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렐라【명사】12시가 되기 전 집에 가야만 하는 신데렐라처럼, 무언가를 하다가도 정해진 시간만 되면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야하는 20대를 빗댄 신조어.

왕자는 신데렐라가 흘린 유리구두 한 짝 덕분에 그녀와 재회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는 구두의 주인이 신데렐라였다는 것을 어떻게 안 걸까? 상상해보건대, 왕자는 신데렐라와 춤을 추면서 투명한 유리구두를 통해 그녀의 상처투성이 발을 보았을 것이다. 새어머니와 새언니들의 구박을 견디며 쉴 새 없이 집 안팎을 돌아다닌 탓에 크게 붓고 부르튼 그녀의 발을 왕자는 분명 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시즌1을 마무리하고 새로이 시작하는 알바렐라 2013에서는 일터 안팎에서 험난한 하루하루를 견디는 이 시대의 알바렐라들에게 유리구두 대신 체크리스트를 건넨다. 체크리스트의 단면을 통해 그들의 상처투성이 발을 사회를 향해 적나라하게 드러내고자 한다. 알바렐라들이 행복한 결말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도록 고함20과 독자들이 그 길을 터줄 수 있지는 않을까, 조심스레 소망해본다.


고함20이 야심차게 준비한 재밌고 우울하고 유쾌하나 서글픈 20대 알바 수난기, 다시 쓰는 그 열여덟 번째 이야기. 2013년에는 천만 관객을 돌파한 '7번 방의 선물'을 시작으로 '은밀하게 위대하게', '아이언맨3' 등이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러한 흥행작과 더불어 올해 상반기 영화 관객 수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영화를 보는 것이 일상적 여가생활이 된 요즈음, 멀티플렉스 영화관은 영화를 보러 온 관람객으로 북적이고 있다. 영화관은 많은 관객들 덕분에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는 와중, 여기 다른 의미로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도 있다. 작년 5월부터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해 이제 1년차에 접어든 22살 김렐라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Q 어떻게 영화관 알바를 시작하게 되었나요?
전에 전통 차 카페나,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그런데 알바를 새로 구하면서 간접적인 직장 생활을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무래도 멀티플렉스 영화관은 면접을 보는 방식이나 교육이 이루어지는 점 등이 정말 회사 같더라고요. 그리고 영화관 같은 곳은 일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즐겁게 일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Q 간접적인 직장 생활을 느끼고 싶어서 지원했다고 하셨는데, 실제로 일하면서 직장인이 된 듯 한 느낌이 들었던 적이 있었나요?
실적, 수치를 중요시하는 거요. 저희 매장만 그런 걸 수 도 있지만, 알바생들이 하는 여러 프로젝트들이 있어요. 내가 했던 프로젝트들이 표로 나온다는 것이 신기했어요.
 
 
Q 예를 들어서요?
예를 들어서 매점에서 콤보를 그날 몇 퍼센트 팔았는지 마감 후에 엑셀로 확인할 수 있었어요. 항목 전부를 달성하지 못하면 달성하지 못하게 된 이유를 작은 종이에 레포트를 써야하기도 했어요.


Q 그런 점이 알바생으로써 큰 부담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나요?
사실 내가 일한 것이 수치화되고, 그게 눈에 보인다는 게 처음에는 생소했어요. 그런데 항목을 전부 달성하면 포인트나 영화 관람권 같은 보상이 주어지거든요. 스트레스를 받기보다는 열심히 일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아요. 아르바이트생들끼리 경쟁하게도 되고요.

 
Q 다른 아르바이트와 특별히 달랐던 점은 없었나요?
다른 아르바이트를 할 때는 주말알바나 평일알바처럼 시간이 정해져 있었는데, 여기는 매주 시간표가 짜여져 나와요. 오픈, 미들, 마감부터 무슨 요일에 일하는 지도요. 학교를 다니는 알바생들은 학교 시간표에 맞춰주기도 하는데, 저는 휴학생이라 알바 시간표에 생활이 맞춰지더라고요. 다른 사람들이 쉬는 날이라고 해서 나도 쉬는 날이 아니라, 알바 시간표가 휴무인 날이 저한테 주말인거죠. 그래서 친구들이랑 약속 잡기도 어렵기도 하고, 정말 직장인이 된 기분이었어요.
 
아, 그리고 영화관 알바는 정해진 복장이 있어요. 머리 길이나 손톱 길이 등도 검사해서 머리 길이가 애매했던 저는 단발로 많이 잘라냈어요. 구두를 신고 일해야 해서 발이 퉁퉁 붓기도 했고요. 구두도 색상이 정해져 있었어요. 검은색에 무광 구두로요. 알바를 시작하면서 새로 산 것들이 꽤 됐죠.


Q. 급여와 근무 시간은 어땠나요?
시급은 5840원 받고요, 주 4일 기준으로 6시간씩 일해요. 일주일에 24시간 일하는 셈이에요.


Q 영화관 알바생은 복지 혜택이 좋다고 들었어요
아까 말씀 드린 것처럼 보상으로 관람권이나 포인트를 주기도 하는데, 알바생들은 기본적으로 매월 영화 몇 편을 볼 수 있고, 매점할인이 있어요. 그래서 알바를 시작하고 나서 영화를 정말 많이 봤어요. 원래 좋아했었는데, 무료로 볼 수 있으니까 더 좋기도 하고...알바를 그만 둘 수 없는 이유기도 해요(웃음) 또,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큰 기업이다 보니까 근로자의 날에 일하는 것이나 야간 업무에 초과수당이 꼭 주어져요. 다른 아르바이트들은 칼 같이 지키지는 않잖아요. 여기서는 오히려 당연히 챙겨가야 할 권리로 생각해요.


Q 영화관 알바를 하면서 특별히 힘들었던 적이 있나요?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업무가 나눠져 있는데, 상영관을 청소하는 담당이 있어요. 영화 상영이 끝나고 다음 영화가 시작되기 전에 상영관을 다 치워야 하는 일인데, 지난 여름에 '아이언맨3'가 개봉을 했잖아요. 아이언맨은 영화가 끝나고 보너스 영상이 있었어요, 그래서 손님들이 영화가 끝나고 크레딧이 다 올라가고 보너스 영상까지 다 보고 일어나니까, 짧은 시간 안에 넓은 상영관을 다 치워야하는 거예요. 청소할 수 있는 시간이 7분 정도 밖에 안돼서 속으로 '제발 나가라'했던 적이 있네요(웃음)


Q 인기 영화가 개봉하면 힘들겠어요. 인기작 때문에 힘들었던 적은 없나요?
음...' 은밀하게 위대하게'가 개봉 된 날에 매진됐었거든요. 배우들이 시사회를 오는 것도 아니었는데 예매로 매진이 된 거에요. 그래서 더 많은 직원들이 필요하니까 시간표도 바꾸고 보충해서 일하고... 김수현이 그렇게 인기가 많은 지 처음 알았어요(웃음)

요즘은 성수기라 그런지 영화관에 사람들이 정말 많이 와요. 몇 달 전에는 몰랐는데 일하는 내내 이렇게 꾸준히 바빴던 적은 처음이라 인기작이 개봉한 만큼이나 힘드네요.
 
 
Q 손님을 대하는데 힘들지는 않나요? 영화관은 어린 손님들도 많을 것 같은데요.
처음에는 학생 손님들이 좀 당황스러웠어요. 저희 지점이 좀 신분증 검사가 엄격한 편이에요. 그래서 학생들이 교복을 입고와도 학생증이 없으면 나이를 모르니까 발권을 안 해주거든요. 예를 들어서 여러 명이서 같이 와도 한 명이 학생증이 없으면, 그 학생은 발권을 해줄 수가 없어요. 그러면 친구랑 같이 영화를 못 보게 되니까 막 욕을 하는 거예요. 손님한테 뭐라고 할 수도 없으니까요, 좀 속상했죠. 그래도 요즘은 그냥 '네 손님 뭐라고 하셨어요?'하고 넘겨요. 학생들은 그럼 '아니에요'하고 가니까...많이 늘었죠(웃음)

제가 겪은 일은 아니고 신입 알바생이 겪은 일인데요, 한 학생한테 학생증이 없어서 표를 발권 안 해준 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학생이 엄마한테 전화를 하고, 그 어머니가 알바생을 바꿔 달라고 그러셔서 알바생이 전화를 받은 거예요. 전화로 왜 우리 애한테 표를 안 끊어주냐고 한참을 혼내서 결국 영화표를 끊어주고 그 알바생은 울먹였다고 하더라고요.
 
 
Q 그러면 어른 손님들은 어때요?
모든 손님들이 그런 건 아니지만 어른 손님들은 좀 막무가내인 편이에요. 언제는 한 남자 손님이 지갑을 잃어 버렸다고 찾아오셨어요. 그런데 영화가 상영 중이라 끝나고 찾아드리겠다고 했는데, 굳이 상영관을 들어가서 직접 찾으시겠다고 하시는 거예요. 저희는 다른 고객님한테도 실례니까 끝나고 찾아보자고 설득했는데, 너무 재촉하셔서 직원이랑 같이 들어가서 찾아봤죠. 지갑을 못 찾고 나와서, 다른 자리에 앉았던 것 같다고 하셔서 또 다시 들어가서 찾아보고, 그렇게 세 번 정도를 연거푸 상영관에 들어가서 결국 지갑을 찾으셨어요. 그런데 찾는 와중에도 지갑 못 찾으면 지금 상영관에 앉아있는 사람이 가져간 거거나, 너네 알바생들이 훔쳐간 거 아니냐고, 계속 의심을 하시니까 기분이 안 좋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했죠.
 
솔직히 업무적인 스트레스도 있긴 하지만, 그건 어떤 일을 하든지 조금씩 있는 거니까요. 많은 손님들을 대하다 보니까 그만큼 많은 일들도 생기고… 처음에는 고객 응대를 하면서 생기는 트러블을 다루기 힘들 때도 있었어요. 하지만 이제는 많이 익숙해졌네요.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으신 말이 있나요?
인터뷰는 처음이라 많이 부끄러웠는데, 즐거웠어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네요(웃음). 영화관 알바를 시작하면서 제가 손님 입장이었을 때를 되돌아보게 됐어요. 내가 ‘진상’부린 적은 없는 지 생각하기도 하구요. 영화관을 오는 손님들한테 알바생에 대한 배려를 부탁하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 신경 써주시면 더 즐겁게 일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차이 joyeuse.cha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