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렐라 【명사】 12시가 되기 전 집에 가야만 하는 신데렐라처럼, 무언가를 하다가도 정해진 시간만 되면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야하는 20대를 빗댄 신조어. 

왕자는 신데렐라가 흘린 유리구두 한 짝 덕분에 그녀와 재회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는 구두의 주인이 신데렐라였다는 것을 어떻게 안 걸까? 상상해보건대, 왕자는 신데렐라와 춤을 추면서 투명한 유리구두를 통해 그녀의 상처투성이 발을 보았을 것이다. 새어머니와 새언니들의 구박을 견디며 쉴 새 없이 집 안팎을 돌아다닌 탓에 크게 붓고 부르튼 그녀의 발을 왕자는 분명 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시즌1을 마무리하고 새로이 시작하는 알바렐라2013에서는 일터 안팎에서 험난한 하루하루를 견디는 이 시대의 알바렐라들에게 유리구두 대신 체크리스트를 건넨다. 체크리스트의 단면을 통해 그들의 상처투성이 발을 사회를 향해 적나라하게 드러내고자 한다. 알바렐라들이 행복한 결말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도록 고함20과 독자들이 그 길을 터줄 수 있지는 않을까, 조심스레 소망해본다. 



고함20이 야심차게 준비한 재밌고 우울하고 유쾌하나 서글픈 20대 알바 수난기, 다시 쓰는 그 스무 번째 이야기. 무대는 광활한 들판, 질서 있는 잔디들이 조화롭게 펼쳐진 녹색 필드에서 ‘사장님’이 골프를 치기 위한 기본자세를 잡는다. 그리고 골프채를 있는 힘껏 휘두른다. 골프공은 시원한 하늘을 가르며 날아가고 골프공을 끝까지 지켜보던 누군가, 한 마디 던진다. “사장님! 나이스 샷!” 그녀는 이내 골프채를 챙기고 들판 저 멀리로 뛰기 시작한다. 알바렐라2013에서는 필드의 주연인 ‘사장님’을 잠시 놔두고 날아간 골프공을 찾으러 간 캐디 이렐라(22)씨를 만났다. 
 




Q: 얼마나 일했나요? 
도합 2년을 일했습니다. 1년을 휴학하고 1년은 골프장 내에 있는 기숙사에서 숙식하면서 생활했고, 나머지 1년은 복학해서 주말에만 일했어요. 골프장에는 개장기간과 휴장기간이 있는데 요새는 날씨가 많이 이상해서 4월부터 개장을 하고 대략 12월 넘어서부터 휴장합니다. 비가 많이 와도 쉬지만, 요즘처럼 비가 내리다가 안 내리는 어중간한 날씨에는 고객들 마음에 따라 달라져요. 치고 싶은 고객이 있으면 치게 해줍니다. 

Q: 캐디는 월급을 어느정도 받나요? 
골프장 캐디는 비정규직입니다. 월급 같은 개념이 아니라 성과급제로 적용이 된다고 볼 수 있겠네요. 한 번 코스를 도는데 기본 4시간 정도 걸려요. 예컨대, 9시에 한 팀을 받고 오후 1시쯤 한 코스가 끝나고 하루에 한 번이나 두 번 정도 필드에 나갑니다. 여름에는 해가 길기 때문에 새벽부터 나와서 3번 돌 수도 있지만 보통 2번 정도 나간다고 보면 됩니다. 코스를 한 번 돌때마다 10만원. 요즘은 캐디가 많이 없기 때문에 12만 원 정도. 팁은 고객이 주고 싶으면 따로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루에 많이 뛰면 24만 원 정도 벌고 그러면 한 달에 400만 원 정도 법니다. 

Q: 일반적인 아르바이트에 비해 굉장히 돈을 많이 주는 것 같은데요? 
그렇긴 한데, 처음 캐디 일을 시작하면 교육 기간이 2달 정도 돼요. 그때는 한 코스에 4만 원 정도 받습니다. 요즘 같은 장마 기간에는 일주일에 4번 정도 밖에 못 도는데 그러면 한 달에 160만 원 정도 버는 거예요. 격차가 굉장히 커요. 

그만큼 드는 돈도 많아요. 골프장 캐디로 일하려면 반드시 갖춰야하는 옷들이 있는데 그걸 본인이 사야해요. 초기 자금이 좀 들어갑니다. 간혹 골프 옷을 지급해주는 골프장도 있다고 들었어요. 하지만 제가 일했던 곳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골프도 리조트 사업이고 캐디는 말하자면 서비스 직원입니다. 깔끔하고 예쁘고, 참할수록 리조트 쪽에서 이익인 거죠. 두발 검사도 수시로 하고 ‘옷 제대로 입어라. 아니면 같이 일 못 한다’며 경고도 주고. 
 
Q: TV에 나온 캐디들은 주로 “사장님, 나이스 샷”이라고 말하던데 정말 그렇게 말하나요? 
“사장님, 나이스 샷”이나 “사장님, 굿 샷!”이라고 합니다. 지르는 목소리가 좋으면 “언니, 목소리 좋은데”라며 팁도 더 많이 받고요.
 
Q: 골프장 캐디는 주로 여자들이 한다는 인식이 있어요. 성별이나 나이 제한이 있나요? 
정년은 있습니다. 45살 정도? 요즘은 남자 캐디도 있고요. 보통 여자 캐디를 가리켜 ‘언니’라고 부르는데 제가 일했던 데에서는 45살인 ‘언니’도 있었어요. 근데 이 언니가 정말 베테랑인 게, 초보들은 골프공이 어디로 날아가는지 눈이 빠지게 보고 있어야 하는데 그 언니는 뭔가 좀 달랐어요. 노트에 막 뭘 적고 있다가 골프공 ‘딱’ 치는 소리만 들어도 ‘사장님 저기 떨어졌네요’라며 아는 거예요. 이렇듯 나이가 많으면 경험도 많기 때문에 좋아하는 고객들이 있습니다. 

Q: 이렐라(22)씨의 나이는 골프장 캐디로 일하기에 적당했나요? 
제가 그 골프장에서 제일 어렸어요.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이 가장 많고. 어리니까 좋아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저를 보자마자 ‘어휴, 무슨 꼬맹이를 데려왔어’라며 싫어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경력이 얼마 안 되니까 자기 공을 잘 못 볼 수도 있고. 

나이가 상대적으로 어린 사람이 많은 이유는 '힘들어서'입니다. 캐디는 주로 카트를 운전하고, 공 하나를 보면서 필드를 뛰다가, 한 코스당 약 48개 정도의 골프채를 고객들에게 건네주는 일 등을 하는데 몸이 아무래도 많이 상해요. 점심을 먹을 시간이 없기도 하고. 하지만 나이 상관없이 얼굴이 예쁘고 공까지 잘 봐주면 최고죠. 

Q: 예쁜 캐디를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나요? 
아무래도 그렇습니다. 직설적이고 저질스러운 고객들이 꽤 있어요. 요즘은 감시도 심하게 하고 캐디에 대한 인식도 많이 바뀌어서 성희롱하면 신고도 가능하지만, 카트에 타서 캐디 옆구리를 쿡쿡 찌른다든지, 캐디가 앉는 자리에 미리 손을 가져다댄다든지, 짓궂은 농담을 하는 고객들도 여전히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골프는 야한 농담이 굉장히 많은 게임입니다. 흔히 세상에서 가장 넓은 경기장에서 세상에서 가장 좁은 골대에 가장 작은 공을 넣는 게임이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구멍을 여자에 많이 비유해요. 가볍게는 뭐 ‘저거 참 안 들어가네’ 라든지 ‘쉽지가 않네, 만만치가 않아’ 이런 식으로 농담도 하고. 직설적으로는 ‘여자를 닮아서 구멍이 잘 안 들어가’ 라든지. 

Q: 추천할만한 알바라고 할 수는 없겠네요? 
일이 많이 힘들어요. 돈만 보고자 한다면 추천하겠지만 제가 아는 사람들에게라면 추천하지 않겠습니다. 몸도 망가지고 마음고생도 심하거든요. 돈 많은 사람이 텃세 부리면 많이 초라해지기도 하고요. 자존감도 무너지고. 비오는 날, 비를 맞으면서 뛰고, 뛰면서 공도 봐야하고, 공을 못 보면 바로 ‘그러고도 네가 캐디냐’는 소리를 들어요. 비 때문에 쫄딱 젖었는데 골프채랑 골프공 정리하고, 욕은 욕대로 먹고, 비위는 비위대로 맞춰야 해요. 

골프를 ‘멘탈 스포츠’라고 하는데 기분이 너무 나쁘거나 너무 좋아도 게임이 잘 안 풀리거든요. 제가 비위를 잘 맞춰줘도 ‘언니가 너무 호들갑 떠니까 오늘 골프가 안 되잖아’ 라는 말을 듣기도 하죠. 

Q: 가장 속상했던 적이 있다면?  
한 번은 이런 적이 있었어요. 골프를 굉장히 잘 치는 남자 한 명이 왔는데 좀 까칠했어요. 캐디 일을 시작한지 얼마 안됐을 때였는데 자기 페이스를 잘 못 쫓아오니까 저를 좋아하지 않았던 거예요. 그러다가 뒤쪽에서 공이 날아왔고 그 남자가 맞았어요. 세게 맞은 것도 아니었는데 그 공을 발로 차서 진로를 바꿔버렸습니다. 떨어진 공을 그대로 놔두는 게 기본 골프 에티켓이거든요. 그리고 막 욕을 하더니 팁을 5만원 주고 가더라고요. 짜증은 이미 낼 대로 다 냈고 ‘그래 너는 고생했다’ 이렇게 돈을 주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지 않았어요. 물론 그 돈은 제 주머니에 넣었죠. 뭐 별 수 있나요. 

Q: 혹시나 이 일을 하는 사람한테 조언해줄만한 내용이 있을까요? 
저보다 나이가 더 많을 텐데요? (웃음) 감히 조언을 한다면 마음에 담아두지 말라고 말하고 싶네요. 고객들은 생각 없이 말하는 거고 나를 기억도 못할 테고. 다 흘러가는 거고 지나가는 거고. 심한 말을 들어도 넘어가는 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캐디가 좋은 직업이 아니라고들 하는데 무시 받을만한 직업도 아니거든요. 무식하고 멍청하고 돈 벌 수단 없어서 일하는 사람들이 아니고. 실제로 여배우 A도 우리 골프장에서 캐디로 일을 했었고 골프를 배우기 위해 캐디 일을 하는 사람도 있어요. 골프장 캐디가 일할 동안 ‘을’이었다면, 손님으로 카페에 갔을 때 얼마든지 ‘갑’이 될 수도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