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여름 불청객’ 장마. 모두들 비가 그치고 장마가 물러나기를 바라는 이때, 당분간은 장마가 지속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레인부츠 족(族)’들이다. 그들은 장맛비 내리는 우중충한 거리 속에서 형형색색의 레인부츠들로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끈다. 비 오는 날이면 언제 어디서든 ‘레인부츠 족’들이 심심치 않게 발견되는 지금은, 바야흐로 레인부츠 전성시대다.

 


인부츠란 ‘비가 올 때 외출용이나 방수를 위해 신는 고무나 비닐로 만들어진 발의 복사뼈보다도 깊은 신’을 의미한다. 사전적 의미만 따지고 보면, 과거 농촌 어르신들이 즐겨 신으셨던 ‘장화’와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최근의 레인부츠 열풍을 살펴보면, 지금의 레인부츠에는 그 옛날의 장화와 분명 구별되는 무언가가 있다.

최근 판매되고 있는 패션 레인부츠들을 살펴보면, 이게 과연 우리가 알고 있는 장화가 맞는지 의아할 정도이다. 형광색의 레인부츠부터 꽃무늬, 땡땡이무늬, 호피무늬까지. 없는 무늬가 없다. 무늬 뿐만이 아니다. 발목 높이까지만 올라오는 것, 지퍼가 달린 것, 끈이 달린 것 등. 디자인 또한 천차만별이다. 레인부츠를 구매하는 사람들은 단순히 비를 막아주기만 하는 장화를 사는 것이 아니다. 스카프를 사고 목걸이를 사듯, 멋을 내기 위한 하나의 패션아이템을 소비하는 것이다.

레인부츠의 가격대를 살펴보면, ‘레인부츠 족’들이 단순히 방수만을 위해 레인부츠를 신는 것이 아님을 더욱 분명히 알 수 있다. 단지 비를 막기 위해서라면, 시장에서 만 원짜리 장화를 사 신으면 될 일이다. 그러나 가장 유명한 레인부츠 브랜드 ‘H'사의 ’오리지널 톨 레인부츠‘는 한 켤레 가격이 19만 원에 육박한다. 보급형 레인부츠 브랜드인 ’R‘사의 레인부츠 또한 9만 원 선이다. 레인부츠 족들은 방수라는 기능 외에도 패션아이템으로서 디자인과 브랜드를 구매하는 것이다.

레인부츠 애호가 채주연(23세, 가명)씨 또한 패션아이템으로서 레인부츠를 구매했다. “패션이 최우선이고 방수는 그다음이죠. 평범하고 칙칙한 옷을 입더라도 밝은색의 레인부츠 하나만 신어주면 바로 발랄해 보이거든요. 종아리 알을 가려주기도 하고요. 예쁘고 활동성까지 갖췄으니 열광할 수밖에 없죠.”

또한, 채 씨는 레인부츠는 한 번 사면 두고두고 신을 수 있기 때문에,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싼 것도 아니라는 태도를 보였다. 실제로 채 씨는 작년 여름에 17만 원을 주고 구매한 ‘H'사의 레인부츠를 아직 신고 있었다. 꼭 여름 장마철이 아니더라도 비 오는 봄가을 날에 신을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겨울에는 웰리삭스와 함께 부츠처럼 코디할 수도 있었다고 한다. 또한 웰리삭스만 교체해줘도, 레인부츠 하나만으로도 겨울 부츠 여러 개를 가지고 있는 것 같은 효과를 낼 수 있었다고 한다.

웰리삭스


그러나 워낙 비싼 가격 탓에, 레인부츠 구매 결정을 내리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비싼 가격만큼 실용적이지는 않다는 이유에서다. 대학생 김혜지(21세)씨는 오래 고민하다, 최근 레인부츠를 구매하려는 마음을 접었다. “하나쯤 갖고 싶긴 한데, 막상 사려니 어울릴 만한 옷이 없더라고요. 또 신고 나왔는데 비가 일찍 그쳐서 쨍쨍하다거나, 신발 벗는 음식점에 가면 민망할 것 같기도 하고요. 그리고 발냄새도 많이 날 것 같아요.”

레인부츠와 일반 장화의 차이점을 모르겠다는 사람들도 많다. 서울 영등포구에 거주하는 김기복(71세)씨는 “요즘 사람들 참 별나요. 비도 안 오는데 장화를 신고 말이야. 꼭 옛날에 모내기하던 거 생각난다니까요”라며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대학생 윤희준(24세)씨는 레인부츠를 신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오히려 폐를 끼친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본인은 장화를 신어서 물이 튀지 않으니까 터벅터벅 걷는데, 그것 때문에 주변사람들한테는 물이 많이 튀어요. 장화를 신는 건 개인 자유지만, 좀 조심해줬으면 좋겠어요.”

윤 씨의 당부 외에도, 레인부츠를 신을 때 조심해야 할 점이 있다. 바로 발 건강이다. 레인부츠는 방수를 위해 고무나 우레탄 재질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통풍이 전혀 되지 않는다. 또한 신고 벗기가 불편하기 때문에, 한 번 착용을 하면 장시간 벗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렇게 발에 습기가 차는 상황이 반복되다보면, 곰팡이가 번식할 확률이 높아져 습진이나 무좀 등 발 건강을 악화시키기 쉽다. 때문에 수시로 통풍을 시키고, 발의 땀을 닦아 주는 것이 중요하다.

패션 레인부츠가 한국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2000년대 후반에는, 유행이 곧 그치고 말 것이란 예상이 많았다. 그러나 레인부츠는 건강상의 문제와 관리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름철 필수 패션아이템으로서 각광받고 있다. 서울 영등포구의 ‘A' 신발 멀티샵 직원으로 일하고 있는 한종선(24세)씨는 “예전에는 레인부츠를 사 가는 손님이 일주일에 두 세 명 될까 했는데, 요즘에는 하루에도 몇 분씩 레인부츠를 사가세요”라며, 레인부츠 열풍이 당분간은 지속될 것이라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