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렐라【명사】12시가 되기 전 집에 가야만 하는 신데렐라처럼, 무언가를 하다가도 정해진 시간만 되면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야하는 20대를 빗댄 신조어.
왕자는 신데렐라가 흘린 유리구두 한 짝 덕분에 그녀와 재회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는 구두의 주인이 신데렐라였다는 것을 어떻게 안 걸까? 상상해보건대, 왕자는 신데렐라와 춤을 추면서 투명한 유리구두를 통해 그녀의 상처투성이 발을 보았을 것이다. 새어머니와 새언니들의 구박을 견디며 쉴 새 없이 집 안팎을 돌아다닌 탓에 크게 붓고 부르튼 그녀의 발을 왕자는 분명 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시즌1을 마무리하고 새로이 시작하는 알바렐라 2013에서는 일터 안팎에서 험난한 하루하루를 견디는 이 시대의 알바렐라들에게 유리구두 대신 체크리스트를 건넨다. 체크리스트의 단면을 통해 그들의 상처투성이 발을 사회를 향해 적나라하게 드러내고자 한다. 알바렐라들이 행복한 결말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도록 고함20과 독자들이 그 길을 터줄 수 있지는 않을까, 조심스레 소망해본다.


고함20이 야심차게 준비한 재밌고 우울하고 유쾌하나 서글픈 20대 알바 수난기, 다시 쓰는 그 열일곱 번째 이야기. 아침도 점심도 아닌 한적한 오전 시간. 가벼운 옷차림에 한 손에는 영자 신문이, 다른 손에는 아메리카노 한 잔이 위치해 있다. 물론 약간의 빵과 샐러드도 빠질 수 없다. 우리가 브런치(brunch)에 대해 갖고 있는 환상이다. 그러나 여기, ‘커피 한 잔의 여유는 개나줘’라고 말 하는 사람이 있다. 여유를 찾는 사람들 때문에 자신의 여유를 뺏겨야 했던, 브런치 카페 알바생 박렐라(24)씨의 하소연을 들어보자.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24살 박렐라입니다. 여의도에 있는 한 브런치 카페에서 2011년 2월부터 4개월 동안 서빙 알바를 했어요.


Q. 알바를 어떻게 알게 되었나요?

인터넷 알바 사이트를 통해서 알게 됐어요. 집에서 가깝기도 하고, 시급도 괜찮아서 지원했어요. 제가 2011년 6월에 영국으로 어학연수를 갔는데, 어학연수 비용에 보탬이 되려고 알바 자리를 찾았던 거였어요. 2011년 1학기를 휴학을 하고,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8시간동안 평일 알바를 했었죠.


Q. 시급은 얼마였어요? 급여는 제 때 제대로 나왔나요?

시급은 5000원이었어요. 2011년에는 카페 시급치고 꽤나 높은 거였어요. 급여는 제 때 나오긴 했는데, 제대로 나왔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시급이 5000원이면 월급이 항상 만 원 아니면 오천 원 단위로 끊겨야 하잖아요? 그런데 어떨 때는 오십 원 단위로 끝나고, 어떨 때는 오백 원 단위로 끝나고 그랬어요. 그때는 그냥 세금을 뗐나보다 하고 넘겼는데, 아직도 왜 그런건지 모르겠네요. 그런데 일 한 것보다 심각하게 적거나 하지는 않아서, 그냥 넘어갔어요.

Q.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셨나요?

서빙 알바니까 주문받고, 음식도 나르고, 테이블도 정리했죠. 그 외에 카운터도 보고, 청소도 하고, 설거지도 했어요. 요리하는 일 빼고는 모든 일을 다 했다고 보면 돼요.
 

Q. 설거지도 하셨어요? 보통 주방 알바가 하지 않나요?

네, 했어요. 식기세척기를 썼기 때문에 꼼꼼히 설거지했던 건 아니고, 식기세척기에 넣기 전에 물로 한 번씩 닦는 일을 했어요. 보통은 주방 사람들이 하는데, 한가한 시간에 주방보다 홀이 덜 바쁘면 제가 했어요. 매니저님이 시키셨거든요.

Q. 매니저는 어떤 일을 하나요? 직원은 총 몇 명이었어요?

매니저는 저랑 같이 서빙을 담당했어요. 주방 직원이 네 명이었고, 저랑 매니저 둘이서 서빙을 했죠. 서빙 알바는 저 혼자였어요. 그리고 가끔 사장님이 나오시긴 했는데, 정말 바쁠 때에만 오시고 대부분은 안 오셨고요.
 

Q. 둘이서 서빙을 다 하기 힘들지 않았나요? 가게 규모가 작았나요?

힘들었죠. 아무래도 가게가 여의도에 있다 보니, 점심시간에는 직장인들로 정말 붐벼요. 그 때는 둘이서만 서빙을 보는 게 거의 불가능해서 주방 알바가 서빙도 도와주고 그랬어요. 아무리 바빠도 알바생을 더 뽑진 않더라고요. 점심시간에만 반짝 바쁘고 다른 시간엔 한가해서 그랬던 것 같아요.

가게 규모가 작지는 않았어요. 테이블이 20개 정도 됐으니까요. 그렇다고 엄청 큰 것도 아니었어요. 동선 자체는 별로 길지 않았거든요. 가게 규모가 커서라기보다는 손님이 많아서 힘들었죠.

Q. 손님이 많을 때는 얼마나 많았어요?

말도 마세요. 끔찍할 정도로 많았어요. 직장가라 점심시간에는 안 그래도 사람이 많은데, 소셜커머스 쿠폰 고객까지 겹쳤거든요. 소셜커머스 쿠폰이라는 게 한번 팔리면 그때만 반짝 손님이 많고 끝나는 게 아니라, 쿠폰 사용가능 기간 내내 지속적으로 손님이 많거든요. 어느 정도냐면, 식당이 아니라 브런치 카페기 때문에 와플이나 오믈렛 같은 간단한 요리만 만들거든요? 그런데도 주문이 하도 많이 들어오니까, 와플 하나 나오는 데도 30분이 걸리고 그랬어요.
 

Q. 그럼 손님들 불만도 많았겠네요?

그렇죠. 손님 대부분이 직장인이라 딱히 진상손님이 있거나 하지는 않았는데, 점심시간 한 시간 동안 식사를 끝내셔야 하니까 음식이 조금이라도 늦으면 뭐라고들 하셨죠. 그분들로서는 음식이 조금만 늦어져도 타격이 큰데, 이건 뭐 점심시간 반이 지나도록 음식이 나오질 않으니 화가 나는 거죠.

Q. 사장님이나 매니저가 쿠폰 고객을 아니꼽게 보지는 않았나요? 일반 고객과의 차별 대우를 강요한다든지요.

그러진 않았어요. 쿠폰 이용 손님이 일반 손님보다 같은 음식을 더 저렴하게 드시는 건 맞지만, 그래도 사장님에게 이익이 되는 선에서 할인을 하는 거거든요. 사장님 입장에서는 일단 많이 팔리는 게 더 나은 거죠. 사실 저 같은 알바생 입장에서는 소셜커머스 쿠폰을 팔 이유가 없어요. 일은 느는데 그렇다고 알바비가 더 많이 나오지는 않으니까요. 순 사장님을 위한 거죠. 본인에게 이익이 남아서 본인이 하자고 한 거니까, 사장님이 쿠폰 고객을 아니꼽게 보지는 않죠. 오히려 일반 손님과 쿠폰 손님을 똑같이 대하라고 강조하셨어요.

Q. 일반 카페와 브런치 카페의 차이점이 있나요?

많이 있죠. 일반 카페는 커피가 주 수입원이고, 빵이나 와플 같은 건 부수적이잖아요? 브런치 카페는 그 반대에요. 오믈렛이나 팬케익 같은 밥이랑 간식의 중간정도 되는 음식이 메인이고, 커피는 부수적이죠. 그리고 일반 카페는 알바생들이 커피 만들고, 서빙하는 일을 같이 하잖아요? 브런치 카페는 음식이 메인이기 때문에 주방에서 요리하는 알바가 따로 있고, 저 같은 서빙 알바는 음식은 물론 커피도 만들지 않아요. 카페 알바보다는 음식점 서빙 알바에 더 가까워요.
 

Q. 개인 가게에서 일 하셨잖아요. 프랜차이즈 가게와의 차이점이 있나요?

프랜차이즈 가게에서는 알바 시작 전에 근로계약서를 꼭 써야 한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제가 일 한 곳에서는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았어요. 구두로만 계약을 했죠. 그 점이 가장 큰 차이인 것 같아요. 4대 보험 같은 것도 없었고요.

Q. 손님들과 관련된 에피소드는 없었나요? 특이한 손님이라거나.

항상 같은 시간에 오셔서 아메리카노를 드시는 할아버지 손님이 있었어요. 그런데 주문할 때는 항상 아메리카노가 아니라 냉커피를 달라고 하세요. ‘아가씨, 냉커피 한 잔 주세요’ 하면서요. 제가 ‘커피 종류는 아메리카노로 드릴까요?’ 이러면 그렇다고 하시죠. 그런데 나중에 매니저님이 얘기를 해 보니까, 그 분이 여의도에 있는 되게 큰 ‘H' 프랜차이즈 카페 사장님이라고 하더라고요. 카페 사장님이면 아메리카노라고 말씀하셔도 될 텐데, 항상 냉커피를 고집하시니 의아했어요. 자기 카페 놔두고 왜 우리 카페에 오는지도 이상했고요.

Q. 사장님이나 매니저와의 관계는 어땠어요?

사장님은 가게에 별로 나오질 않으셔서, 마주칠 일 자체가 거의 없었어요. 문제는 매니저님이었죠. 절 너무 괴롭히셨어요. 인간적으로 못되게 군 게 아니라, 절 너무 혹사시켰어요. 제 노동력을 있는 대로 다 쥐어짜내려고 하셨어요. 특히, 청소를 정말 미친 듯이 시켰어요.
 

Q. 어떤 청소를 시켰는데요?

점심시간이 지나면 가게가 한가해져요. 그러면 그런 때에는 저도 좀 쉬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한시라도 저를 쉬게 하지 않으세요. 손님이 없으면 락스로 반짝반짝하게 바닥을 닦으라고 하세요. 그냥 걸레로 닦아도 충분히 깨끗할 텐데 굳이 락스로 닦으래요. 락스는 미끌미끌해서 한 번 쓰면 물걸레로 여러 번을 문질러야 하잖아요. 걸레를 몇 번이나 다시 빨아 와서 락스기가 없어질 때 까지 계속 닦았어요.

뭐 바닥이야 그래도 닦고 나면 티라도 나니까 그렇다고 쳐요. 지금도 이해가 안 되는 건, 테이블 아래 기둥을 닦으라고 시켜요. 그러면 손 걸레들고 테이블 밑으로 쭈그리고 들어가서 테이블 기둥을 닦아야 해요. 테이블 기둥을 누가 신경이나 쓴다고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닦아봤자 어차피 다시 손님들 발자국으로 더럽혀질 텐데 말이에요.
 

Q. 청소 외에 다른 건 괜찮았나요?

아뇨, 그럴 리가요. 저희 가게랑 같은 건물에 수제 버거집이 있었는데, 그 버거집에 라이벌 의식을 느끼셨나 봐요. 저희 가게에서 샌드위치도 파니까요. 저희 가게가 브런치 카페라, 맑은 날에는 장사가 잘 되고 비 오는 날에는 손님이 별로 없는 데, 비 오는 날 처럼 평소보다 손님이 없는 날에는 저를 그 가게로 염탐을 보내요. 다들 거기로 간 거 아닌가 하고. 그럼 전 유니폼 입고 앞치마 두른 상태로 그 가게 앞을 기웃거려야 해요. 완전 창피했죠.

사실 따지고 보면 매니저님이 가게 주인은 아니잖아요? 매상이 오른다고 해서 직접적으로 자기 수익이 느는 건 아니란 말이죠. 그런데도 안 보이는 데 까지 신경을 쓰고 염탐도 보내고 하는 건, 어떻게 보면 직업의식이 정말 투철한 거예요. 어쩌면 칭찬받아야 할 일인지도 몰라요. 그런데 문제는 그걸 자기가 직접 하는 게 아니라 절 시킨다는 거예요. 굳이 안 해도 될 일인데도 말이에요. 그게 알바생인 저로서는 그렇게 미울 수가 없더라고요.

Q. 마지막으로 매니저님께 한 마디 해주세요.

매니저님, 몇 달 전에 밥 먹으러 가게 가 보니까 안 계시더라고요. 어디서 뭘 하고 계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다시는 마주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 없는 곳에서 테이블 기둥 열심히 닦으면서 잘 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