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네와 다테마에. 흔히 일본인의 의식을 표현할 때 가장 많이 언급되는 특성이다. 간단히 말해 혼네는 솔직한 본심이고 다테마에는 남 앞에 내보이는 모습이다. 우연히 집어든 책에서 처음 접했던 이 개념은, 열 몇 살짜리에게는 꽤 충격적인 것이었다. 책 속에서의 일본인들은 온화한 모습 뒤로 도무지 헤아리기 어려운 본심을 감추고 있어서, 상대편 측에서는 뒤통수 맞았다고 할 만한 상황을 많이 만들어 냈다. 그 자리에서는 호의를 보이는 듯하지만 결과는 완전히 상반된 쪽으로 흘러가고 마는 것이다. 어릴 적부터 겉 다르고 속 다른 것이 유해하다고 교육 받은 나로서는, 결코 쉽게 예측할 수 없는 혼네와 다테마에의 간극을 인정하기 어려웠다. ‘사람의 마음은 참 간사하다더니’라고 생각하는 게 고작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되자 혼네와 다테마에가 비단 일본인들만의 특성은 아니며, 나 역시 이것을 적절히 이용할 줄 아는 부류에 속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디에서건 누군가와 관계를 맺게 되면 선의의 거짓말을 해야 할 때나 잘 포장된 겉치레를 보여야 할 때가 있다. 하지만 이런 불가피한 상황만이 이유가 된 것은 아니었다. 나는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 시달리고 있던 것이다.





▲ 출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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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아이 콤플렉스


"너 착한 아이 콤플렉스구나?"
"그게 뭔데?"
"누구에게나 사랑받고 칭찬받고 싶고
아무에게나 미움받거나 비난받고 싶지 않은 거."
"생각해보면 그런 것도 같다."
"넌 그냥 너야.
누가 널 사랑하지 않는대도 널 미워한대도 어쩔 수 없어.
그건 그 사람 사정이고 넌 그냥 너일 뿐이니까. 너무 힘들어하지 마."


 위 글은 한혜연의 『어느 특별했던 하루』에 나오는 구절이다. 뿐만 아니라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소재로 해 출간된 유명 서적도 있다. 한때 미니홈피와 블로그를 가득 메웠던 여러 가지 콤플렉스 증상 중에서도 ‘착한 아이 콤플렉스’는 늘 빠지지 않았다. 그만큼 많이 알려진 말이고 우리도 친숙하게 느낀다. 착한 아이 콤플렉스는 크게 두 가지로 해석 가능하다. ‘착한 아이’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심해 콤플렉스로까지 번진 것, 혹은 모든 사람에게 다 잘 보이거나 사랑받고 싶어 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이 증상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규칙과 형식을 지나치게 엄수한다, 늘 밝고 명랑하다, 매사를 좋게만 받아들이려고 한다, 양보를 잘 한다. 충분히 예상 가능할 만한 것이다. 그들은 착한 아이에게 요구되는 기대치를 설정해 두고, 그 기준에 맞추려고 끊임없이 노력한다. ‘착한’ 사람들이기에 정해진 규율을 벗어나는 법이 좀처럼 없고, 좋지 않은 일이 있어도 훌훌 털어내려고 애쓰며, 남들에게 무언가를 양보하거나 희생하는 일에 익숙하다.


 그러나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겪는 사람들의 내면은 이와는 확연히 다르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더 신경 쓰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게 되는데, 그래서 더 우울함을 많이 느낀다. 동시에 이런 피곤한 상황을 피하고 싶어 하는 욕구도 있어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보다 사실 혼자 있는 것을 더 즐긴다. 또 자아 존중감이 낮고 자신감도 부족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부정적으로 생각하기 쉽다. 자신감보다 열등감과 친숙한 사람이라서 언제나 ‘다른 사람들의 눈에 잘 보이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간직하며 산다. 혹시나 타인이 자기를 싫어할까봐 불안해하며 스트레스도 많이 받는다.





▲ 출처 ; http://php.chol.com/~vhffl/blog/attach/1/684197253.jpg





착한 아이로 살아가기


 앞서 나왔던 착한 아이의 특성에 모두 부합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연히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 많았다. 내 의견을 피력하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거나 동조하는 것이 더 익숙하고, 시끄러운 상황을 아예 피하고 싶어 한 마디 하더라도 부드러운 말을 하며, 특히 인간관계에 대해 대단히 신경 쓰는 점 등등. 착한 아이 콤플렉스 환자들은 보통 권위적이고 원칙을 중시하는 부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하는데 그 역시 잘 맞았다. 불같은 성품의 엄격한 아버지는 내게 늘 다가가기 두려운 존재였다. 신호 확인을 하지 못해 교통사고를 당할 뻔 했던 밤 회초리로 맞았던 기억, 도형 부분에 특히 약해 각도 공부를 하면서 혼났던 기억, 일기와 한자 암기를 매일 검사받으며 조마조마했던 기억 등 어린 마음에 아버지를 공포의 대상으로 여겼던 게 선명하다. 그래서일까. 아버지가 중시하는 ‘바른 아이’의 상은 내가 꼭 지켜야 할 부분이었고 나는 꽤나 애썼다.


 중학교 때가 ‘바른 아이’의 절정 시기였다. 왠지 만만해 보이는 외모 덕에 반장선거에서 한 차례 놀림을 당한 후, 자신감을 완전히 상실하게 된 나는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살았다. 다만 모범생이라는 이상향에 다다르기 위해 공부는 꽤 열심히 했다. 점차 친구들과 친해지며 그때의 기억을 유머의 소재로 쓸 만큼 여유로워졌지만, 여하간 중학교 때 참 특징 없이 ‘착하고 참한’ 아이로 살았던 것 같다. 학생회, 선도부, 교지편집부를 두루두루 거치며 ‘착한 아이’로서의 나의 정체성은 더 강화되었다.


 파란이 오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때였다. 고2 때 성적이 몹시 하락한 나는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머리가 커지기 시작하면서 부모님과 나 사이에서 ‘의견 차이’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자꾸만 불평이 생겼다. 공고하게 쌓아 두었던 착한 아이의 벽에 조금씩 균열이 생겼던 것이다. 그러나 그 동안 학교에서 ‘착한 아이’로 사는 사회화의 과정을 오랫동안 겪은 나는 그 콤플렉스에서 쉽사리 벗어날 수는 없었다. 남들의 칭찬보다는 험담에 더 민감했기에 흠 잡히지 않으려고 상당히 노력했고 지금도 그 흐름은 유지되고 있다. 겉으로 보이는 착한 이미지와 내면의 나는 많이 다르다는 사실은 아주 친한 친구들에게만 겨우 고백한다. 그래도 이런 것을 털어 놓을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에 만족하며.



난 그렇게 착하지 않아


 
솔직히 말하면 난 그렇게 착한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내뱉는 말은 직설적이고 평가하는 데 있어서도 인색하다. 아주 대단하지 않으면 그다지 마음이 동하지도 않으며, 일을 떠안게 되면 당시에는 눈물을 삼키며 받아들이지만 집에 돌아와서 후회하는 편이다. 맹목적으로 스펙만을 좇는 사람들을 좋아하진 않지만 정작 나는 그렇지 못하기에 속앓이를 한다. 경쟁 체제에 신물을 느끼지만 서울 명문대에 다니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나는 누구보다 개인적이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바로 나다. 남들의 사랑을 먹고 사는 것도 행복한 일이나, 나 같은 경우 스스로 자신감이 부족하고 자아를 향한 애정이 약하기 때문에 현재 덜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편애할 때 가장 자유롭다』라는 책에서 여성 운동, 특히 아줌마를 대상으로 한 여성 운동을 하는 로리주희씨가 ‘나쁜 년으로 운동하기’를 거론한 적이 있다. 부모로부터 충분히 사랑받지 못했기에 그녀는 그 동안 ‘사람 좋은 사람’으로 사느라 고생했다고 고백했다. 그 구절을 읽으면서 공감했을 뿐만 아니라 나도 이제 욕구를 드러내고 본심을 표현하는 데 머뭇거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순하기도 하지만 때로 간사하고, 질투심도 많고, 비겁하기도 한 나 자신에 대해 인정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착한 아이라는 가면 없이 있는 그대로의 나로도 충분히 잘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