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사극이 방영되면 으레 ‘역사 왜곡’ 논란이 뒤따른다. 최근 방영 중인 '구가의서(MBC)'와 ‘장옥정, 사랑에 살다(SBS)’ 그리고 '구암 허준(MBC)'등이 끝나 곧바로 대중은 극 중 내용의 일부가 '역사 왜곡'이라며 투덜거리고, 언론은 대중의 장단에 맞추어 기사를 통해 사극의 역사 왜곡을 고발하며 ‘판’을 벌인다. 주지하고 있듯이, 사극의 역사 왜곡 논란은 비단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의 사극 역사에서 아직도 기억되고 있는 ‘태조 왕건(KBS)’, ‘허준(MBC)’, ‘대장금(MBC)’, ‘불멸의 이순신(KBS)’ 등 어떠한 사극도 역사 왜곡이라는 족쇄에서 벗어나 자유로웠던 적이 없다.
  
사극을 향해 ‘역사 왜곡’을 부르짖는 이들은 항상 사극 일부분이 ‘역사적인 사실'에 반(反)하는 구성을 해서는 안되, 이것이 대중들에게 '잘못된 역사 인식'을 심어주는 악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이들의 주장처럼 사극은 역사적 사실에 ’반‘하는 구성해서는 안 되고, 대중들에게 바람직한 역사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사극의 제일 과제일까?

사극은 역사가 아니라 드라마다

사극이 스스로 ‘정사(正史)’를 자처하는 경우는 없다. 이는 최근에 유행하는 퓨전사극만이 아니다. 정통사극이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태조 왕건’의 경우에도 기획 의도를 통해  “드라마적 본령에 충실”할 것임을 밝히고 있다. 사극은 기본적으로 역사를 소재로 하는 ‘극(劇)’이다. 사극이 ‘역사’ 그 자체라면, 그것은 ‘극’이 아니라 ‘다큐’라 명명해야 한다. 또 연출자와 작가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역사학자와 역사가가 필요할 것이다. 사극은 다큐도 아니고 역사를 대변하지도 않는다. 단지 연출자와 작가가 역사에서 일부 배경과 소재를 가져온 ‘창작물’이다.

이점을 보다 명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품의 기획 의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극은 기획 의도를 통해 해당 사극의 제작 배경과 동기, 목적을 밝힌다. 여기서 제작진은 사극이 사실 그 자체로 ‘역사’가 아니라 가공의 ‘극’임을 밝힌다. 최근 사극의 역사 왜곡 논란의 선봉에 있는 ‘장옥정’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장옥정’의 제작진은 기획 의도에서 ‘패자의 진실은 왜곡’되었기 때문에, 기존의 정사로 받아 들여왔던 ‘승자의 역사를 배제’하는 것에서 출발한다고 밝힌다. 이를 통해 사극이란 연출자와 작가의 “재조명”을 통해 가상의 세계관이 “그려”지는 창작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2011년 인기리에 종영된 ‘뿌리 깊은 나무(SBS)’’도 마찬가지다. 제작진은 기획 의도에서 “이 드라마는 실록에 나와 있지 않는 창제”와 관련된 전반의 것들을 “유추, 창작”하여 “재해석”하고자 한다고 밝힌다. 이는 앞서 ‘태조 왕건’의 기획의도에서 보았듯이 퓨전 사극에만 국한된 것도 아니다. 2005년 종영된 ‘불멸의 이순신’의 경우에도 “드라마 이순신은 개인의 위인전은 아니다. 또한 16세기 조선의 현실을 그대로 복원하는데 목적을 두지도 않는다”고 말한다. 나아가서는 “이순신의 모습을 부각”하고 극 중 인물들을 “재평가”하여 “그릴 것”을 선언하고 있다. 사극이란 온전한 역사 그 자체가 아니라, 단지 역사에서 일부분의 역사적 배경과 일부분의 요소들을 빌려 특정한 목적을 반영하여 ‘그리는’ 창작물인 것이다.

사극이 ‘정사’를 비틀어 ‘재해석’하거나 ‘재평가’하는 이유는 각 극이 특정한 목적 의식을 가지고 제작되기 때문이다. ‘장옥정’의 경우, ‘승자의 역사를 배제하고 패자의 진실’을 바탕으로, “르네상스 조선의 모습”을 그리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뿌리 깊은 나무’는 “실록에 나와 있지 않는” 것들을 “유추, 창작”하여 “세종을 재해석”함으로써, 조선시대에 살았을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그려보고자 한다.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극 중 이순신을 오늘날 필요한 사회적 리더의 모습으로 그리며, “식민사관을 배척”하고 “오늘의 한국 사회를 들여다보는 거울”로 여기고자 한다고 말한다.

사극을 ‘극’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 사극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할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극의 진행에 있어서 개연성, 극 중 인물들의 이미지 형성 과정, 제작진의 기획 의도 등에 대한 의문과 비판은 충분히 필요하다. 물론 그것은 다른 여타의 드라마를 향한 기준과 다르지 않아야 한다. 영화감독 김기덕은 사극을 바라볼 때, 역사 왜곡의 여부가 아니라 제작진이 사극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그 목적에 주목할 것을 권고한다. 그는 사극에 대해 “역사적 상상력을 보다 자유롭게 놓아 두되, 그것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었는가를 따져 보는 논쟁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극과 바람직한 역사 인식의 관계 
  
2009년 방영되었던 ‘선덕여왕(MBC)’은 시청률이 40%에 육박하며 인기몰이에 성공했다. 물론 ‘선덕여왕’의 높은 시청률과 인기가 역사 왜곡 논란으로부터 자유를 주지는 못했다. 그런데 ‘선덕여왕’에 제기된 역사 왜곡 논란들은 역사를 처음 배우는 학생들에게 ‘악영향’을 미쳤을까. 한 조사결과(자료보기)에 따르면, 선덕여왕을 시청한 초등학생 응답자 중 단 9.75%만이 ‘선덕여왕’의 극 중 내용의 80% 사실일 것이라고 응답했다. 반면 60~80% 정도가 사실일 것이라고 응답한 초등학생이 56.09%로 가장 높았고, 60% 이하만이 사실일 것이라고 응답한 학생은 34.13%였다. 역사를 배우기 시작하는 초등학생들도 사극의 내용을 전적으로 ‘사실’로 수용하고 있지는 않다. 사극의 상당 부분이 허구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해당 논문은 해당 작품에서 허구적으로 구성된 ‘비담’이란 인물을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는 학생 대부분이 비담이란 인물을 객관적 사실로 여기는 것보다 ‘선덕여왕과 사랑하는 인물’로 여기는 부분에 주목한다. 논문에서는 이를  “순수하게 제작자의 의도가 학생들에게 영향을 준 사실”이라고 말한다. 앞서 밝혔듯 사극은 제작진의 목적 의식을 녹여내기 위해 작품에 다양한 역사에 ‘반’하는 가정을 하게 된다.

사극의 방영으로 대중들, 특히 학생들이 ‘왜곡’된 역사를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기존의 ‘역사 인식’이 흔들린다면, 이는 분명 문제고 한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왜냐하면 이는 그만큼 역사 교육이 대중에게 ‘바람직한’ 역사를 인식하게끔 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하고, 또는 역사를 수용하는 방법을 제시해주지 못했음을 반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의 역사 교육이란 
역사를 문제 풀이를 통해 ‘주입’시키고, 이를 수능 문제로 평가하는 것뿐이다. 이런 역사 교육이 
만들어낸 ‘역사 인식’은 TV로 방영되는 사극의 단순하고 허구적인 ‘가정’에 간단하게 무너져 내린다. 여름에 태풍이 폭우를 동반하는 것은 당연한 자연의 이치다. 만약 태풍이 몰고 오는 폭우에 매번 도시 전체가 침수된다면, 침수의 책임은 폭우를 몰고 온 태풍에 있는 것이 아니다. 
도시의 기초공사를 허술하기 짝이 없이 한 건설업체와 이를 방관하거나 조장한 자치단체의 잘못이다.

대중과 언론은 사극을 향해 불필요하고 과도한 역사 의식을 강요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바라고 원하는 ‘역사’가 극에 투영되어 있기를 바란다. 김기봉 경기대 사학과 교수는 이처럼 사극에게 과도한 기준과 요구를 하는 현상을 ‘역사 과잉’이라고 분석한다. 김 교수는 역사에 대한 대중의 과도한 ‘관심’이, 역설적으로 사회가 ‘역사적으로 위기’에 직면했음을 반영한다고 말한다. 언론은 이 현상 이면에 있는 문제에는 되려 무관심한 채, 대중의 관심에 최대한 부흥하면서 여론몰이에 여념이 없다. 김기봉 교수는 나아가 역사의 과잉 현상이 사회에 끼칠
부정적인 영향을 우려한다. 그는 이를 “우리 삶에 역사를 과잉 시킴으로써 결과적으로 역사의식의 빈곤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역사적인 위기가 역사의 과잉 현상을 초래하고, 이는 다시 역사의식의 빈곤을 가져올 것이라는 말 그대로 ‘악순환’이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대중과 언론이 해야 하는 일은 사극에 ‘정사’를 반영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현행 되고 있는 역사 교육 체제를 비판하는 것이다. ‘역사 과잉’ 현상에서 대중과 언론은 사극을 향해서는 과도한 요구를 하면서, 정작 역사 교육 체제에 대해서는 그만큼의 요구를 하지 않는다. 몇몇 사건의 연도와 인물의 업적을 달달 암기하는 것을 강제하는 교육 과정에서는 ‘바람직한' 역사 인식은 결코 형성될 수 없다. 역사 교육이 수능 문제 풀이를 통해 득점하는 과목을 벗어나, 대화와 토론을 통해 교육을 진행 할 때 학생들은 스스로 역사를 인식하는 방법을 생각해보고 깨우칠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 역사를 수용하는 이들은 사극의 허구적인 가정에 굳이 여념하지 않은 채, 사극을 바라볼 것이다. 그때 비로소 대중이 ’역사‘를 ’인식‘한다고 말할 수 있다.

왼쪽부터 허준(MBC), 태조 왕건(KBS, 2002년 종영), 대장금(MBC, 2004년 종영), 불멸의 이순신(KBS, 2005년 종영). 방영된 사극 모두 역사 왜곡 논란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