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수원에 사는 김은미(21씨)는 얼마 전 우연히 자신의 모교 앞을 지나다가 깜짝 놀랐다. 초등학생들로 북적여야 할 문방구에 ‘폐업’이라는 글자만 덩그러니 적혀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김 씨의 모교 앞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실제로 통계청의 조사에 따르면 2006년에는 2만 191개에 달했던 전국 문구용품소매점 수는 2011년에는 1만 5750개로 불과 5년 사이 4분의 1 가까이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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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고사 위기에 직면한 문방구들은, 불과 십여 년 전 까지만 해도 호황을 누렸었다. 그 시절 초등학생들에게 문방구란 단순한 상점 이상의 존재였다. 어린이들에게 학교 앞 문방구는 놀이터이자 백화점이자 레스토랑이었다. 여학생들은 백 원 이백 원 모은 돈으로 코디 스티커, 다이어리 속지를 사며 행복해 했고, 남학생들은 문방구 앞 미니카 경기장에서 미니카 대회를 열고, 철권 게임기 앞에서는 게임 순서를 두고 싸움까지 벌였다. 김 씨는 “문방구는 죽어도 망하지 않을 줄 알았어요. 바글거리는 이미지 밖에는 떠오르지 않아요. 항상 맛있는 것, 예쁜 것, 재밌는 것들로 넘쳐나는, 저에겐 마법의 공간과도 같은 곳이었는데, 이렇게 문을 닫는다니 기분이 이상해요”라며 아쉬워했다.  

김 씨 세대와 달리, 지금의 초등학생들에게 문방구는 허름한 상점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않는 듯하다. 경기도 성남시의 한 초등학교에 다니는 김서영(11세) 양은 요즘 학생들은 문방구에서 놀지 않느냐는 질문에 “무슨 소리에요? 문방구에서 왜 놀아요?”하며 의아해했다. 한 시간에 5천원을 내면 트램펄린, 볼풀장 등 다양한 놀이 시설을 즐길 수 있는 실내 놀이장에서 친구들과 시간을 보낸 뒤, 패스트푸드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거나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사 먹는 것이 김 양의 주된 일과이다. 이렇게 문방구에서 오락의 기능이 사라져 감에 따라, 문방구는 단순한 상점으로 전락해 버렸다.  

최근의 소규모 문방구들은 상점으로서의 기능만을 다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정부의 학습준비물 지원정책 때문이다. 각 시도교육청은 학부모들의 경제적인 부담을 조금이나마 줄이고, 준비물로 인해 저소득층 자녀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학습준비물 지원정책을 펼치고 있다. 특히 서울시의 경우는 2010년부터 ‘준비물 없는 학교’ 정책을 강력하게 실시하고 있는데, 각 초등학교에서 학습준비물을 공동구매해 학생들에게 직접 나눠주는 식으로 운영된다. 그런데 공동구매 방식이 온라인을 통한 전자입찰이기 때문에, 동네 소규모 문방구가 대기업과 경쟁하는 전자입찰을 성공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비단 입찰과정 뿐만이 아니더라도, 동네 소규모 문방구들은 대형 마트나 ‘천원샵’에 경쟁이 되지 않는다. 문방구에 들여오는 도매가격보다도 더 낮은 가격으로 판매를 하니, 문방구 소매업자들로서는 당해낼 도리가 없는 것이다. 대형 마트와의 경쟁에서는 그나마 접근성을 바탕으로 겨우 살아남았지만, 이제는 유명 프랜차이즈 ‘천원샵’들이 한 동네에도 여러 개가 발견 될 만큼 골목 상권 깊숙이 자리 잡았기 때문에 접근성에서도 싸움이 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 박근혜 정부가 성폭력, 가정폭력, 학교폭력과 함께 불량식품을 척결해야 할 4대악으로 꼽으면서, 문방구 업주들의 걱정은 더욱 깊어졌다. 물론 박근혜 정부가 4대악으로 꼽은 불량식품이 문방구에서 파는 '불량식품'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유통, 포장, 식품첨가물 등 인체건강을 해치는 모든 음식물 전반에 관련된 사항을 말한다. 그럼에도 불량식품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문방구에서 파는 '불량식품'들 이기에, 이 타격은 고스란히 문방구 소매업자들에게 이어지고 있다. 대학생 박지영(24세)씨는 “대선 토론회에서 불량식품을 4대악으로 꼽는 걸 보고 의아했어요. 문방구에서 파는 불량식품을 말하는 줄 알았거든요.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박근혜 불량식품’이 인기검색어에 있더라고요. 저만 착각했던 게 아닌가 봐요”라고 말했다.  

서울 영등포구의 한 초등학교 앞에서 23년째 문방구를 운영해온 한상희(51세)씨는 실제로 이 점들을 지적하며 문방구 운영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한 씨의 문방구 옆에는 원래 3개의 문방구가 연달아 있었지만, 최근 5년 사이 두 개의 문방구가 문을 닫았고 같은 건물에 나란히 있던 문방구마저도 이 달부터 폐업 정리에 들어갔다. “학교 준비물은 학교에서 다 주고, 다른 건 마트나 천원샵가서 사면되고. 누가 동네 문방구에 오겠어요? 먹을 거라도 팔려고 했더니, 그 마저도 사회악이니 뭐니 하면서 팔지 말래요. 그냥 우리보고 죽으라는 거죠.”  

이런 상황에, 문구 소매업자들은 학교 근처의 문방구 쿠폰을 학생들에게 지급하는 ‘바우처 제도’의 형태로 지원 정책을 수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소규모 문방구들의 몰락을 나 몰라라 하는 정부가, 골목 상권 수호를 위해 기업형 슈퍼마켓(SSM)에 제재들을 가하던 것과 같은 주체가 맞는 건지 아이러니할 따름이다. 이대로라면 문방구가 오직 추억 속에만 존재하는 말 그대로 ‘추억의 공간’이 되어 버릴 날도 머지않은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