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눈을 떠보니 벌레로 변해 있었다. 근대 인간주체의 불안함을 형상화한 소설인 프라츠 카프카의 ‘변신’의 첫 문장이다. 근대 자본주의 이후부터 경기변동 및 사회가 복잡화함에 따라 인간은 점점 더 자신을 컨트롤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아무런 이유도 알 수 없이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영업사원인 ‘변신’속 그레고르 잠자의 모습은 근대인간의 표상이다. 근대의 복잡한 사회 속에 더 이상 공동체의 보살핌 없으며 홀로 떨어져 미래를 예측할 수 없어 항상 불안감에 떠는 근대 인간의 모습 말이다. 이유도 알 수 없는 상황과 그 상황에 벗어나려고 몸부림칠 수 록 더욱 수렁으로 빠져들시 인간이 어떤 심리과정을 겪는지에 대한 치밀한 묘사를 한 점이 특징이다.
 

2013년 4월 시점에 단행본 누계가 약 1,200만부를 상회한 만화 ‘진격의 거인’을 보면서 카프카의 ‘변신’속 묘사한 불안한 인간모습들이 떠오른다. 갑작스레 이유도 알 수없이 평화로운 인간세계에 거인이 나타난다. 거인의 행동원리는 단순하다. 바로 인간을 살육 하는 게 목적이다. 그들이 왜 그런지에 대해 이유는 알 수 없다. 그들이 죽이기 때문에 인간은 생존하기 위해 100여 년 전 누군가 쌓았는지 모르는 50m 높이의 벽 안에서 숨죽이며 살아간다.
 

“거인이 모든 것을 지배한 세계, 거인의 먹이가 되어 버린 인류는 거대한 벽을 쌓고 벽 바깥으로 나가는 자유와 맞바꿔 침략을 막고 있다.”
 

이유를 알 수 없거나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부조리한 사건들이 반복해서 일어난다. 거인은  주인공 엘렌이 평화에 젖어 잠들다 깨어나니 갑작스레 나타난다. 그리고 엘렌의 평화를 무자비하게 깨부순다. 자신의 어머니가 거인에 잡아먹히듯이 말이다. 그렇다고 이 상황을 타개하기위한 노력은 거인의 힘 앞에 속절없이 무너져간다. ‘진격의 거인’의 인물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처음부터 이 세계는 지옥이야.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먹는 친절할 정도로 이해하기 쉬운 세계“ 라면서 말이다. 마치 자연 속에서 사마귀가 자신보다 약한 먹이를 먹고 인간들이 자신이 생존하기 위해 동물들을 사냥하듯이 말이다.
 


새장 속에 갇힌 인류는 벗어날 상상을 하지 못한다. 입체기동이라는 거인에 대항할 만한 무기를 갖췄더라도 거인들의 힘이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입체기동이라는 도구를 통해 거인에 대한 전술 전략을 발전시키고 그런 전략들을 지루하게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악착같이 배운 훈련은 실전에서 아무것도 보장하지 못한다.  앨런은 바로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대해 아무런 소용이 없다면서 절망감을 토로해낸다.
 

공포에 사로잡힌 인류는 더 이상 벽 바깥세계에 대해 흥미를 가지는 것을 금지한다. 공포가 내면화된 인류는 앨런이 말했듯이 “밥 먹고 잠만 자면 살 수 있어 하지만 그건 마치 가축 같아” 라며 더 이상 상상 하는 것을 멈춘 인류를 비판한다. 물론 벽 바깥은 공포의 세계다. 언제 잡아먹힐지 모르는 나약한 존재인 인류가 쉽게 나갈 수 없다. 하지만 벽 바깥은 미지의 신세계이며 인류가 삶의 길을 더욱 넓힐 수 있는 하나의 통로일 수 있다. 이런 기회의 가능성을 더 이상 상상하지 않는 인류는 가축화 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악화되는 상황 속에 인류는 그들에게 대항하려는 노력보다 더욱 서로를 처참하게 짓밟는다. 거인의 침략으로 곧 있으면 죽을 위기에 닥쳤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욕심을 부리는 상인의 모습은 공동체의 위기보다 자신의 안위를 더욱 걱정하는 인간의 부정적인 측면을 보여준다.
 

그에 더해 거인에게 대항할 힘을 높인 자 들은 오히려 거인이라는 위협 속에서 멀어지려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보여준다. 입체기동 훈련을 통해 가장 능숙하게 도구를 다룰수록 거인에게 적절하게 대응할 힘을 가지지만  힘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높은 성적을 이용해 벽 안쪽으로 들어가려 한다. 성적이 높을수록 다양한 선택권이 주어지기 때문에 그들은 악착같이 거인에 대한 전투능력을 키우지만 노력은 오히려 인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성적이 높은 사람들은 조사병단 이라는 거인에게 대항하는 최전선에서 싸우는 게 아니라 벽 안쪽에서 왕을 호위하는 헌병단에 지원하기 때문이다. 인류에게 더욱 필요한 존재들이 더욱 멀어지는  아이러니컬한 상황을 보여 준다. 물론 위험을 짊어진 사람들에게 돌아오는 것이 그들에 대한 찬사가 아닌 점이 중요한 이유이다.  왕국의 평범한 사람들은 전시가 아닌 평시에 그들을 밥이나 축내는 식충이라며 천대한다. 그렇다면 어느 누가 고양이목에 방울을 메다 는 위험을 감수 할 수 있을까?
 

절망적인 상황에서 더욱 가관인 점은 바로 불안한 상황을 이용하는 귀족들이다. 벽속에 갇힌 인류의 경제 세계는 더 이상 확장할 수 없는 상태이다. 그에 따라 생긴 대량의 실업자를 감당할 수 없는 왕국은 벽속 세계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탈환작전이라는 이름으로 대량 학살 작전을 펼친다. 사회가 떠맡지 못한 잉여들을 거인의 입속으로 아무런 준비 없이 내모는 것이다.
 


바로 앞서 말한 ‘진격의 거인’속 상황 들이 현재 불안함을 끌어안으며 살고 있는 한국과 일본의 청년들에게 열광적인 공감을 얻은 게 아닐까? 현재 한국은 고용 없는 성장과 1920년 세계 대공황 이후 다시 나타난 세계적 경기 침체 속에서 위기를 겪고 있다. 현재 한국 청년실업률은 9.8%로 전체실업률(3.40%)의 2.9배나 되며 불안정 고용인 비정규직 비율이 35%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일본도 마찬가지로 1980년대 버블경제 이후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며 늙어 버린 일본 경제 속 가장 취약한 계층인 청년세대들은 편의점 알바와 같은 일들을 전전하며 살고 있다.  그동안 세계의 유례없는 경제 성장으로 베이비부머세대는 더 나아진 내일이 펼쳐질 것이라는 기대감속에 살아왔다. 하지만 청년세대는 내일에 희망이 보일까라는 기대감을 점차 낮추는 기대감소의 시대를 살고 있다. 수백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정규직이라는 안전한 직장에 들어왔음에도 내일을 걱정하는 우리들에게 미래는 저 높은 상위 계층이 아니라 나도 비정규직이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시대 말이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정글과 같은 한국 사회에서 힘없는 청춘들은 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을 쌓았으나 거인들과 같은 예측할 수 없으며 내가 제어할 수 없는 압도적인 불안과 위협에 발버둥 치고 있다.
 

‘진격의 거인’속 인물들이 생존하기위해 입체기동훈련을 밤낮없이 훈련해 해왔으나 속절없이 거인에게 먹히듯이 청춘세대들은 치열한 스펙경쟁 속에서 겨우 얻어낸 것은 88만원세대라는 낙인이다.  자신의 부모세대 보다 학력 및 모든 능력이 뛰어나나 우리의 소원은 정규직이라는 소리만 무성한 고용불안정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불안과 공포를 내면화한 청년세대는 마치 거인이 상징하는 거대한 불안 속에 짓눌린 진격의 거인 속 인류들의 모습과 같아 보이지 않은가? 바로 진격의 거인은 청춘들의 무의식속 불안을 건드렸고 바로  공감 가는 이야기의 전개로 인해 우리는 진격의 거인에 열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