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5월 국방부의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후보지 선정 및 통보 이후 8월 들어 강정마을회가 주민 투표로 해군기지 유치 반대 결정을 하면서 강정 마을을 둘러싼 논란이 시작됐다. 

이후 2010년 11월 강정마을회에서 해군기지 수용제안 백지화 선언을 하면서 충돌이 본격화됐다.  2011년 6월에는 정치권이 개입, 야권 5당이 진상조사단을 구성하고 공사중단을 요청했다. 이후 반대하는 시민단체와 활동가들의 현장 출입구 봉쇄, 공사장 점거, 해상장비 투입 시 승선 및 점거로 육·해상공사가 전면 중단되기도 했다.

2012년에는 공사를 둘러싼 갈등이 극에 달했다. 해안암반 발파 등 공사가 재개되자 대규모 시민단체 등 반대파와 대규모 충돌이 발생했으나 7월에 대법원이 공사 승인 적법을 판결했고, 12월에는 서울고법이 적법을 재확인했다. 


<강정 마을>


제주도 서귀포시 표선면에서 강정마을을 가기 위해 택시를 잡았다. 같은 서귀포시지만 표선면에서 강정마을까지 가려면 30분은 걸린다. 물리적 거리만큼이나 강정 마을에 대한 의문도 안개 속을 헤매는 기분이었다. 강정마을에 간다고 하자 택시 기사 아저씨가 왜 가려 하느냐고 물으셨다. 동행한 일행이 “천주교 신자라 그 곳에서 열리는 미사에 가보고 싶기도 했고,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지역이라 한 번 가보고 싶었다.” 고 답했다.
 

기사 아저씨는 기다렸다는 듯이 창 밖에 소나무가 쓰러져 있는 들판을 가리키며 목소리를 높이셨다. “지금 제주도에서 자연 훼손하는 걸 보면 일정한 기준이 없다니까. 저기 군데군데 비어 있는 들판처럼 여기 쓰러뜨리고 저기 쓰러뜨리고. 정부 정책도 일정한 기준이 없으니까 여기 훼손하고 저기 훼손하는 거지. 제주도 말로 여기저기 들쑤시는 걸 올곶방이라고 하는데 요즘 정부 정책이 딱 그 짝이라니까.”

올곶방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흐릿하기만 했던 강정 마을이 조금은  윤곽을 드러내는 것 같았다. 제주도에 머무르는 동안 그새 익숙해진 바다와 풍경들이 지나가고, 드디어 강정마을 초입에 들어섰다. 강정마을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노란색 바탕에 검정색 글씨로 진하게 쓰인 “해군기지 결사반대” 깃발이었다. 

<해군 기지 결사 반대 깃발>


“주민들이 각자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서 반대하는 사람들은 저 깃발을 꽂는다고 하더라고.” 기사 아저씨의 설명이 이어졌다. 군데군데 깃발을 꽂지 않은 집들도 보였다. 


마을 입구를 지나 택시에서 내렸다. 겨울답지 않은 따스한 햇살이 겨울 외투로 잔뜩 웅크린 등을 토닥였다. 핸드폰을 꺼내 날씨 어플을 보니 2월 말임에도 18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잔뜩 긴장했던 마음이 풀어지는 기분이었다. 따스한 햇살에 물든 노란색 무꽃이 때 이른 봄에 흠뻑 취해 있었다. 

<낮잠을 즐기는 누렁이>


낯선 봄을 만끽하는 것도 잠시, ‘공사를 멈춰라.’ ‘ 강정마을 힘내세요.’ 와 같은 현수막이 이른 봄 햇살에 취한 여행객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현수막들 사이에서 이질적인 분위기를 느끼면서 천막을 보니 어떤 젊은 여자 분이 앉아 있었다. 그 옆에는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 있는 누렁이 개가 있었다. 주변에서 묻어나는 투쟁의 흔적 따윈 상관없다는 듯이 누렁이는 따사로운 햇살을 맘껏 즐기고 있었다. 자신을 서울에서 온 이곳 출신 활동가라고 소개한 김다희 씨(가명)는 강정천에 가 볼 것을 권유했다. “바다랑 강이 만나는 곳인데 후회하지 않으실 거예요.”


다희 씨의 의미심장한 말을 되새기면서 강정천으로 향했다. 진한 생명력을 뿜어내는 해당화가 핀 길가에서 시냇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를 쫒으며 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강정천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맑은 시냇물이 흐르다 전혀 낯설지 않은 듯 바다를 만나 합쳐지고 있었다. 강정은 한자로 강 강(江)과 물 이름 정(湞)이 결합한 단어이다. 강과 바다의 합일, 그 어색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조화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고개를 돌리니 기기묘묘한 형상의 바위 위에 해군기지결사반대라고 쓰인 깃발과 철제 펜스가 서 있었다. 
 

<강정천>


문득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한 구절이 떠올랐다. 상선약수(上善若水). 노자는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고 하면서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고 뭇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위치한다고 했다. 최고의 선은 서로 다른 성질에도 다투지 않고 화합하는 물일까, 물을 자신의 편의에 맞게 이용하려는 사람들일까.  

바닷바람을 맞으며 다시 강정천을 걸어 나오니 어떤 남자가 도자 목걸이와 책을 팔고 있었다. 제주도 출신 작가가 만든 도자 목걸이는 강정에 서식하는 멸종위기 2급 붉은발 말똥 게와 산호초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활동가 김성찬 씨(가명)는 작품들을 소개하면서 “정부에서는 붉은 발 말똥 게를 옮겼다고는 하지만 살던 환경이 갑자기 바뀌니 생존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산호초 목걸이를 하나 사고 발걸음을 옮겼다. 다희 씨가 있던 천막을 지나 ‘평화가 길이다.’라고 쓰인 울타리를 지나니 조그만 인형들을 진열해 놓은 가판대가 보인다. 가판대를 지키고 있던 40대 중반쯤 되 보이는 여자 분이 강정 마을의 활동가들을 본뜬 인형이라고 소개했다. 가판대 너머로 넓은 바위 위에 텐트를 치고 등을 보인 채 앉아 있는 그림이 눈에 띈다. 그림에 계속 시선을 두고 있자 그림에 대한 설명을 했다. “저 분은 영화 평론가인데 3년 동안 구럼비 바위에서 텐트치고 생활하셨어요. 그런데 해군기지 반대 운동하시다 투옥되시고 80여 일 동안 단식하셨어요. 건강이 좋지 않으신데 포기를 안 하셔서 걱정이 되네요. 이 분 말고도 제주도 와서 반대운동하다 강제 출국당한 외국인만 40여 명이에요.”

투옥, 강제 출국, 단식. 활동가들이 자신과 직접적 관련이 없는 곳에서 활동하다 맞닥뜨린 결과물이었다. 단어들이 주는 무게감에 숨이 턱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동시에 연고도 없는 강정 마을을 그토록 보전하려 애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대화를 나누다 강정마을의 대표적 활동가 중 한 명인 김성환 신부(예수회)와 만나게 되었다. 김성환 신부는 강정에 오게 된 계기를 평화 신학을 공부하던 중 존경하던 문정현 신부님을 따라서 오게 되었다고 밝혔다. 아까부터 궁금했던 전혀 강정 마을과 관련 없는 활동가들이 강정 마을을 위해 투쟁하는 이유를 물었다.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가진 사람도 있고 평화에 관심을 가진 사람도 있고, 강정 마을이 해군기지 공사를 승인할 때 주민 1900여명 중 강정마을 전 이장과 해녀 할머니 87명만 모여서 승인 처리한 것이 민주주의의 절차를 무시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다양합니다.” 

아까 인형을 팔던 여자 활동가 분의 성함을 물어보지 못한 것이 생각나 신부님께 물어 보았다. “아 들풀! 예전엔 들풀이었는데 지금은 ‘들꽃’이에요.” 생각지 못한 이름에 고개를 갸우뚱하자 신부님은 활동가들이 실명 쓰는 걸 부담스러워한다고 덧붙였다. 

 
신부님과의 대화를 마치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중에 벽면에 게를 그린 호프집이 눈에 띄었다. 붉은 발 말똥 게였다. 들풀과 들꽃, 민물과 바닷물의 만남, 이른 봄을 만끽하게 해주었던 햇살. 아까 강정천에 들어갈 때 다희 씨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후회하지 않으실 거예요.” 불현듯 왜 활동가들이 위태로운 투쟁을 하면서 강정을 지키려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동시에 애써 답을 구하려 해도 알 수 없었던 강정 마을의 실체도. 평화, 환경, 민주주의와 같은 그런 거창한 단어는 필요치 않다. 강정의 자연은 물을 닮아 있다. 다투지 않고 그저 머물러 있는, 그들의 일상이다. 단지 그들의 일상을 지키고 싶었던 거다.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