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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이동국 사냥이 시작’됐다. 지난 6월 5일 새벽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은 레바논과의 원정경기에서 ‘졸전’ 끝에 후반 추가 시간에 김치우의 프리킥 골로 간신히 동점을 만들어 패배를 모면했다. 경기 직후에 온라인상에서 보이는 축구 팬들의 비판은 분노에 가깝다. 문제는 이 분노 어린 목소리가 너무나 가혹하게, 그것도 한 개인에게 집중되고 있는 현상이다. 이 마녀사냥의 대상은 이날 경기에서 선발로 나온 이동국 선수다. 그러나 레바논과의 경기에서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이 보여준 ‘졸전’의 책임을 이동국 선수 개인에게 온전히 지울 수 없음은 당연하다. 필드 위에서 대표팀이 보여준 경기력 문제는 이동국 선수 개인의 기량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한국 축구 대표팀의 ‘총체적인 난국’이었다. 그럼에도 팬들과 언론들은 한국 축구의 경기력 자체를 아쉬워하면서도 비난의 화살은 이동국 개인에게만 향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동국이 레바논전에서 과연 ‘욕먹어 마땅한’ 경기력을 보였는지 살펴보자.

이동국 vs 손흥민 
 
이날 선발로 출전한 이동국 선수 향한 비판 중에는 후반 교체로 출전한 손흥민 선수가 선발로 나오지 않았다는 점에 주안점을 두는 의견이 있다. 최근 분데스리가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준 손흥민을 벤치에 앉혀두고, 왜 ‘노장’ 이동국 선수를 선발로 출전했냐는 것이 이 주장의 요지다.
물론 다수의 팬들이 하이라이트 영상을 보고, 스페셜 영상만 보고 선수를 평가하는 상황을 고려했을 때, 이런 막연한 기대감을 갖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선수를 대표팀에 기용하여 전술적으로 활용해야 하는 감독의 입장은 팬들의 ‘바램’과는 항상 일치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

감독은 상대 팀에 대한 분석을 통해 가용 가능한 최적의 선수를 바탕으로, 최적의 전술을 구상하여 최상의 결과를 얻어내야 한다. 때문에 손흥민 선수가 아니라 이동국 선수가 선발로 기용된 데에는 레바논전에 대한 최강희 감독의 전술적인 판단을 먼저 참고해야 한다. 최강희 감독은 레바논전을 갖기 전에 한 인터뷰에서 손흥민 선수가 분데스리가에서 좋은 활약으로 시즌을 마무리한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상대 수비가 강하거나 밀집 형태로 나설 때 약한 모습”이라고 말한다. 구체적으로는 “극단적으로 내려서는 팀들을 상대하면 좁은 공간에서 등도 잘 져야 하고 세밀성도 가져야 하니까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최강희 감독이 일전에 발언한 바와 같이 아시아 축구에서 한국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때문에 대부분의 아시아팀들은 한국 대표팀을 상대할 때, 수비적인 전술을 갖추고 나온다. 낮은 수비라인과 좁은 간격, 그리고 밀집된 대형으로 ‘반코트’ 경기를 이미 가정하고 나오는 것이다. 한국 대표팀의 입장에서는 이런 수비적인 전술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뚫을 것인가 하는 고민해야 한다. 최강희 감독은 이를 “좁은 공간에서 등도 잘 지고” “세밀성”도 가지는 선수를 통해 해결하고자 했고, 그 결과 선발된 것이 이동국 선수였다고 볼 수 있다.

이동국은 최강희 아들일 뿐?

 
이번 레바논전에서 이동국 선수의 기용은 최강희 감독의 전술적 판단에 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동국 선수는 그런 최강희 감독의 전술적 판단에 부합하는 활약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시종일관 수비진과 몸싸움을 벌이면서 등을 지고 플레이하며, 겨우겨우 미들진을 통해 전달되는 공을 간수했다. 간간이 나오는 대부분의 득점 기회는 대부분 이동국 선수가 만들었다.
물론 골망을 흔드는 일은 없었지만 말이다. 이에 일부 팬들은 이동국 선수를 ‘골을 못 넣는 공격수’인데 최강희 감독의 ‘옛정’때문에 기용되는 선수라고 공격한다. “거꾸로 가는 최강희호, 이동국 미련 버려라!”, “이동국만 믿더니…최강희, 선수파악도 제대로 못했다”와 같은 기사 제목은 일부 팬들의 목소리를 대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최강희 감독의 대표팀에서 기용할 수 있는 공격자원은 이동국 선수를 제외하고 누가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공격수는 골로만 설명할 수 있다’고 하니, K리그의 득점 개인 기록 순위를 보자. 이동국 선수와 동등하거나 보다 많은 득점을 한 선수는 득점 순위별로 페드로(제주, 브라질), 데얀(서울, 몬테네그로), 김신욱(울산), 조찬호(포항), 보산치치(경남, 유고슬라비아), 정대세(수원), 임상협(부산)이다.  이중 한국 대표팀에 차출된 김신욱과, 차출될 수 없는 선수들을 제외하면 조찬호 선수와 임상협 선수가 남는다. 하지만 조찬호(170cm, 68kg) 선수와 임상협(180cm, 74kg) 선수는 이동국(187cm 83kg)-김신욱(196cm, 93kg) 선수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체격이 약소한 편이고, 소속팀에서 뛰고 있는 포지션과 역할 자체가 레바논전에서 최강희 감독이 설명하는 전술적인 ‘역할’과 부합하지 않는다. 반면 박주영 선수는 소속팀(셀타 데 비고, 스페인)에서조차 경기에 자주 출전하지 못하는 상황이었기에, 경기력 자체를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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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최강희 감독이 대표팀에서 원톱의 선발위치에서 전술적인 고려에 의해 기용할 수 있는 최적의 카드는 이동국이다. 물론 이러한 전술적 판단에 ‘봉동이장’ 시절 최강희 감독과 이동국 선수가 소속팀 전북에서 오랜 기간 기량을 확인했고, 그것을 바탕으로한 신뢰관계가 일정정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는 있다. 하지만 앞에서 살펴본 바, 최강희 감독이 레바논전에서 이동국 선수를 선발로 기용한 것은 단순히 ‘신뢰 관계’에만 의존하여 결정했으리라 보는 것은 지나치게 편파적인 견해다.

이제는 "ㄷㄲㅈㅁ"라고 말해줄 때

이동국 선수는 레바논전에서 최강희 감독이 주문한 전술적인 역할에 충분히 부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수비 조직력이 갖추어지지 않았고, 중앙 자원들이 제대로 된 패스를 공급해주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자신에게 오는 공을 충분히 살려 공격 기회를 만들었다. 이동국 선수가 레바논전에서 해내지 못한 유일한 것은 ‘골’을 넣지 못했다는 것뿐이다. 이에 이동국 선수를 비판하는 이들은 “공격수는 골로 답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공격수’는 ‘골만 넣는 득점기계’에서 탈피한 지 오래다. '한준희와 장지현의 원투펀치'에서 한준희 해설위원과 장지현 해설위원은  “토탈 사커가 현대축구의 ‘흐름’이자 ‘대세’"라고 입을 모은다. 이런 현대 축구의 '흐름' 속에서 공격수를 평가하는 기준을 득점에만 두는 것은 단순한 생각이다. 

팬들은 한국 축구를 지나치게 높은 잣대로 평가하려는 경향이 있다. 앞서 언급을 했듯이 한국 축구는 아시아 축구계에서 ‘상위권’에 위치한다. 그러나 그것이 언제나 승리를 장담해 주지는 않는다. 경기력을 보장해주는 것도 아니다. 또 ‘상위권’팀에 속한 공격수가 언제나 득점 포인트를 적립하는 ‘기계’도 아니고, 동네 축구처럼 경기마다 득점할 수도 없다. 이는 당연하다. 이를 받아들이는 것도 당연한 일이어야 한다. 한국 축구팬과 언론은 아마 드록바가 한국 대표로 뛰어도 몸으로만 축구하려고 한다고 비난할 테고, 반페르시가 한국 대표팀에서 뛰어도 오른발을 왼발처럼 잘 못 쓴다고 비난할 것이다. 축구의 황제 호나우도가 한국 대표팀에서 재림하더라도 드리블로 제치려고만 한다고 욕할 것이다.

이동국 선수는 레바논전에서 충분히 전술적으로 필요한 움직임을 보여주어 전술적 기용에 합당한 역할을 했다. 그가 골을 못 넣은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이는 레바논전에서 보여준 한국 축구 대표팀의 ‘총체적 부실’에서 비롯된 결과지 이동국 선수 개인 기량의 결과는 아니다. 팬들은 난감한 경기력을 보여준 축구 대표팀의 경기력의 책임을 '누군가'에게 묻고 싶고, 그것은 오랜 시간 그래 왔듯이 '공격수 자리에 위치한 선수'에게 향하고 있다. 이 질타가 정도가 지나치는 상황에서 언론은 팬들의 ‘입맛에 맞는 기사’를 쓰는 데에만 몰두한다. 

이동국 선수가 골을 넣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아마 그는 ‘한 골’밖에 넣지 못해 별로였다고 비난 받았을 것이다. 두 골을 넣었다면, 헤트트릭을 하지 못했다고 “까임” 당했을 것이다. 지금 이동국 선수는 숨만 쉬어도 ‘까'이고 있는 것이다. 폭주하는 팬들과 이를 좋은 ‘상품’으로만 보는 언론들에게  “ㄷㄲㅈㅁ(동국 까지마!)”라고 말해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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