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링크 : http://goham20.com/3248 )

#5. 하루키의 작품을 읽는 건 하루키와 대화하는 것 같아.

행객 : 신작 얘기까지 했는데, 이번에는 이제까지 읽었던 하루키의 작품들 중에 가장 좋았던 작품을 꼽아보자.

블루프린트 : 이거 너무 어려운 질문이야. 어떡하지?

: 나는 ‘상실의 시대’. 제일 처음 읽은 소설이었고, 큰 울림으로 다가왔어. 하루키의 다른 작품들도 많이 읽었지만 그 생각엔 여전히 변함이 없어. ‘상실의 시대’는 소통에 대해서 얘기하는데, 거창한 말을 하지 않고 개인적이고 일상적인 얘기를 하면서 독자들의 마음에 울림을 줘서 매력적이었어. 하루키의 가장 큰 미덕은 자기 글을 통해서 누군가를 가르치려 하지 않는 다는 점이야. 그냥 자기 생각, 느낌을 말하는데 그게 독자들한테 크게 다가오는 거지. 나는 ‘상실의 시대’에서 그 정점을 맛본 것 같아.

야한보일러 : 나는 두 권. ‘1973년의 핀볼’이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둘 다 하루키의 초기작이야. 모든 작가의 초기작이 그렇듯, 하루키의 초기작도 부족한 점이 많아. 멋들어지지도 않고, 내용이 어긋나 있는 부분도 있어서 완벽한 소설은 아니야. 두 작품을 읽으면서 어설픈 신인 작가의 소설이란 느낌이 확 들었어. 그런데 이런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서 오히려 더 좋았어. 하루키도 일부러 두 작품을 수정하지 않는다고 해. 작가들도 자신의 초기작들에 애정을 보이는 것 같아. 그래서 나도 초기작을 좋아하고.

블루프린트 :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읽을 때 마다 다르긴 한데, 지금은 ‘해변의 카프카’로 할께. 맨 처음 읽은 하루키의 작품이기도 하고, 하루키의 정신 지도가 정말 많이 나와. 평온한 묘사를 하다가 극단으로 치닫고 이러는 게 좋았어. 그리고 집중을 잘 못했던 고등학생이 2권까지 다 읽게 한 힘! 어디로 튈지 모르는 얘기를 하면서도 그걸 한 군데 통일시키는 힘이 있었어.

고함20 하루키 덕후들이 뽑은 하루키 최고의 작품들 ⓒyes24


행객 : 하루키가 다작을 하기도 하지만 장편 소설, 단편 소설, 에세이 등 여러 장르의 글을 쓰기도 하잖아. 이 중에 어떤 장르를 가장 좋아해?

야한보일러 : 나는 단편 소설. 하루키의 작품들을 보면, 남성이 강하게 표현되지 않아. 되게 감성적이고 섬세한 남성들이 나오지. 오히려 여성이 더 강하게 느껴지고. 그런데 단편 소설에서 이런 하루키의 특성이 더 집약적으로 나와. 장편 소설엔 여러 가지가 중첩돼있으니깐 눈에 잘 안 띌 수도 있는데, 단편에는 하루키 문학의 특성이 확 느껴지지. 그래서 하루키의 작품을 많이 읽은 사람들은 확 티가 난다는 얘기가, 단편 소설을 읽는 동안에도 느껴진 적이 있어.

: 나는 장편 소설이 좋아. 하루키의 작품을 읽으면서 하루키와 대화를 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아. 내가 좋아하는 작가랑 더 긴 대화를 나누는 게 좋아.

블루프린트 : 나도 장편 소설. 장편에서 등장 인물들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많아. 누군가 “제가 이야기를 할게요. 시간이 괜찮으신가요?”이러면 상대방이 “시간이 많이 늦었는데 전 졸리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의 구성이, 마치 터널을 지나가는 느낌이야. 지루할 수도 있는데 전혀 지루하지 않아. 이게 바로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힘 같아. 그리고 장편 소설을 읽다 보면, 하루키가 장편을 쓰면서 신나하는 모습이 그려져. 소설 속에 많은 걸 꾸며놓고 어느 자리에 놓을까 고민하는 흔적이 장편 소설 속에 보이는 점이 참 좋아.

행객 : 나는 몇 권 읽지 않았지만 단편 소설이 더 마음에 들었어. 단편집 ‘빵집 재습격’을 읽었는데 정말 재밌었어. 장편 소설은 약간 힘들게 읽었어. 풍경을 묘사할 때 그만해도 될 것 같은데 굳이 묘사를 더 하고. 너무 자세히 설명하고 이런 부분 때문인 것 같아. 묘사가 과한 느낌이랄까. 그런데 단편 소설은 깔끔해서 더 좋았어.

야한보일러 : 왜 에세이는 아무도 말 안해?

: 에세이는 너무 충격적이야. 생활인 하루키는 작가 하루키랑 너무 다른 것 같애. 매일 아침 일찍 조깅을 하는 하루키의 모습은 너무 낯설어. 소설만 봤을 때, 하루키는 방바닥에서 뒹굴거리다가 내키면 나가서 맥주 마시고, 마음 쏠리는 대로 살 것 같았는데 너무 규칙적이야. 결혼했다는 사실도 충격적이었고.

블루프린트 : 나는 에세이보면서 하루키가 유머러스하다고 느꼈는데.

행객 : 유머러스함은 어느 장르에서든 다 드러나지 않어?

: 유머러스함의 결이 좀 달라. 에세이에선 하루키가 모든 걸 다 내려놓고, “이게 나야”라고 말하는 느낌이야.

블루프린트 : “어이쿠 이런”, “궁시렁” 이런 표현들이 재밌어.

야한보일러 : 그런 건 원래 일본에 있는 표현이야.

행객 : 장편 소설에선 일부러 그런 표현을 넣는 것 같아. 등장인물들이 자기 이야기를 할 때 너무 길 때가 많아. 그래서 중간에 괜히 드립을 하나씩 쳐주면서 환기를 시켜준 달까.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민음사


#6. 본연의 감성을 찾기 위해 읽는 하루키의 작품

행객 : 하루키에 대해서 참 많은 얘기를 했는데, 그만큼 하루키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것 같아. 각자 하루키를 왜 좋아하는지 말해보자. 조금 오글거리긴 하지만.

: 하루키의 작품을 읽을 때면, 단순히 책을 읽는다는 느낌을 넘어서서 소통을 한다는 느낌이 들어. 하루키가 작품들에서 전반적으로 내세우는 화두가 소통이기도 하고. 소통에 대해 풀어내는 방식도 마음에 들어. 앞으로도 하루키의 작품들을 계속해서 읽으면서 소통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즐겁게 고민해보고 싶어.

블루프린트 : 하루키의 작품을 많이 읽다보니깐 하루키가 익숙해진 느낌이야. 물론 하루키는 날 모르겠지만. 행복에 대해 말하는 다른 작가의 에세이를 읽으면 혼란스럽고, 나는 과연 행복해질 수 있을지 생각하게 돼. 그런데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으면 즐거움이 느껴져. 나와 겹쳐지는 느낌도 들고. 그리고 소설이랑 에세이가 묘하게 이어지는 점도 좋아. 하루키의 양면을 다 알 수 있어서 더 많이 읽게 되는 것 같아.

야한보일러 : 나는 내 본연의 감성을 찾고자 할 때 하루키의 작품을 읽어. 실수했던 일이나 후회되는 일들이 자꾸 떠오를 때 하루키의 작품을 읽으면, 마음이 다잡아져. 하루키는 사람들이 통상적으로 얘기하는 것과 다른 말을 하고 낙천적인 면도 있어서 그런 것 같아. 그리고 혼자 살다보면 새벽에 잠이 안 올 때가 있어. 정신이 피곤한데도 잠이 안 올 때인데, 그럴 때 맥주를 마시면서 하루키의 작품을 읽으면서 잠에 들기도 해.

블루프린트 : 맞아. 하루키의 작품들을 보면 메이저 같진 않아. 감성적으로도 그렇고, 에세이에서 하는 말을 봐도 그렇고. 나는 마이너를 지향하는 삶을 살고 싶어. 나한텐 마이너가 목표이기도 하고, 잘 맞는 것 같기도 해. 그런데 사람들은 마이너를 안 좋게 생각하잖아. 그래서 스트레스였는데, 하루키의 마이너한 이야기들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됐어. 이런 점 때문에 하루키의 작품을 더 매력적으로 느끼는 것 같아.

행객 : 나는 하루키의 작품을 최근에 처음 봤어. 직접 읽어보니깐 하루키 팬이 많은 게 이해가 갔어. 작품 속에서 등장인물들이 갑자기 자기 생각을 마구 쏟아낼 때가 있는데, 공감가는 부분이 많아. 주류적인 생각은 아닌데 정말 마음에 드는 생각들이야. 앞으로 하루키의 작품을 더 읽어볼 생각이야.

20대의 35%가 하루키의 작품을 읽어봤다는 통계 자료 ⓒ한국갤럽


#7. 젊은 감각을 구사하는 1949년생 하루키

행객 : 마지막으로 왜 20대들이 하루키의 작품을 많이 읽는지 얘기해보자. 오늘 수다회처럼 어느 한 작가에 대해 이렇게 많은 얘기를 하기란 쉽지 않잖아. 그만큼 20대 사이에서도 하루키가 어느 정도 통한다는 뜻이지 아닐까? ‘하루키 세대’라고도 불렸던 30대~40대 초반에서 하루키가 통하는 이유는 분석이 이루어진 것 같은데, 20대에 대해선 분석이 부족한 것 같애. 고함20 기자의 눈으로 20대 사이에서 인기가 있는 이유를 분석해보자.

: 하루키의 작품은 세대를 불문하고 독자들에게 어필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 같아. 일단 읽기가 쉽잖아. 그리고 구체적인 장소나 시대 설정이 모호한 편이어서 예전에 나온 책이라 해도 읽는데 불편함이 적어. ‘상실의 시대’는 87년엔가 나왔는데 지금 읽어도 촌스럽다는 느낌이 별로 안 들어. 그리고 지금의 20대들은 97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신자유주의 열풍 속에서 살아왔어. 경쟁의 미덕이 만연해진 사회에 살면서 소통에 목말라하는 사람이 많아지지 않았나 싶어. 보편적인 가치로서의 소통에 대해 말한다는 점에서 20대들이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아.

야한보일러 : 하루키와 비슷한 감성을 가진 작가가 적기 때문이지 않을까? 남성 작가가 하루키처럼 소설을 쓰기란 정말 힘들겠다는 생각을 자주 해. 여성 작가의 작품이었다면 그렇게 큰 메리트는 아니었을 거야. 희소성 때문에 주목을 받는 것 같아. 소설 속에서 묘사되는 남성과 여성의 모습이 보통의 통념과는 달라. 그런 모습에서 느껴지는 재미가 많아. 그런 모습을 다른 소설에서는 찾기도 힘들고. 이질적이지만 그만큼 희소해. 그리고 우리 모두 이질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잖아. 말을 못할 뿐이지. 그래서 더 인기가 있는 것 같아.

블루프린트 : 하루키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감각이 젊다고 생각해. 전혀 올드하지 않아. 소설이든 에세이든 배경을 지금이라고 말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잖아. 하루키의 작품을 읽었을 때 할아버지 작가가 쓴 작품이라고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젊은 감각이 느껴지니깐 20대들이 쉽게 읽을 수 있어. 하루키가 작품 속에 등장하는 물건, 옷차림을 묘사하는 데 철저하기 때문이기도 해. 시대가 변하면서 사람들이 사용하는 물건과 옷차림이 달라질 수밖에 없는데, 하루키는 그런 변화에 소홀하지 않고 잘 맞춰가니깐 20대들이 읽기 더 편한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