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대학이든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고등학교 1학년 시절, 그래도 나름의 불안을 가지고 있던 내게 친구가 짐짓 진지한 표정으로 이런 얘길 한 적이 있다. “야, 성공회대 같은 대학만 안 가면 되지. 안 그래?”. 나는 어색하게 웃고 말았지만 딱히 부정하지도, 그렇다고 긍정하지도 않았다. 당시 몇몇 고등학생이 그랬듯 힙합에 빠져있던 우리에게 성공회대는 우리가 동경하는 래퍼들이 다니는 대학교, 인서울 대학의 마지노선 딱 그 정도였기 때문이다.
 
치열하지만은 않은 고3 시절을 보내고 수능을 쳤다. 수능이 끝나자 비로소 ‘현실’이 눈앞에 다가왔다. 그즈음 나에게 성공회대는 ‘인서울’이라는 허울 좋은 마지노선에 나를 끼어 맞추기 위한 상징에 지나지 않았다. 재수를 생각하고 있던 그때, 성공회대학교 합격 전화를 받고 펑펑 눈물을 흘렸던 건 그래서였다. 그랬던 내가 햇수로 4년간 성공회대를 다니면서 ‘안 왔으면 어쩔 뻔했어!’라고 지인들에게 공공연히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새삼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성공회대학교 입구에는 정문 대신 학교 이름이 적힌 돌이 놓여져 있다. ⓒ성공회대학교 홈페이지


정문이 없는 학교, 교수 식당이 없는 학교

모교에 대한 나의 첫인상은 입학하기 전 필기시험을 보기 위해 들렀던 2009년 겨울로부터 출발한다. 전체를 둘러보는데 10분도 걸리지 않는 학교는 ‘정문’이 없는 조용하고 독특한 학교라는 느낌을 주었다. 그래서 나는 학교를 다닌 시간의 반만큼이나 모든 대학이 고등학교와 다르게 정문이 없는 줄로만 알았다. 정문을 ‘만들지 않은’ 것이 학교의 ‘열림, 나눔, 섬김’이라는 이념을 행하기 위한 나름의 실천이라는 건 나중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말이다.
 
그 이후에 모교에 대한 나의 인식은 교수 식당이 없는 학교, 이웃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도서관에 출입문 시스템이 생기는 것에 대해 항의하는 학생들이 있는 학교, 정치적인 이유로 다른 학교에서 불허한 공연을 당연 한 듯 허락한 학교 정도로 바뀌었다. 이 모든 단상들은 성공회대라는 학교가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지도자보다는 동반자를 양성하고, 변방에서 오는 힘이 무엇인지 가르치는 학교. 비록 졸속 행정이라는 비난과 비정규직 문제 등으로 여러 차례 내부적인 비판을 받아 왔지만 이 또한 모교에 대한 애정에서 발현되는 것임을 모두가 부정하진 않을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며칠 전, 친구로부터 성공회대가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에 선정될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나는 그 사실을 믿지 ‘않았다’.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이라는 것이 부실대학, 비리 대학 정도로 생각했던 나에게 본교에 대한 ‘근거 있는’ 확신 같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난 4년간, 지속적인 등록금 인하 투쟁 또한 그 투쟁 기저엔 ‘그래도 우리 학교는 등록금을 허투루 사용하진 않으니까’, ‘재정이 열악하니까’, 대부분이 이해하고 인정하는 분위기였던 탓이었다. (실제 성공회대는 학교 재정의 등록금 의존률이 다른 학교보다 높다.) 대망의 8월 29일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 35곳이 발표됐다. 성공회대의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 선정 소문이 기정사실화되는 순간이었다.
 
 

특정 순위가 좋은 대학을 증명하진 않는다

이 글은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에 성공회대가 선정된 것에 대해 항의하고자 함도, 선정 기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자 하는 의도로 쓰여 지지 않았다. 다만, 되묻고 싶다. 학교 교육이 점점 더 심하게 경쟁으로 치닫고 있는 와중에 성공회대는 ‘한 명의 지도자보다는 열 명의 동반자를’이라는 모토를 내걸면서 경쟁보다는 협력을 강조하고 가르쳐왔다. 이번 결정은 성공회대를 은연중 경쟁 교육 시스템 속으로 뛰어들게 만들었고 성공회대는 그 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학생들에게 경쟁과 동시에 성적의 오름을 강요할지도 모른다.
 
고유의 방식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던 대학이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 선정으로 인해 그 제한에서 벗어나기 위해, 취업률 5%를 높이기 위해, 학교 고유의 특색을 바꾸는 게 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그것이 ‘대학’이 가지는 근본적인 의미와 역할에 부합한 결정일까?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 선정 소식이 전해진 이후 첫 수업에서 학과 교수가 학생들에게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 선정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했다. 내가 들은 수업의 교수뿐만이 아니었다. 곧 학교 홈페이지에도 ‘성공회대학교 구성원 모든 분들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글에는 학교가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으로 선정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사과글, 그리고 이에 대한 의견이 오고 갔다. 학교는 ‘지금은 재정지원제한대학을 탈피하기 위해 시급히 단기적인 대책을 수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조속히 장기적인 대책도 수립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과정에서 학부학생들과 대학원생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겠습니다.’고 말하며 학생대표단과 교수대표 그리고 노동조합이 참석하는 대학평의원회의에서 관련 보고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번 대처 방식을 보며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 선정으로 변할 학교를 걱정하던 마음이 조금은 사라졌지만 그렇다고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까지 없어진 건 아니었다.
 
어쨌든, 성공회대는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에 선정되었고 이는 되돌릴 수 없는 일이 되었다. 그리고 성공회대는 이제껏 그래왔듯 나름의 방식으로 이번 위기를 헤쳐가고 있다. 그 노력이 기존 대학들과 같은 평가 제도로의 변화일지라도 구성원들은 ‘그래도 네이버 검색어에 올랐잖아. 유명해지니 좋지 뭐.’라는 농담으로 서로를 다독인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학교가 경쟁 사회에 매몰되지 않길, 이제껏 그래왔듯 나름의 방식으로 이 시기를 잘 넘기길, 특정한 순위가 좋은 대학을 증명하진 않음을 증명해 보이길, 한 학기를  앞둔 재학생이 아닌 한 사람의 학생으로서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