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한국에서는 600명이 넘는 청년들이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를 이유로 감옥에 간다. 전 세계에 있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의 92%에 달하는 숫자다. 2013년 10월 8일, 또 한 명의 청년 박정훈(27)씨가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를 선언했다. 박정훈 씨는 10대 때부터 꾸준히 청소년운동, 학생운동 등을 해왔고, 현재는 최저시급을 1만원으로 인상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알바연대에서 활동하고 있다.

10월 8일은 박정훈 씨의 군입대일이었다. 박정훈 씨는 이 날 군대에 입대하는 대신, 대한문 앞에서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 기자회견 <나는 거절한다>를 가졌다. 박정훈 씨는 기자회견에서 “제가 하는 일이 큰일은 아니다”라며 “지금까지 제가 뱉었던 말과 행동을 책임지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고 말했다. 실제로 박정훈 씨는 지난 해 고함20과의 인터뷰에서도 “병역 거부를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링크 : [D-80] “(진보)운동은 내 삶의 방식" 청년대선캠프 정책연구소장 박정훈씨)

덕수궁 대한문 앞 박정훈씨와 기자회견 참가자들.


이 날 기자회견은 알바연대 활동가이자 박정훈 씨의 후배인 김윤영 씨의 사회로 진행됐다. 기자회견의 첫 순서는 대한문 앞 밀양 문제 해결을 위한 단식 농성 중인, 동화마을 주민대책위원회 김정회 위원장의 발언이었다. 김정희 위원장은 밀양에서 벌어지고 있는 공권력 행사의 문제점을 비판했다. 김 위원장은 “적과 싸워서 자국민을 보호해야 할 경찰, 군인이 왜 폭력을 앞세워서 자국민을 억압하는지 모르겠다.”며 “양심 있는 젊은이가 앞으로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다음으론 ‘전쟁 없는 세상’의 활동가 조은 씨의 발언이 이어졌다. 조은 씨는 “UN이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 대한 처벌의 중단을, 국가인권위원회가 대체복무제 도입을 한국 정부에게 권고했다.”며 “양심적 병역 거부자가 감옥에 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2007년에 국방부가 대체 복무제의 도입을 발표한 적이 있지만, 이명박 정부의 출범과 함께 수포로 돌아갔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를 했던 김영배 씨는 “(박정훈 씨에게) 속상해하고 걱정하는 마음을 갖기보다는, 양심을 지키고자 병역을 거부한 것을 축하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국가의 야만적인 폭력에 대해 대항하기 위해 박정훈 씨가 병역을 거부”한 것이라며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다 같이 병영화된 사회를 바꿀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발언중인 박정훈씨.


“야만적인 대한민국 국가폭력 거절한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인정하라!”라는 구호 후에 국제 앰네스티 한국지부 활동가 최하늬 씨가 발언을 이어갔다. 최하늬 씨는 “병역 거부권은 세계에서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인권”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현재 수감되어 있는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자 모두를 즉각 사면”할 것을 요구했다.

뒤이어 노동당의 이봉화 부대표, 청년좌파의 김성일 대표가 박정훈 씨의 병역 거부를 응원하는 발언을 했다. 김성일 대표의 발언 중에는, 대한문 앞을 지나던 노령의 한 시민이 “학생은 전쟁 해봤어요?”라며 딴지를 걸기도 했다. 그는 “전쟁은 당연히 해야죠. 그런 말 하면 안 되죠”라고 말하며, 자신은 군대에 다녀왔다고 밝힌 김성일 대표에게 “그러면 왜 군대를 갔다 왔냐?”고 여러 번에 걸쳐 언성을 높였다.

구호를 외치는 기자회견 참가자들.


기자회견은 양심적 병역 거부를 선언한 박정훈 씨의 발언으로 마무리됐다. 박정훈 씨는 “용산 참사의 책임자 김석기가 한국공항공사 신임 사장 자리에 앉았고, 밀양 주민들에게 연대했던 활동가가 구속됐다.”며 “제가 지키고 싶은 나라는 이런 야만의 나라가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야만의 나라를 지키고 유지하려는 박근혜 정부 및 협력자들의 편에 서서 총을 들 수 없어서, 병역을 거부하고 감옥에 가려고 한다.”고 병역 거부의 이유를 밝혔다.

박정훈 씨는 기자회견 후에 밀양 송전탑 공사 강행에 항의하는 단식을 진행했다. 바로 다음 날인 10월 9일에는 한국전력 서울본부 처마에 기습적으로 올라가, 밀양 송전탑 공사 중단을 촉구하다가 잠시 연행되기도 했다. 병역 거부 선언 후에도 사회운동을 이어가고 있는 박정훈 씨. 그의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는 과연 인정될 수 있을까? 아니면 병역 거부에 따른 구속자가 한 명 더 늘어나게 될까? 사법부의 판단만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