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4일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에 대한 상영금지가처분신청이 기각되었다. 이로써 <천안함 프로젝트>는 예정대로 9월 5일 전국 30여개 상영관에서 개봉을 하게 됐다. <천안함 프로젝트>는 천안함 침몰사건의 의혹을 다루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지난 2010년 서해에서 작전중인 우리해군 천안함이 침몰했다. 정부는 북한의 어뢰공격으로 침몰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침몰 직후부터 정부의 발표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천안함 프로젝트는 이들의 시점에서 천안함 침몰의 원인을 재구성하는 영화다. 지난 8월 29일 <천안함 프로젝트>의 게릴라 시사회가 열린 광화문 인디스페이스를 다녀왔다. 

1. 박주리의 시선 - 소통을 빙자한 우리사회의 '답정너'를 되돌아보다

실망했다. 좌초설, 잠수함 충돌설은 여전하다. 기뢰설, 피로파괴설은 등장하지 않았다. 영화는 이전의 주장에서 한 발자국도 더 떠나지 못한 채 그 내용을 반복하고 있다. 제작자 입장에선 그정도면 충분했다고 생각했을지 모르겠지만 검색 몇 번이면 다 찾아볼 수 있는 수 년 전 주장을 이제와서 반복재생하는 행위는 돈을 내고 영화를 보는 관객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물론 영화를 보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영화에 스스로가 생각하던 ‘천안함의 진실'과는 다른 새로운 내용이 없다고 화를 낼 것 같진 않지만 말이다. 

<천안함 프로젝트>에서 묘사하는 대한민국 정부의 모습은 매우 분열적이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함미와 함수 구조작업이 협조가 안 될 정도로 멍청하다가도 충돌한 잠수함의 정체는 아무도 모르게 숨길 정도로 대단한 능력을 갖고있다. 이 영화에서 군과 정부는 오락영화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적’으로 묘사된다. 

너무 멋있으면 나의 주장이 돋보이지 않기 때문에 적은 적당히 우스꽝스럽게 보일 필요가 있다. 반면 내가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이 나 자신의 무능력함이나 오류가 되어서는 곤란하기 때문에 적은 때로 필요 이상으로 굉장한 능력을 갖고있기도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천안함 프로젝트>의 ‘진실을 찾는 사람들'과 ‘정부 관계자'의 대립구도는 흡사 오락영화의 그것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스스로 분류는 다큐멘터리라고 하고 싶은 모양새지만 말이다. 한편으론 정부가 이렇게나 거대한 사건의 진실을 모두 감출 능력을 갖고 있다면 ‘천안함의 진실'보다도 국정원 여론조작 사건을 더 숨기고 싶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작품은 후반부로 넘어가 뜬금없이 소통의 문제로 주제전환을 시도한다. 음모론이라는 외피를 벗어던지고 스스로의 주장에 보편적인 가치를 부여하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하지만 모양이 영 별로다. 원하는 답변은 이미 작품 초반부에 던져놨다. 소통을 시도한다고 주장하지만 아무리 봐도 ‘답정너'에 불과하다. 정부가 좌초설과 잠수함 충돌설 중 하나는 인정하라고 말하는 중이다. 인터넷 바깥으로 나와 스크린까지 진출한 이들의 답정너가 어디까지 진행될지 흥미롭게 지켜볼 생각이다.



2. 랑의 시선 - 차라리 자신의 주장에 솔직해져라 

이왕 이렇게 된 거, 좀 더 당돌하게 나가도 좋지 않았을까. 세간의 우려와 달리, '천안함 프로젝트‘는 그다지 발칙하지 않다. 정부의 공식입장 내용을 하나하나 차분히 짚어가면서 의심스러운 부분에 대해서는 전문가의 견해를 구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제2, 제3의 가설을 세워보며, 여전히 석연치 않은 점들이 있다는 여운을 남기면서 마무리되는 영화 전반의 흐름은 여느 TV 시사고발 프로그램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천안함 사건을 둘러싼 여러 의혹에 대해 무대응으로 일관하는 정부를 향해, 어느 철학자의 코멘트를 빌려 '소통의 미덕’을 호소하는 영화의 결말은 뜬금없기까지 하다. 솔직해지자. 정부에게 도덕적 훈계를 하기 위해 영화를 만든 건 아니지 않은가. 민감한 소재에 대한 문제의식을 다큐멘터리로 담아내려는 결심을 한 순간 그 영화는 이미 '나쁜 영화'다. 철학자를 찾아갈 바에야 차라리 마이클 무어 식의 막무가내 쇼맨십을 차용하여 국방부 장관을 찾아갔다면 영화의 주제의식이 더욱 선명하게 와 닿을 수 있었을 것이다. 


3. 호놀룰루의 시선 - 여전히 찝찝하기만 하다

천안함 침몰 당시 군 생활을 하던 사람들에겐 사건에 대해 다양한 생각을 할 기회가 없었다. 다른 생각을 하면 위험한 인물로 낙인 찍히는 조직에서 실체 있는 적을, 수도 없이 머리에 새기던 군인들 중 하나였던 사람이 보기엔 조금은 소름끼치기까지 한 영화내용이었다.
 
중반까지 전문가 의견과 다양한 시뮬레이션 영상으로 명확한 사건의 원인을 보여주던 감독은 중반 이후부터 갑작스러운 흐름의 전환을 시도한다. 초중반 이어나가던 천안함 사건의 전말에서 후반부 갑작스러운 소통 없는 대한민국에 대한 성토로. 무엇이 두려웠던걸까? 갑자기 방향을 급전환하는 감독에게서 영화 내용 중 천안함 구조의 진실에 대해 끝까지 모르쇠로 일관하던 군 수뇌부를 보는 듯한 찝찝한 기분이 남았다. 말하고자 했던 것을 정확하게, 조금 더 강하게 밀어붙였어야 했다. 아쉽다.
 
감독은 천안함 프로젝트라는 제목을 달며 무엇을 얻고자 했을까? 단순히 소통 없는 대한민국을 재조명하려는 프로젝트라면 그 거창한 이름을 당장 떼어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