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절 123주년을 맞아 전국 각지의 청년·학생들이 ‘노동자의 권리와 청년사회의 연대’를 선언했다. 

4·30 청년학생문화제 ‘이후를 묻는다’ 콘서트가 지난 4월 30일 경희대학교 노천극장에서 개최되었다. 근로자의 날(노동절)인 5월 1일을 앞두고 문화제 행사장에는 수백여 명의 청년학생들이 참석했다.

4·30 청년학생문화제 ‘이후를 묻는다’ 콘서트가 지난 4월 30일 오후7시 경희대학교 노천극장에서 개최되었다.

이 날 행사를 주최한 ‘전국학생행진’은 쌍용차 사태로 인한 24명의 죽음을 기리고 이를 방관하고 있는 정치권과 수사기관을 비판했다. 또 ▲노동자가 단결하고 투쟁할 권리 ▲정리해고 당하지 않고 정규직을 보장 받을 권리 ▲노동자가 연대하고 단체로 행동할 권리 등 노동 3권을 비롯한 권리들을 위해 청년·학생사회도 함께 연대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청년, 오늘날 사회에게 ‘이후’를 묻다.

공연은 총 4부작으로 진행되었다. 부제인 ‘이후를 묻다’에 맞추어 ▲1부-'죽음이라는 이후' ▲2부-'자본이 공장을 떠난 이후' ▲3부-'학내 구조조정 이후' ▲4부-'우리들이 생각하는이후'를 차례로 외치며 다양한 노래와 몸짓, 연극을 선보였다.

대학생선언 박중현 전체단장(연세대, 23)은 “직장에서의 정리해고나 학교에서의 소외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다”라며 “오늘날 우리 사회의 정치권력과 자본가들이 말한 ‘이후’에는 노동자와 학생의 상처와 죽음들이 있다”고 소개했다. 또 박 단장은 “오늘 이 자리의 청년들에게 우리 들이 그리는 ‘이후’가 어떤 것인지 고민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홍종인 유성기업 금속노조지회장(40)이 행사 중간에 강단에 올라 연설하고 있다. “우리 노동자들은 새로운 활동을 접하면 ‘이걸 어떻게 하냐’고 지레 겁먹습니다”라며 “하지만 젊은 친구들은 ‘이걸 어떻게 하면 되’냐고 적극적으로 묻고 함께 모여서 실천합니다”


조명이 꺼진 어두운 무대 한편에서 사이렌과 함께 경찰방송이 울려 퍼졌다. “시민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불법 집회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불법점거를 하고 있으며 소음으로 인한 막대한 피해를 주고 있습니다. 이에 1차 해산 명령을 내립니다. 자진해서 해산해주시기 바랍니다.” 마치 진짜 ‘불법 집회’에 온 것 같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관중들을 경직시키던 경고방송이 사라지자 이내 붉고 푸른 조명들이 번지며 무대가 순식간에 밝아졌다. 무대는 쌍용차 사태를 호소하는 대한문 농성장을 재현해 놓은 듯 천막과 피켓들이 양 옆에 진열되어 있었다. 힘찬 발걸음으로 무대 위로 뛰어오른 고려대 몸짓패의 군무로 공연의 막이 올랐다. 

“대한민국의 자살률은 인구 10만명당 33명으로, OECD국가들 중 가장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라는 앵커의 멘트가 흘러나왔다. 조명을 받은 배우가 입을 열었다. “20 대가 죽었대요. 아니 노동자가 죽었대요.” 그러자 옆에 있던 배우가 대꾸했다. “나 같으면 죽을힘으로 살겠다. 다들 의지가 부족해서 그래요”

스크린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이 흘러나왔다. “국민여러분. 쌍용차의 경우 지난 20009년 큰 갈등을 겪은 뒤에 기업도, 노조도 변화해서 적극적으로 노사상생 프로젝트를 실천했습니다.” 한 여자의 절규하는 목소리가 뒤따랐다. “저기요, 사람이 죽었다구요. 벌써 스물네 번째에요.”

쌍용차는 지난 2009년 경영주체인 상하이자동차가 회사를 매각하는 과정에서 직원 2천6백46명을 정리해고했다. 이에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은 77일간의 옥쇄파업을 벌였다. 당시 조현오  경기지방경찰청장은 헬기로 최루액을 살포하고 경찰특공대를 투입시켜 노조를 강경진압했었고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었다. 한편 정리해고 과정에서 부당한 정황들이 포착되었고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시절 국정조사를 약속했다. 하지만 현재 청와대는쌍용차 사태에 대한 국정조사를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지금까지 해고노동자 및 그 가족 24명이 자살했다. 


무대가 새롭게 꾸며지고 다음 막이 올랐다. 무대를 가르는 하얀 종이 위에 몸을 웅크리고 있는 사람의 그림자가 선명히 비쳤다. 배우는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에 몸을 웅크린 채 공포 섞인 비병을 질렀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이 선풍기 소리조차 헬리콥터의 소음으로 착각할 정도로 공포에 시달렸다는 신문기사가 떠올랐다. 배우가 마지막 대사를 읊으며 옆 무대로 조명이 옮겨갔다. “헬리콥터 소리가 들려…헬리콥터가…”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는 지난 쌍용차 해고노동자 심리 분석 발표때 "해고노동자들은 헬리콥터 소리만 들어도 싸용차 파업 당시 기억이 떠올라 잠을 이루지 못하는 등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라고 발표했었다.

연극을 보던 경희대학교 강 모씨(22)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을 진압한건 인간사냥과 같다”며 “경찰은 당시 대테러장비들을 사용한데다 사용이 중지된 테이저건 까지 사용했었다”며 소리쳤다. 



“노동자의 문제, 청년·학생들의 문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어둠 속에서 와르르 몰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이건 쓰레기가 아니야”라는 외침들이 번졌다. 무대 조명이 켜지고 구청직원을 상징하는 옷을 입은 배우들이 올라와 화단을 만드는 시늉을 한다. 한쪽 구석엔 현수막이 내팽개쳐져 있다. 지난 4월 17일 중구청 직원들이 대한문 앞 쌍용차 농성장을 강제기습철거하면서 그 자리에 화단을 만들어 놓았던 것을 재현한 것이다.

이어서 “국민 한 분 한 분의 행복과 100퍼센트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이 저의 꿈이자 소망입니다”라고 말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후보시절 영상이 흘러나왔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 후보는 쌍용차 국정조사를 약속했었다. 아직까지 박근혜 대통령은 쌍용차 국정조사에 대한 입장을 전혀 밝히지 않고 있다.

최근 중앙대와 연세대, 부산외국어대 등 상당수의 대학들이 2014학년도 학생 모집안 제출을 앞두고 학과 통폐합 등 구조조정을 추진해 큰 논란이 되고 있다.

“선택과 집중의 원칙에 따라 2018년까지 취업률이 낮은 학과는 계열별로 통폐합을 추진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며 총장역의 배우가 뒷짐을 진 채 걸어 나왔다. 그가 “경영대는 교수진과 신입생을 늘리고 문예창작과는 국문학과로 통폐합, 가정교육과는 폐지하겠다”라고 말하자 학생역의 배우가 큰 목소리로 호소했다. “선택받지 못한 학과는 어디로 가야 하나요? 저희도 똑같은 등록금 내는 학생이잖아요”

옆 무대로 조명이 옮겨가더니 ‘대학은 기업이 아니다’, ‘입학 3주 만에 폐과’ 등의 피켓들을 비춘다. 학과 통폐합 반대 서명운동을 연기하는 학생들에게 이사장 역의 배우가 걸어 나오며 불법지회를 중지하라고 말한다. “학교 주인을 누가 학생이래. 학생은 자신이 왕인 줄 아는 손님일 뿐이네”

공연을 함께 준비한 인하대 김미량(23)씨는 “비정규직이 60%를 넘고 노동권이 지켜지지 않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겪는 불안이 학생들이 대학교를 다니면서 느끼는 불안들과 닮아 있다고 생각 한다”라며 “이런 불안들을 해결하려면 사회 공동체끼리 함께 연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계바늘이 10시를 훌쩍 넘은 시각, 노천극장에 이화여대와 인하대 학생들의 합동 노래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학생들은 손을 들어 박수치며 환호하거나 함께 따라 불렀다. 노래를 리드한 이화여대 임송이(23)씨는 “‘이 얼음 같은 세상을 깨고’라는 노래 제목처럼 노동자가 많이 힘들어 하는 시대를 혼자가 아닌 여럿이 함께 연대하면 해쳐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생선언 박중현 전체단장(연세대, 23)은 "대한문 분향소가 철거된 이후 매일같이 수많은 시민들이 이 추모의 공간을 지키려 오는걸 보면서 우리만의 봄이 온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라며 연대를 강조했다.

박중현 전체단장은 지금까지 노사문제와 관련된 노동자들의 죽음에 대해 사회가 침묵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너무나 많이 죽어서 일까요, 아니면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은 이들의 목숨이 너무나 하찮게 느껴졌기 때문일까요. … 세상은 죽음 앞에서 조용해야 한다고 이야기 합니다”

박 단장은 “건강하게 자라나는 아이들이 전경 놀이를 하며 자신들의 아버지가 짓밟히는 그 상황을 재현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없다”면서 “우린 무엇을 해야 합니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연설을 마쳤다. 

“16세의 봉제공 엠마 리이스가…”로 시작하는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시가 단상을 중심으로 광장을 가득 메웠다. 사백여 명의 참가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인터내셔널가’를 합창하는 것으로 이날 행사는 마무리 됐다. 
 


학생을 넘어, 모든 청년이 연대하는 '이후'를 고민하다 

한편 이날 아쉬웠던 부분은 청년행사의 무대를 장식하고 관람한 참석자들의 대다수가 대학생들이었다는 것이다. 

이번 청년학생문화제에는 ▲대학생 선언 ▲고려대 몸짓패 비상 ▲고려대 몸짓패 초아 ▲‘노찾사’문진오 ▲성균관대 몸짓패 아성 ▲한신대 몸짓패 희망새 ▲서울대 몸짓패 골패 ▲경희대 몸짓패 미결 ▲이화여대 인문사회 학술공동체 박하 ▲인하대 지식공동체 아침 이 무대를 꾸몄다. 대학생 신분이 아닌 청년은 이번 행사를 주최한 메이데이 실천단 ‘공기’뿐이었다. 

경희대 몸짓패 미결이 노래 '소나기'에 맞춰 단체 군무를 선보이고 있다.


한국교육개발원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대학진학률은 2008년 83.8%의 정점에 오른 뒤 계속 하락해 2012년 71.3%까지 감소했다. 물론 여전히 OECD 가입국 가운데 1위를 지키고 있지만, 감소한 대학진학률 만큼 대학을 가지 않고 곧바로 ‘노동자’로 살아가는 청년들이 더 늘어난 것이다. 

123주년 메이데이 김영규 실천단장은 “노동자와 학생간의 연대가 단지 학생들이 미래의 노동자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이미 벌써 많은 청년들이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더욱 필요한 것”이라며 “연대라는 가치로 이 자리에 함께 모였다”라고 이번 행사가 청년층 전체를 위해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전체단장도 오늘은 (전년에 비해)공기 실천단과 같이 학생기층이 아닌 일반 청년들의 참여도 훨씬 늘었습니다"라며 이번 문화제가 학생사회에서 그치지 않고 청년층이 함꼐 하려 했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아직까지 사회문제에 대한 토론과 연대의 자리가 학생사회를 주도하다 보니 참여자가 학생으로 제한된 부분이 있다"라며 "학생 사회뿐만 아니라 청년 전체를 포괄 할 수 있도록 참여 기층을 더 넓히겠다는 고민을 늘 하고 있다”고 앞으로의 포부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