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렐라【명사】12시가 되기 전 집에 가야만 하는 신데렐라처럼, 무언가를 하다가도 정해진 시간만 되면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야하는 20대를 빗댄 신조어.
왕자는 신데렐라가 흘린 유리구두 한 짝 덕분에 그녀와 재회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는 구두의 주인이 신데렐라였다는 것을 어떻게 안 걸까? 상상해보건대, 왕자는 신데렐라와 춤을 추면서 투명한 유리구두를 통해 그녀의 상처투성이 발을 보았을 것이다. 새어머니와 새언니들의 구박을 견디며 쉴 새 없이 집 안팎을 돌아다닌 탓에 크게 붓고 부르튼 그녀의 발을 왕자는 분명 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시즌1을 마무리하고 새로이 시작하는 알바렐라 2013에서는 일터 안팎에서 험난한 하루하루를 견디는 이 시대의 알바렐라들에게 유리구두 대신 체크리스트를 건넨다. 체크리스트의 단면을 통해 그들의 상처투성이 발을 사회를 향해 적나라하게 드러내고자 한다. 알바렐라들이 행복한 결말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도록 고함20과 독자들이 그 길을 터줄 수 있지는 않을까, 조심스레 소망해본다.

 

고함20이 야심차게 준비한 재밌고 우울하고 유쾌하나 서글픈 20대의 알바 수난기, 다시 쓰는 그 열다섯 번째 이야기. 이 나라 대한민국에는 분명한 서열이 존재한다. 사장은 갑이요, 직원은 을이다. 그럼 직원조차 되지 못하는 알바생은? ? ? ? 애석하게도, 일개 알바생에게 허락된 위치는 고작 서열의 맨 끝자락인 정도밖에 되지 않는 듯 같다. 정말 계같다. 계같은 알바신세. 아픈 이들의 고통을 어루만지는 한의원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환자는 왕이요, 의사는 갑이요, 간호사는 을인 약육강식의 한의원에서 조차 되지 못해 서러운 손렐라(22)씨의 하소연을 들어보자.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한의원에서 진료보조 알바를 하고 있는 휴학생 손렐라입니다.

Q.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시는 건가요?
우선 환자분이 오시면 안내해드리고요, 원장님이 진료하실 때 옆에서 도와드려요. 한의원 청소도 하고요. 찜질팩 준비해서 환자분들 찜질해 드리는 일도 하고. 물리치료도 해요.

Q.
물리치료를 직접 하신다구요? 자격증이 필요한 것 아닌가요?
. 직접 해요. 정형외과나 한의원 가면 해주는 전기치료기 있잖아요? 그거요. 전원을 켜고, 환자 몸에 단자를 부착하는 간단한 일만 해요. 아마 자격증이 필요한 물리치료랑은 다른 거일걸요? 저희끼리 편의상 물리치료라고 부를 뿐이에요. 근데 저도 정확히는 모르겠네요. 자격증 없어도 되는 거 맞겠죠?

Q.
그 외에 의료행위를 하진 않죠? 뜸을 놓는다거나 부항을 뜬다거나요
. 하지 않아요. 사실 처음엔 하라고 하셨어요. 일 시작하기 전에 원장님이랑 면담을 했는데, 부항 뜨는 일 정도는 할 수 있지 않겠냐고 하시더라고요. 저도 많이 놀랐죠. 부항 맞아본 적도 없는 저보고 부항을 놓으라고 하니까요. 그런데 다시 그건 좀 아닌 것 같다고 하지 말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냥 보조만 하라고 하면서요.

Q.
이 일은 얼마나 하신 거예요? 급여조건은 어떤가요?
2개월 됐어요. 시급은 5,500원이고 수요일, 토요일에만 일을 해요. 수요일엔 8시간, 토요일엔 7시간 일해서 한 달에 60시간 정도 일해요.

Q.
한의원 규모는 어떤가요? 근무하는 분은 총 몇 명이에요?
규모가 꽤 커요. 환자도 많고요. 근무하는 사람은 총 여섯 명이요. 원장님 한 분, 간호사 세 분, 그리고 저요. 저만 알바생이죠.

Q.
인원이 그리 많지는 않네요. 정직원 분들은 어떤 일을 하세요? 알바랑 하는 업무가 많이 다른가요?
그분들은 카운터도 보세요. 저는 카운터는 안 보고요. 카운터 일만 제외하면 나머지는 저랑 크게 다르지는 않아요. 진료 보는 쪽은 거의 비슷하게 하죠. 제가 그분들 보조라고 보시면 돼요. 제가 출근하는 토요일에는 세 분이 번갈아가면서 쉬시기도 하고요.

Q.
이 일은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거에요? 전공인 사회학과 아무런 관련도 없잖아요.
용돈이 끊겨서 일을 찾아볼 수밖에 없었어요. 알바 사이트를 찾아보니까 한의원 보조 알바를 구한다고 하더라고요. 별도의 자격조건도 없길래 사무보조인 줄 알고 지원했어요. 제가 물리치료를 하게 될 줄은 몰랐죠. 처음엔 과외 말고 다른 경험을 해 보고 싶어서 시작했어요. 그런데 시작해보니 여러 어려움이 많네요.

Q.
구체적으로 어떤 어려움이요?
아무래도 환자들을 상대하는 일이다보니 정신적으로 힘들죠. 모든 한의원이 그렇듯, 나이 드신 분들이 많이 오세요. 일하기 전에는 어르신들이 이렇게까지 한의원을 애용하시는지 몰랐어요. 거의 매일매일 오세요. 한의원에 오는 게 그분들의 하루 일과 중 하나인 것 같아요. 그 중에는 적적한데 어디 가실 곳이 없어서 오는 분들도 많아요. 그럼 말동무도 되어드리고 하죠. 그런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니에요. 침대 환자 아홉 분에 대기 환자분들까지, 동시에 다뤄야 할 환자가 많다 보니까, 모든 분을 일일이 상대하다보면 다음 환자 보는 게 늦어지고 그래요. 그럼 꼭 화내는 분들이 생겨요

Q.
어떤 식으로 화를 내세요?
저희 병원에 침대가 9개인데, 환자가 많아서 물리치료를 받으려면 대기하셔야 해요. 그럼 순서를 둘러싸고 내가 먼저 왔는데 왜 저 사람을 먼저 부르냐며 버럭 화내시죠. 순서에 문제가 없는데도 너무 오래 기다렸다면서 다짜고짜 화내는 분도 계시고요. 이유 없이 그냥 자기 맘에 안 들면 불친절하고 화내는 분들도 많아요.

Q.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상당하겠네요.
그렇죠. 많이 힘들어요. 무조건 친절해야 하니까요. 감정노동을 강요받아요. 특히 원장님한테요.

Q. 원장님이요? 의외네요. 한의사하면 인자한 이미지가 떠오르는데요.
그렇죠? 저도 그랬어요. 그런데 전혀 안 그래요. 저희 원장님은 이윤을 추구하려는 성격이 되게 강해요. 실제로 근로계약서도 안 쓰기도 했고요. 그냥 구두계약이었죠. 원장님은 항상 저를 볼 때마다 그러세요. 목소리 한 톤 더 높여라. 더 진심인 것처럼 대해라. 무조건 상냥해져라. 감정노동을 강요하시죠. 물론 그러는 게 이해는 가는데, 막상 하려면 쉬운 일이 아니에요. 소위 말하는 진상환자가 아니더라도, 환자분들을 상대하는 일 자체가 굉장히 힘들어요. 항상 그분들의 기분에 맞춰드려야 하잖아요. 항상 고분고분 , .’ 

Q.
간호사하면 감정노동으로 고통 받는 대표적인 직업이잖아요? 옆에서 보는 그분들은 어떤가요? 감정노동에 많이 시달리나요?
심각하죠. 환자분들이 병원에 치료를 받으러 온다는 개념보다는 서비스를 받으러 온다는 개념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간호사나 저 같은 알바생은 시중드는 사람처럼 되는 거죠. 같이 일하는 간호사님께 들었는데, 콜택시 불러달라고 시키는 환자도 있대요

그런 상황에 자꾸 노출되다 보니까
, 사람이 이중적으로 변하는 것 같기도 해요. 자신의 진짜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니까요. 남자친구와 헤어질 위기에 처해도 출근만 하면 항상 웃는 표정을 지어야 하고, 잘못한 게 없어도 죄송하단 말을 입에 달고 살죠. 사람이 살다보면 감정적인 휴식이 반드시 필요한 때가 있는데, 그런 때에도 본인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죠. 하루 종일 시달리고 집에 딱 들어가면 웃고 싶지도 않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얘기를 들을 때면 안타깝죠. 저도 별반 다를 건 없고요.

의료계에서 간호사는 철저히 을이에요
. 환자뿐만 아니라 의사에게도. 어떤 언니는 전 한의원에서 의사와 성격이 안 맞는다고 잘렸대요. 요양사 자격증 같은 것도 있는 능력 있는 언니였는데도요. 원장이랑 성격이 안 맞는다는 것. 그 외에 다른 이유는 없어요. 원장이 갑이에요. 간호사는 을이고요. 저는 간호사님께도 맞춰야 하니 을도 아니고 병 쯤 되겠네요. 이건 뭐 병도 아니고.

Q.
간호사들에게 맞춘다는 건 무슨 뜻인가요?
맨 처음에 들어왔을 때부터 그분들께 모든 걸 맞춰드렸어요. 기분도 맞춰드리고, 시키는 대로 하고요. 제가 나이가 어리기도 하고 다들 저보다 먼저 일하셨던 분들이니까, 괜히 처음부터 안 좋게 찍히고 싶지 않아서요. 물론 조언도 많이 해주시고 도움도 많이 되지만, 언제까지나 마냥 듣고만 있어야 하니까 답답하기도 하고 힘들죠. 막내노릇 하는 게요. 우리 병원뿐만 아니라 어느 조직에나 존재하잖아요, 막내의 설움. 그리고 다들 직원인데 저만 알바이기도 하고요

Q.
혹시 이 일 전에는 어떤 알바들을 해 보셨어요?
콜센터에서 알바를 했었어요. 그때도 항상 목소리 한 톤 높이라는 소리를 들었죠. 저는 이게 정말 불만이에요. 왜 항상 높은 목소리여야만 하죠? 사람마다 목소리 톤이라는 게 있고, 개성이 있는 건데 말이에요. 그런 규격화된 조건들에 맞춰야만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서글플 따름이에요. 지금은 목소리 톤이지만, 진짜 취업할 때에는 얼굴도 보고 몸매도 보겠죠?

Q.
병원은 환자를 치료해주는 곳이잖아요. 그런데 역설적으로 치료의 공간에서 직업병에 시달리거나 하지는 않나요?
그렇죠. 아마 간호사들은 다 하지정맥류를 앓고 있을 거예요. 우선 저희 한의원에서 일하는 분들만 봐도 그렇고요. 제가 두 달 동안 일을 해 보니까, 다리가 너무 아파요. 간호화 신고 일을 하는데, 하루 일하면 발등이 부어올라요. 환자가 많으면 앉을 시간이 거의 없어요. 이게 하루 쉰다고 낫는 게 아니에요. 신체적으로도 힘들고, 정신적으로도 힘들고. 항상 그만둘까 생각해왔었는데, 정말 그만둬야겠어요

Q.
그럼 그만두는 김에, 마지막으로 원장님께 한 마디 해 주세요.
원장님. 가끔이라도 절 보면서 수고했다고 말해주셨다면 참 좋았을 텐데.... 아들 잘 키우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