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의 정치개입에 대한 규탄의 움직임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내일(20일) 오전 서울대 총학생회는 대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정원의 정치 및 선거개입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관련자 처벌을 검·경찰에 요구할 예정이다. 앞서 서울대 총학생회는 시국선언을 해야 한다는 학생들의 의견이 쇄도함에 따라 지난 16일 시국선언을 열기로 결의했다. 시국선언은 다음 달 중에 이뤄질 예정이다. 한편 고려대와 부산대 역시 이번 사태와 관련해 학생들의 반발이 크다며, 학생들의 의견을 모아 표출하는 방법을 강구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이런 움직임이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음은, 대학생들을 포함한 일반인들의 이번 사태에 대한 실망감이 매우 크다는 점을 나타낸다.

경찰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는 지난 14일 다음 아고라에 ‘국정원 게이트, 국정조사 실시를 요구한다’라는 청원글을 올려 국정원 사태의 철저한 진상 규명을 주장했다. 이 청원글에는 나흘 만에 10만 명이 넘는 누리꾼들이 서명했다. 일선 경찰관들도 페이스북 등 자신의 SNS계정을 통해 국정원 선거개입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밝혔다. 황정인 서울 강남경찰서 수사과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자신이 ‘경찰은! 거듭나야 합니다’라고 쓰인 종이를 든 사진을 올리며 “경찰청은 마땅히 국민 앞에 사죄해야 하며, 사죄의 한 방법으로 전화를 받을 때 첫인사를 ‘죄송합니다’라고 하자”고 말했다. 한 경찰관은 사과 그림이 그려진 포스터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리며 현 경찰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고, 국민들을 향해 사과했다.

이처럼 국민들은 물론 경찰 내부에서조차 국정원 사태에 대한 명확한 조사와 일벌백계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매우 높다. 그러나 정작 국민의 의견을 대표한다는 국회의원들은 여전히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공방을 서로에게 가하기에 급급하다. 특히 새누리당은 ‘과연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민주당의 꼬투리 잡기에만 전념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민주당의 국정조사 요구에 국정원 여직원 감금에 대한 조사부터 진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계속해서 시간을 끌고 있다. 여기에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지난 18일 원내대책회의에서 “확실한 물증도 없이 불확실한 제보만으로 특정인을 거명하며 몸통 배후설을 거론한다”며 야당이 이번 사태를 이용해 정치공세를 펴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정원이 선거에 개입했다는 증거가 명백히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불확실한 제보’ 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별개로 수사하면 될 일인 국정원 여직원 감금 사건을 굳이 같이 조사하자고 주장하는 새누리당의 태도야말로 다분히 정치적이며 전략적이다. 모두가 국정원의 선거개입에 대한 명확한 조사와 검·경찰의 부실수사를 규탄하지만 정작 새누리당만은 귀를 틀어막고 있다. 

정치적 성향이 어떻든 간에, 국가정보기관이 정치는 물론 선거에 개입한 정황이 드러났다는 것 자체가 이미 국가의 기강이 심각하게 훼손된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정당과 이념을 뛰어넘는 문제다. 누가 잘못했는지 명백하므로 나올 수 있는 결론은 한 가지다. 잘못을 고치면 된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은 이 사건을 정권 다툼의 수단으로 이용하여 어떻게든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려고 애를 쓴다. 명확한 잘못을 판단할 기회가 그들 앞에 주어졌으면 이를 제대로 판단하고 잘못을 시정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정작 국회의원들은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 사태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불구속 기소된 지금, 이제라도 국회의원들은 여야 가릴 것 없이 힘을 합쳐 국정원 사태에 대한 분명한 책임을 묻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