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선거를 통해 대표자를 선출해 목소리를 대변하게 하는 대의민주주의를 원칙으로 한다. 그러나 선출된 대표가 국민의 목소리를 제대로 대변하고 있지 못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대두되고 있으며, 선거와 정치에 대한 무관심은 지난 몇 년간 뜨거운 감자가 되어 왔다.

이런 현실 속에서 녹색당이 새로운 시도를 한다. 녹색당은 지난 3월 16일 개최된 대의원대회에 앞서, “가장 보통의 대표, 가장 최선의 민주주의”를 모토로 내세우며 모든 대의원을 ‘전면 추첨제’로 선출했다.

녹색당의 이번 도전에 자문을 해주며 10년 이상 ‘추첨민주주의’를 연구해온 연세대학교 국가관리연구원 전문연구원 이지문 교수의 말을 들어보았다.

Q. 추첨 민주주의라는 것을 녹색당에서 처음으로 시도하는 시험이라고 들었는데, 사실인가요?

A. 맞습니다. 현재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정당사회에서 대의원을 보통 선거를 통해 뽑고 있습니다. 추첨형 방식을 도입한 것은 한국 녹색당이 최초라고 할 수 있습니다.


Q. 왜 추첨제인가요?


A. 민주주의의 2원칙이 있어요. 평등한 참여와 심의입니다. 그 2가지를 다 할 수 있는 방식이 바로 추첨형 방식입니다.


선거를 할 경우, 일반적인 사람들이 아니라 고학력, 고소득, 전문직으로 대표되는 특정적 사람들이 대표자가 되고, 그 사람들이 그 자신의 계층의 목소리를 대변하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추첨을 할 경우 내가 돈이 많다거나 더 많이 안다고 뽑히는 것이 아니고, 모든 국민이 동등한 1/n의 확률을 가지고 있는 거잖아요. 평등한 참여를 할 수 있는 거고. 그렇게 참여한 사람들이 자기 혼자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모여서 논의를 하는 거죠.


정당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의원들이 특정 정파라든지 특정 세력, 나아가 자기 지역 국회의원들의 입맛에 맞는 사람들이 되면, 일반 당원들의 목소리나 이런 것들이 전달되지 않게 되는 것이죠. 녹색당이 이번에 추첨제를 도입한 것은 기존의 기득권, 정당의 이익관계에 빠져있는 정치인들보다 우리 소시민들의 목소리가 더 나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필요한 실험입니다.


Q. 이번 녹색당 대의원 추첨은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나요?


A. 추첨도 3가지 방식이 있어요. 하나는 미국 배심원제 같은 경우처럼 추첨되면 무조건 해야 해요. 두 번째는 추첨을 한 후 본인한테 수락여부를 물어보고 대체하는 방식이 있어요. 강제는 아니죠. 세 번째는 서울시 주민참여예산 같은 방법인데, 일단 하고 싶은 사람이 신청을 하고 그 중에서 추첨을 해요. 서울시 주민참여예산 같은 사례가 이런 방법을 쓰고 있죠. 녹색당 대의원 추첨의 경우, 먼저 추첨을 한 후에 본인에게 수락여부를 묻는 방식을 사용했습니다.


Q. 당사자에게 대의원직 수락 여부를 물어보았는데, 그러면 관심이 정말 있고, 적극적인 사람만 뽑히게 되진 않나요? 반대로 책임감 없이 가볍게 수락한 사람도 있을 거고요. 의무화를 시키지 않은 이유가 뭔가요?


A. 당 같은 경우는 자발적 결사체인데 강제한다는 것은 성격상 안 맞는다고 생각해요. 안한다고 당원자격을 박탈한다? 이럴 수는 없잖아요. 물론 논란의 여지는 있습니다. 미국 배심원제 선발 같은 경우 저소득층, 흑인일수록 안한다고 그래요. 그러면 결국 백인 남성층으로만 배심원이 구성되는 것이 아니냐는 문제가 생기죠. 그렇기 때문에 만약 흑인 30대 남성이 배심원직을 거부한다하면 대리하는 사람도 똑같은 배경을 가진 사람들 중에서 뽑는 거죠.


녹색당 같은 경우도 대의원 추첨 당시 연령을 3등분하고, 성별, 지역을 고려했습니다. 제안을 거절한 사람과 같은 계층에 있는 사람으로 대체를 하기 때문에, 대표성 부분에서는 문제를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배경이 같다고 해서 똑같은 결정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부분에 대해서 어느 정도 방어기제가 된다는 것이죠.


Q. ‘일반적인 사람들’, ‘소시민’이라는 표현이 녹색당이 대의원대회를 개최하며 사용한 ‘가장 보통의 대표’라는 표현과 연관되는 것 같은데, 이번에 선발된 대의원들이 어떤 면에서 ‘보통을 대표한다‘라고 보시나요?


A. 사실 현재 각 국가 기관이나 각 구마다 시민 위원회 같은 시민 공간이 있긴 있어요. 하지만 그런 공간에 오는 사람들은 시민이라고는 하지만 변호사나, 강경단체나, 시민단체나 언론이나 이렇게 한정된 사람들이지, 일반 동네 아저씨 아줌마들이 아닌 거잖아요.


Q. 추첨제에 관해 많은 사람들이 전문성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데요. 일반 동네 아저씨 아줌마들이라면 전문성이 떨어지는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요?


A. 전문가들의 역할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견을 설득력있게 전하는 것이 역할이죠. 그렇지만 우리나라는 전문가들이 결정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민주주의의 본질은, 결정은 시민의 몫이라는 거죠.


Q. 일반 사람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방법으로는 전자 민주주의도 있을텐데, 굳이 추첨 민주주의 방식을 도입한 이유는 뭔가요?


A. 국민투표나 전자민주주의 결합한 투표 같은 경우는 평등한 참여는 할 수 있지만, 토론과 심의가 진행되지는 않잖아요. 자기 혼자만의 결정을 하게 되는 것이죠. 잘 모르는 상태에서 즉각적인 반응으로 찬성 반대를 하는 것은 의미가 없죠. 여론조사 수준에 머무를 뿐, 심도있는 논의에는 이르지 못하고 평등한 참여로만 끝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민주주의의 2원칙 가운데도 중요한 것은 심의라고 생각해요. 충분히 안건에 대해 이해를 거친 후에, 찬반에 대한 의견을 듣고 토론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대의원으로 선출을 함으로써 관심을 유도를 하고, 미리 자료도 주고, 좀 더 깊이 있는 결정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죠.


Q. 심의에 있어 발언권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관심이 많을수록 발언량이 많아지게 되고 안건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사람일수록 논의에서 제외될 우려가 있을 텐데.


A. 5%가 8~90%를 좌지우지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특히 한국사회에서는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마찬가지로 다 같이 모여 토론하더라도, 나이라든지, 성별이라든지, 직업이라든지 부분에 있어서 결국 발언이 제한되는 게 아니냐. 평소에 말하는 사람들이 주도해나가는 것이 아니냐. 온 사람들 중에서 소극적이고 표현을 잘 못하는 사람들은 끌려갈 뿐인 게 아니냐. 그런 비판들을 무시할 수는 없어요.


그렇지만 그것이 우리 한국 사회에서의 현실이라고 그걸 내버려두면 바뀌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죠. 내가 표현을 못하고 발언을 못하는 건 지금까지 기회가 없어서 그런 거고. 어릴 때부터 내가 자유롭게 의사를 개진하고 토론하고, 이런 문화가 활성화 되면 되는 거죠. 그런데 우리가 그런 문화가 없었기 때문에 그런 것인데. 공간을 만들어도 똑같을 거라고 하지 말자고 내버려두면 계속 현상이 유지되는 거고. 그러하기 때문에 자꾸 그런 걸 통해서 참여하고 기회가 주어지다 보면 나도 다음에는 말을 한 번 해봐야 되겠구나, 이런 게 생기는 것이죠.


녹색당 대의원대회 현장에서 진행된 인터뷰의 끝에, 이 교수는 추첨 민주주의에 있어 녹색당 대의원대회가 좋은 선례가 되기를 바란다는 심정을 밝혔다.
지난 3월 16일 개최된 녹색당 대의원대회에서는 총 140명의 대의원 중 88명이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