에 대한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영화를 만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스님은 영화가 널리 알려지기를 바라고 있었다. “영화가 좀 더 잘 홍보가 된다고 하면, 우리가 이런 부분에 대해서 깊이 공감한다고 하면, 좋은 방법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기자간담회 말미, 돌직구 한 방이 날아왔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4대강 사업을 자신의 최대 업적이라 생각하는데 여기에 대해 한 말씀 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지율 스님은 잠시 침묵하더니 차분히 말을 이었다.



“4대강 사업은 한 사람, 두 사람이 추진하고 계획한 사업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 사회 모두가 동의한 면이 있는 사업입니다. 제가 4년 동안 물길을 걷고 강에 있으면서 한 가지를 느꼈습니다. 우리가 자연에 대해서 너무 무관심했기에 이런 일들을 불러온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과정 속에서 더 이상 원망과 분노를 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을 제 자신에게 많이 했습니다.”

결국 이러한 상황이 벌어진 것은 그 누구도 책임도 아닌,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는 거였다. 그리고 그것을 답답할 만큼 조용하게, 영화는 우리들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에게 이 영화가 더욱 크게 다가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마음에 와 닿을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