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에 있었던 "홍대 청소노동자 투쟁"을 알고 있는가? 라는 질문은 더 이상 새롭지 않다. 그들의 투쟁은 아직 현재진행형이지만 이미 미디어나 언론에 수십 번씩 언급되고 노출된 ‘이슈’는 어떤 말도 놀랍지 않게 만들어버렸다. 청소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우 혹은 형편없이 낮은 임금과 식대에 대해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아니 어쩌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혹시, 청소노동자 투쟁에 대해 ‘알고 있다’는 사실만 알고 있는 건 아닐까. ‘20대인 내가 청소노동자 투쟁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는 사람이 있진 않을까. <고함20>의 청소노동자 기획기사는 이런 물음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이는 기사를 쓴 고함20의 구성원들의 물음과도 맞닿아 있다.  -편집자 주 



작년 9월부터 1년 동안 레디앙에 ‘청소노동자 구술생애사 연재’ 진행 
평범한 가정의 ‘엄마’가 왜 노동조합을 시작하게 됐을까?
‘청소노동자’라는 직업에 질서 순응적 예의바름을 넘어선 시각으로 

9시 뉴스 속에서 ‘비정규직 철폐’라는 말이 쓰인 새빨간 노동조합 조끼를 입은 노동자의 모습은 전사에 가까웠다. 그들은 주로 소리를 지르거나 앉아서 울고 있었고 주먹을 높이 들고 뭔가를 주장하고 있다. 적어도 노동자들에게 그 대치 장소는 전선이었다. 

그들은 TV 밖으로 빠져나와 조끼를 벗고 삶 속으로 들어간다. 저녁밥을 지으려고 집으로 돌아가면 자녀들은 부모를 붙잡고 “어디 나가서 앞서 선동하지 말라”며 신신당부한다. 집으로 돌아온 자식들의 엄마는 “적당히만 하면 괜찮아, 너무 과한 게 문제지”라고 대답하고 '이것도 선동인가’싶어 곰곰이 생각한다. 돌이켜보면 자신은 젊은 시절, ‘운동권’이라든지, ‘노동조합’같은 건 전혀 알지도 못했다.

‘시간을 달리는 작은 교실’의 청소노동자 구술생애사 프로젝트

시간을 달리는 작은 교실(이하 시작교실)은 학강(학생)인 홍익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연세대학교 대학 청소 노동자들과, 그들에게 한글, 컴퓨터를 가르쳐주는 강학(교사)을 두고 시작했다. 강학들은 대부분 각 대학 내 재학생들이었다. 노동자들에게는 한글도, 컴퓨터도 필요했다. 실제로 교섭을 할 때 사측에서 문서에 장난을 친 경우가 꽤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몇몇 강학들은 학강의 생을 써내려가는 구술생애사 프로젝트에 착수한다. 청소 노동자들의 어린 시절부터 노동조합을 결성한 지금에 이르기까지, 강학들의 시선으로 서술해나가는 것이 c이번 청소노동자 구술생애사 프로젝트이다. 학강들은 주저하다가도 어느 누구보다 ‘전문가’일 수 있는 자기 인생이라는 주제 앞에 신이 나서, 이야기를 거침없이 쏟아내기 시작한다. 청소노동자 구술생애사 프로젝트는 왜 혹은 어떻게, 또는 누가 시작하게 된 걸까. 이 물음에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간사 백승덕씨, 그리고 강학(교사) 유채원씨가 차례대로 대답해주었다. 
 

▲ 왼쪽부터 백승덕씨, 유채원씨


유채원씨도 시작교실의 강학에서 시작해 구술생애사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케이스다. 처음 진행하는 프로젝트였기에 ‘구술사’라는 말 자체가 모든 강학들에게는 생소했다고 한다. 유채원씨 역시 마찬가지였다. 인터뷰를 해달라고 졸랐다가 거절을 당하기도 몇 번, 그는 드디어 청소노동자의 구술생애사를 4번에 걸쳐 풀어낸다. 그가 구술생애사를 진행했던 학강의 경우, 전형적인 한국 여성의 삶을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남원 보수적인 가정에서 자라 얼굴 한 번 못 본 남자랑 결혼했고, 교육열과 학구열이 대단했어요. 형편상 교육은 얼마 받지 못하고 자식 교육은 무조건 서울에서 시켜야겠다는 마음으로 상경해서, 온갖 일을 다 하셨더라고요. 어딜 가도 긍정적으로 일을 해오셨고. 보통 불만 없는 분들은 노조 일까지 굳이 안하려고 하는데, 그건 어떻게 보자면 인생의 태도를 바꾼 거잖아요, 그 변화가 궁금해서 마지막 인터뷰 때 물어보았죠.” 

“과연 성공한 사람들의 삶만이 알 가치가 있는 것일까? 성공하는 법을 제외하면 다른 이의 인생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없는 것일까? 나는 모든 이에게 표본이 되는 삶 같은 건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타인의 삶이, 한 사람이 자신의 삶을 만들어가는 데 하나의 가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http://www.redian.org/archive/58863 


지난 9월부터 레디앙에 연재됐던 ‘청소노동자 구술생애사’를 마치며 유채원씨는 이렇게 서술한다. 과연 그렇다면 이를 통해 삶의 가닥을 잡았을까. 그는 “이전까지 미디어에서 노동자를 다루는 표면적이고 얄팍한 동정이 불편했거든요. 동정 말고 다른 감정, 그러니까 ‘청소노동자의 기록’이라는 생각으로 앞서 시작한 구술생애사가 나중에는 ‘그냥 아는 분의 이야기’로 변하더라고요. 가장 가시적인 소득이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대답한다. 

자동차 마티즈를 모는 청소노동자 어머니? 

청소노동자에게 ‘분리수거나 인사를 잘하는’ 예의를 다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에 대해 백승덕씨는 그 예의바름을 한번 깨볼 수 있는 프로젝트가 구술생애사라고 말했다. “일반 학생들은 청소노동자라고 하면, 저임금‧고령‧고강도의 업무 등을 떠올리고 ‘예의를 갖춰야지’라고 생각을 끝내버립니다. 여기에는 어떤 책임도 발생하지 않습니다. 이런 삶을 가진 사람을 어떻게 대할 것이며 농성을 하고 요구를 할 때, 당신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 라는 질문이 빠져있어요.” 그리고 이 질문은 구술생애사가 여기서 얼마만큼 더 나아갈 수 있는지 묻는다. 

‘일반’ 학생들에게 청소노동자란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깨끗하게 만들어주시는 고마운 어머님들이다. 하지만 어느 날, 그 고마웠던 어머님이 파업을 해서 화장실에는 휴지가 쌓이고 학교에는 쓰레기가 넘친다고 가정했을 때 학생들은 어떤 얼굴을 보일까? "그때부터 욕이 나오기 시작하는 거죠, 그 예의바름 속에는 질서가 있고, 질서만 지키면 본인은 문제가 없는 거거든요. 질서 자체가 문제라고 외치는 사람에게 예의만 지키는 건 그런 겁니다. ‘네가 그 위치에 조용히 있다면 나는 관심 없어, 상관없어’라는. 이 사람들도 계속 무언가를 요구하고 욕망하는 주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점이 중요합니다. 한 주체로 어디까지 어떻게 인식을 할 거고, 물리적이고 한정적인 공간에서 어떻게 맞춰갈 것인가, 논의가 거기까지 나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구술생애사의 관점에서 청소노동자를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할지가 어려웠던 적도 있었다. “구술사를 진행했던 홍대 조합원 중에 홍대에 건물을 갖고 계신 분도 있었어요, 매달 몇 백만 원을 건물세로 받는데, 그 분은 ‘청소일’ 자체를 ‘의리’라고 하십니다.” 때로 구술생애사는 사실에 가장 근접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많이 고민해보고 분석해봐야 하는 문제이며, 구술생애사가 쉽지 않은 이유다. “청소가 끝나면 마티즈를 끌고 집에 가시거든요, 근데 그 조합원을 보며 “집에 갈 때는 마티즈 끌고 가더라”는 식으로 폭로하는 학생이 있었어요, 그거야말로 어떤 선입견에서 나온 이야기인 거죠. 마티즈를 끌면 농성을 하면 안되나? 이 사람이 마티즈를 끌면서도 왜 농성을 하게 됐는가, 다른 삶에 대한 이야기가 필요하겠죠.” 그렇게 개개인의 삶이 구술생애사 안으로 편입돼 서술된다. 언젠가 한글을 배우고 있는 학강들이 자신의 삶이 담긴 이야기를 읽을 수 있게 되기를, 그들은 소망한다. 

그렇게 해서 무엇을 바꿀 수 있겠냐고 묻는다 

구술생애사 프로젝트가 학생 운동은 될 수 없다고 백승덕씨는 이야기한다. 학생 운동이 필요하고 정말 중요하지만 소위 ‘운동권’과 ‘비운동권’간의 간극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는 거다. “이 간극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그 질문이 구술생애사가 대답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싶어요. 학생으로서의 일생과 노동자로서의 일상이 겹쳐 어디까지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가라는 점에 대해서요. 그 운동의 폭이나 선을 좀 더 다면적으로 확대해보고 싶습니다. 어쩌면 저희 세대는 운동의 축소기를 맞고 있는데 이 시기에, 과거의 폐허를 계속 응시해야한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과거의 폐허를 생각하고 어떻게 폐허가 되지 않을 수 있는지를, 답도 있을 겁니다."

유채원씨 역시 이 간극에 대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예전에는 졸업할 때까지 적당히 놀아도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었고, 소위 ‘스펙’에 매달리지 않아도 괜찮았다면 요즘엔 절대 그렇지 않다는 데에 의견이 모아졌다. “요즘 사람들에게는 노동이라는 말이 무섭게 들리는 것 같아요. 어쨌든 자기 생활을 다 바치지 않으면서도 같이 연대할 수 있는 게 있으면 좋을 텐데… 어떻게 본다면 시작교실은 여기 가깝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큰 희생을 필요로 하는 데는 아니니까요.” 

‘그렇게 해서 무엇이 바뀌겠냐’는 질문에 백승덕씨는 슬며시 웃었다. “소위 ‘사회적으로 성공한’ 선배랑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했어요. 그렇게 한다고 무엇이 바뀔까… 선배가 다시 물어본다고 해도, 이 작업이 성과를 갖고 있고 기여를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나? 어떠한 변화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당신의 위치에서는 절대 그 변화는 감지할 수 없을 거다, 라고 말하고 싶어요. 누구의 말을 경청해서 우리는 우리라고 부를 것인가. 여기서 절대 빠지지 말아야할 건 억압과 소외를 겪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겠죠. 억압과 소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것이 내가 가진 억압과 소외와 어떻게 만날 수 있는가” 백승덕씨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구술생애사는 분명 낯선 활동이지만 낯선 것들을 계속 만나는 속에서 나도 바뀌고, 구술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성장할 수 있다고 봅니다. 함께 ‘책임(responsibility)’을 나눠 갖는 무리의식이 생겼으면 하고. 지금까지 계속 순응하셨던 분들이 인생 막바지에 노동조합이라는 활동을 하고 있는데, ‘왜 이분들이 저항을 하게 됐을까?’ 라는 질문을 던져보자는 겁니다. 기존에 가졌던 순응이나 냉소에 조금이나마 해결책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