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렐라【명사】12시가 되기 전 집에 가야만 하는 신데렐라처럼, 무언가를 하다가도 정해진 시간만 되면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야하는 20대를 빗댄 신조어.

왕자는 신데렐라가 흘린 유리구두 한 짝 덕분에 그녀와 재회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는 구두의 주인이 신데렐라였다는 것을 어떻게 안 걸까? 상상해보건대, 왕자는 신데렐라와 춤을 추면서 투명한 유리구두를 통해 그녀의 상처투성이 발을 보았을 것이다. 새어머니와 새언니들의 구박을 견디며 쉴 새 없이 집 안팎을 돌아다닌 탓에 크게 붓고 부르튼 그녀의 발을 왕자는 분명 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시즌1을 마무리하고 새로이 시작하는 알바렐라 2013에서는 일터 안팎에서 험난한 하루하루를 견디는 이 시대의 알바렐라들에게 유리구두 대신 체크리스트를 건넨다. 체크리스트의 단면을 통해 그들의 상처투성이 발을 사회를 향해 적나라하게 드러내고자 한다. 알바렐라들이 행복한 결말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도록 고함20과 독자들이 그 길을 터줄 수 있지는 않을까, 조심스레 소망해본다.


고함20이 야심차게 준비한 재밌고 우울하고 유쾌하나 서글픈 20대 알바 수난기, 다시 쓰는 그 열아홉번째 이야기. 여름. 프로야구 팬들에게는 한창 경기 열이 무르익는 계절이다. 진정한 야구팬이라면 비싼 표를 주고라도 지지하는 팀의 홈구장에 직접 가서 열띤 응원을 하며 보내는 여름날 저녁을 몇 번이고 거나하게 상상해보지 않았을까. 총 좌석수 25,463석에 총 수용 인원 26,000명에 육박하는 잠실 프로야구 홈경기장은 부산 사직구장과 인천 문학경기장 야구장에 이어 구단별 홈경기장 중 세 번째의 규모를 자랑한다. 바로 이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해본 한 야구팬 소녀가 있었으니, 그녀의 여름날은 어떠했는지 그 후덥지근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본 사진은 인터뷰와는 관계없습니다.


 

Q.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저는 서렐라(22)이구요. 2012년 7-8월 두 달 간 잠실야구장 진행요원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친구 둘이 한 달 전부터 이미 아르바이트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저도 같이 시작했어요. 스포츠를 워낙 좋아하고 야구를 특히 좋아해서 하게 되었죠. 자기소개서나 이력서 필요 없이, 말바 총괄하시는 대리님 번호로 이름과 나이만 보내면 바로 할 수 있어요. 별도의 교육도 없어요. 그냥 가서 주변 사람들 하는 거 보고 배우는 거예요.
 

Q. 진행요원은 어떤 일을 하나요?

구역마다 다른데, 티켓 확인하고 자리 안내해주는 일을 보통 해요. 제가 해보진 않았지만 VIP석에서 음료수나 먹을 것을 드리는 일도 해요. 또 경기가 끝나면 팬들이 선수들을 구경하러 중앙 출입문으로 몰려와요. 혼란이 빚어지면 안 되니까 저희가 미리 가서 선수들 지나갈 줄을 만들고 서 있어요. 진짜로 줄을 붙들고 띄엄띄엄 서 있는 거예요.

경기장의 좌석은 크게 4가지가 있어요. 테이블석, 블루, 레드, 옐로우 이렇게요. 저희는 경기장 안에 못 들어가고, 바깥의 문 쪽에서 내내 서 있으면서 안내하는 일을 했어요. 야구를 좋아하시면 아시겠지만, 테이블석이 제일 비싸요. 경기장의 중앙 쪽이거든요. 거기에는 오랫동안 일한 사람들이 가서 일했어요. / 블루석이 그 다음으로 좋은 자리인데, 티켓 확인하는 사람은 밖에 서있어야 하긴 하는데 거기엔 자리 안내만 해주는 사람이 따로 있어요. 그 사람은 할 일이 없어서 좋은 거죠. 그 다음이 레드석(1,2층)이고, 맨 위쪽(3층)이 좌석 수가 제일 많은 옐로우인데, 원칙상 경기 중에 옐로우석 좌석 배정받은 사람이 레드 쪽으로 못 내려와요. 저는 주로 레드석 쪽에서 안내를 했어요. 경기 거의 못 봤죠. 8-9회 정도는 이미 승부가 대충 나 있는 상태인데 그 때라도 잠깐 문 안쪽으로 들어가서 볼 수는 있는데, 그러다가 순찰하는 팀장님이나 대리님한테 걸리면 끝장이에요. 한 명이 잘못해도 다 같이 혼났거든요. 다른 사람 때문에 제가 집에 제 시간에 못 가니까 억울했어요.
 

Q. 경기 끝나고 나가는 선수들을 보호할 때엔 선수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지 않나요?

저희는 기본적으로 정보 제공하는 진행요원이니까 가까이 있지는 않아요. 남자들이 안전요원 일을 하는데, 저희는 그냥 스태프 옷 입고 하는 반면에 그 사람들은 보디가드처럼 정장 빼입고 경호하거든요. 선수들을 한 명씩 데리고 가면서 보호하는 건 안전요원들이에요. 물론 대부분 제 나이 또래 애들이고 별도의 자격도 필요 없지만요. 여자들은 진행요원만 할 수 있어요. 아무래도 남자들이 옷도 갖춰입고 힘도 세니까 관객들은 자기가 제지당할 것 같아서 남자들한테는 대우를 좀 잘 해주는 거 같아요. 저희는 강압적일 수도 없고 강압적이어서도 안 되는, 친절해야 하는 서비스업이었으니까 얘기가 달랐죠.
 

Q. 혹시 잠실야구장 홈을 쓰는 팀의 팬이세요?

네. 잠실야구장은 두산 베어스와 LG 트윈스가 함께 홈을 쓰는데, 저는 LG 팬이에요. 물론 중앙에 선수 입장 문이랑 알바들이 물품 가지러갈 때 이용하는 문이 같아서 지나다니다 가끔씩 마주치기도 하고 운 좋으면 달려가서 사인받을 수도 있긴 한데, 일단 홈경기 선수들은 저희랑 다른 시간에 움직여요. 경기 끝나고 바로 퇴근하는 선수들은 어웨이(away) 선수들이고, LG 선수들은 샤워도 하고 1시간 정도 더 있다가 집에 가요. 저희가 퇴근할 때는 어차피 못 봐요.
 

Q, 일하며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더위가 제일 힘들었어요. 1루에는 해가 들고 3루는 햇빛을 직선으로 맞거든요. 4시부터 해를 마주하고 6시간씩 서 있다 보니까 너무 더워서 버티기가 힘들었어요. 일부 옐로우 쪽과 중앙 VIP석 쪽엔 지붕이 있어서 그나마 편했을 텐데, 제가 주로 일한 레드에는 그것도 없고요. 아예 펑크내고 일 안 하러 오는 사람이 있을 경우에는 있는 사람이 그 자리에 서서 메워야 하니까 힘들었죠. 참, 위생 때문에도 힘들었어요.
 

Q. 어떤 위생이요?

저희가 스태프 옷을 입거든요. 사람들이 그걸 입고 땀을 엄청 흘리는데, 매번 자기가 입는 옷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 전체 중 아무거나 가져다 입는 거예요. 그런데 연속해서 일하다 보니 옷들을 빨 수가 없어서, 다음날 땀에 절어있는 옷을 다시 입고 일하는 게 고역이었어요. 페브리즈 뿌리고, 아예 집에 따로 가져가서 빨아 입고 그랬어요.
 

Q. 급여 형태는 어떻게 되었나요? 일한 시간에 맞춰서 받으셨어요?

아뇨, 돈은 한 게임당 받아요. 그러니까 하루에 3만원이요. 한 달에 몇 게임 일했는지 세서 매달 15일에 한꺼번에 받았어요. 야구 경기가 오후 6시 반에 시작하는데, 저희는 4시까지 가서 옷을 받고 포지션 확인받고 4시 반부터 바로 일을 시작해요. 물론 저녁은 4시 전에 먹고 가야 하고요. 야구가 늘 똑같은 시간에 끝나는 게 아니잖아요? 보통 10시나 10시 반에 끝나는데, 하루에 6시간씩 일하는 것 같아요. 시급으로 따지면 5000원 정도? 아, 그런데 경기가 연장되면 1만 원 더 받아요. 5회 말 전에 끝나는 경우도 있는데 그건 우천취소거든요. 그래서 절반인 15000원을 받아요. 야구 경기 자체가 취소된 거라 모든 관중들의 표 자체가 환불되거든요. 일하는 날짜가 고정된 건 아니고, 어떤 날 하고 싶은지 말하면 가서 하는 거예요. 보통 일주일 치를 미리 짜두곤 해요.
 

Q. 예상 못했던 일을 하시게 되지는 않았나요?

경기장 바깥에 깃발 갈아 끼우는 일을 했어요. 야구가 화수목 한 세트, 금토일 한 세트, 이렇게 있거든요. 그러면 경기하는 팀에 맞게 목요일과 일요일에 경기장 바깥 깃발들을 전부 바꿔야 해요. 땡볕에 그 일을 하려니 힘들어서 사람들이 목요일과 일요일은 되도록 피하려는 눈치였어요.
 

Q. 대리님은 어떠셨어요?

대리님이 일을 잘 못하셔서 팀장님께 많이 혼났어요. 물론 저희는 대리님 휘하에 있기 때문에 대리님 혼나실 때 같이 서있어야 했고요. 대리님이랑 친해진 애들은 붙여달라는 대로 붙여두시니까 일 안하고 놀다 걸리면 대리님이 혼나곤 했어요. 팀장님은 구단 프런트랑 연계해서 일하시는 총괄자고, 대리님은 알바들만 관리하시는데, 인원 체크도 잘 못 하시고 물품도 제대로 안 챙기셔서 문제가 생긴 적이 많아요. 저희조차 대리님이 답답했을 정도에요. 두 분 다 안전요원 일을 하셔서 덩치 진짜 크고 인상이 무서운데, 팀장님이 대리님 혼내실 때는 욕설까지 난무해서 되게 무서워요. 그러니까 편한 상황에서도 저나 다른 알바들은 지저분한 옷이라던지 계속 하는 사람만 편한 곳에 배치되는 문제 등등을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안 났죠.
 

Q. 관객이나 경기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제가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해주려고 하다 보니 관객 분들이 아이스크림이나 얼음물을 사다 주시곤 했어요. 저녁을 미리 먹은 데다 서 있으니까 배가 많이 고픈데, 아쉽게도 치킨이나 먹을 거를 주시는 분은 없었어요. 또 제가 동네에서 헬스를 다니거든요. 하루는 저랑 같은 헬스를 다니는 분이 저를 알아보시고 시원한 음료 사다주셨어요. 나중에 그분을 진짜 헬스장에서 만났어요. 가끔 일 잘하면, 이닝마다 패밀리 레스토랑 음식상품권 등을 주는 이벤트를 하는데 그런 거 몇 개 챙겨서 대리님이 나눠주기도 해요. 구단주 분들이 오셨을 때 원칙에 맞게 잘 일한 사람들한테 주는 건데, 다른 사람이 받는 걸 2번 정도 봤어요. 저는 VIP 석에서 일한 적이 없어서 물론 그거랑은 상관없었지만요

또 이건 자주 있는 일이긴 한데, 경기 도중에 관중이 그라운드 안에 뛰어 들어가서 팀장님이 그 사람 저지해서 데리고 나오시다가 팔을 다치신 적도 있으세요.
 

Q. 두 달 하신 뒤 일을 그만두신 이유가 있나요?

제일 큰 이유는, 야구를 좋아하는데 야구장 알바하면서 야구를 볼 수 없다는 것. 그게 정말 속상했어요. 체력적으로도 힘들고, 옷 문제도 있었고. 또 경기가 늦게 끝나면 막차를 타고 집에 가야 해요. 저도 그렇고 같이 일한 두 친구도 잠실에서 버스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곳에 살아서 늦게 가면 바로 뻗었어요. 보통 다음날 새벽 12시 반 정도에 도착했거든요. 이틀 연속으로 일하기라도 하면 정말 피곤했죠. 일한 시간 대비해서, 그리고 육체적으로 힘든 것에 비해서 알바비가 너무 적기도 했고요. 저랑 같이 한 친구들도 같이 그만뒀는데, 한 친구는 야구를 좋아하지도 않아서 더 힘들어하더라고요.
 

Q. 야구장 알바에 대한 총평을 하신다면?

음, 비추에요. 특히 여자들은 선수들을 거의 만날 수도 없어요. 야구장의 분위기 자체를 즐기거나, 최대한 야구와 가까운 일을 해보고 싶다면 경험상 한번쯤 해볼 수는 있겠는데, 개인적으로는 장기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시급이 적은 데다 경력이 쌓이지도 않잖아요. 일주일 6경기 중 5번씩은 오는 사람들도 있고, 나이 제한이 없으니 고등학생 때부터 해온 사람들도 있어요. 그런 사람들도 좀 좋은 위치 배정받는 게 전부고, 단순한 일을 하는 거니까 힘들다면 그만두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사회생활 배울 수도 없는 게, 다들 개인적으로 일하는 거라, 근처에서 일했던 진행요원들 몇몇과 조금 이야기하는 정도예요. 당연히 회식도 없고. 야구를 좋아한다면, 돈을 내고 자리에 앉아서 관람하는 게 제일 좋은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