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하여 ‘서울대 시국선언’에 여기저기서 들썩이고 있다. 20일 오전 서울대 총학생회가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국정원의 선거 개입과 수사기관의 축소 수사 등을 규탄하는 내용으로 기자회견을 연 뒤로, 현재는 이화여대, 연세대, 고려대, 경희대 등 타 대학들로 시국선언의 파장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 가운데 대학의 총학생회에서 “국정원 선거 개입은 민주주의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파기한 것이다.”를 골자로 하는 성명서를 발표하는 행위가 과연 정당한 행위인가, 서울대가 움직인 뒤에야 한 마디씩 하니 학벌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게 아닌가, 등등 말이 많다.
 

엄밀히 말해 서울대 총학생회는 아직 ‘시국선언’을 한 게 아니다. 성명서를 발표한 뒤 시국선언을 “추진”하겠다고 했을 뿐이다. 시국선언이란 지식인이나 종교계 인사들이 나라의 시대 상황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며 해결을 촉구하는 것을 일컫는다. 국가 중대사에 대한 입장 발표이니만큼 사회적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하나 아직 단행된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이 논란에서 무엇보다 핵심이 되는 것은 총학의 정치성이다. 일각에서는 ‘학교를 대표하는’ 총학생회가 학생들의 의사도 묻지 않고 이른바 ‘정치질’을 한다는 비판이 거세다. 그러나 학생들의 의사를 무조건 일일이 묻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 총학이 ‘학교를 대표하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선거에 의해 뽑힌 집단이므로 학생들의 권한을 위임한다는 의미가 이미 부여되어 있다. 여기에 직접 민주주의를 재차 요구하는 것은 모순이다.
 

또한 총학은 학내뿐 아니라 학외 문제에서도 학생들과 폭넓게 관련 있다고 여기면 정치적이라 여겨지는 행위를 할 수 있다. 이러한 행위를 비판하는 것은 총학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역사상 그 어떤 시국선언에서도 모든 학생들의 의견이 동일했던 적은 없으며, 그럴 수도 없다. 따라서 총학의 의견이 곧 그 대학 구성원 모두의 의견과 동치가 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사회문제에 대해 특정한 목소리를 내는 기관이 ’대학‘이라는 고등교육기관이기에 일종의 정당성이 확보되는 측면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총학의 비정치성을 억지로 요구하는 이들은 총학생회의 대표성과 특수성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는 듯하다. 총학은 어디까지나 학생들의 지지를 얻어 뽑힌 집단이며, 한 대학을 대표하는 상징 기관이며 동시에 특수한 조직이다. 여기서 ‘특수함’은 수적 보편성과 구성원 전원의 의견 일치를 담보로 하지 않아도 되는 조직이라는 의미다. 정치는 모든 행위에 들어있는 것이므로 정치와 비정치를 가르는 것도 작위적이다. 국정원 사태에 대한 시각 차이는 차치하고서도, 총학의 행위 자체를 비난하는 것은 무의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