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도 국제시사문제를 다루는 잡지가 있다. 국제적인 미디어그룹의 자회사나 국내 유수의 언론이 만드는 자매지가 아니다. 대학생이 만든다. 대학생국제시사저널 <Prism(프리즘)>이다.

<프리즘>은 대학생들이 의기투합하여 만드는 국제시사저널이다. 2012년 11월 창간호를 시작으로 2013년 9월 현재 5호까지 나왔다. 오프라인 잡지로 제작되어서 서울시내 대학에 무료로 배포된다. 

<프리즘>의 편집회의가 있던 카페를 찾아가 인터뷰를 진행했다. 오른쪽 두 번째가 편집장 최정훈씨


기성 언론의 국제뉴스도 외국 통신사의 자료를 받아 재보도하는것이 전부인 현실에서, 과연 대학생이 모여서 국제시사 이슈를 주제로 제대로 된 잡지를 만들 수 있을까 의심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프리즘>의 가장 큰 매력은 짜임새있는 컨텐츠다. 

<프리즘>의 기사는 크게 특집과 고정코너로 나뉜다. 특집은 각 호가 나올 때 쯤의 중요한 국제이슈를 다룬다. 특집은 이란 핵 문제, 일본의 우경화, 국제적인 극우세력의 대두와 같은 굵직한 사건을 다양한 시각에서 조명한다. 이번 5호의 특집은 82년 당시 한국의 구 공산권 외교전략 분석이다. 30년만에 기밀해제된 외교부의 자료를 방대하게 인용했다. 

특집이 다소 무거운 분위기라면 고정코너는 좀 더 가볍다. 눈이 가는 지점은 <프리즘>만의 색이 살아있는 부분이다. 술이나 지폐, 음악과 같은 소개로 국제문제를 풀어나간다. ‘지갑에서 꺼낸 근대인’은 세계 각국의 지폐속에 담긴 인물들의 이야기다. 

<프리즘>에 실린 글이 새롭게 다가오는 이유가 단지 신선함 때문만은 아니다. 아마추어리즘에 기반한 이러한 잡지들은 한결같이 컨텐츠의 깊이에서 딜레마를 겪는다. 아마추어다보니 만드는 입장에서 깊이있는 이야기를 꺼내기 힘들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주제에 대해서 깊이있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솜씨는 프로가 아니라면 갖기 힘들다. 

결국 어디서 들어봤던 이야기를 가볍게 반복하거나, 소수가 아니면 관심을 갖지 않을 이야기로 주제가 흘러가기 쉽다. 누구에게나 읽힐 수 있지만 누구나 말할 수 없는 바로 그 지점을 찾아내기간 여간 쉬운일이 아니다. <프리즘>의 편집장을 하고있는 최정훈(24)씨는 결국 “남들이 하지 않는 이야기”에 길이 있다고 말한다. 

“남들이 다 하는 이야기라도 다른 시각에서 보려합니다. 대형 언론들이 국제문제를 이야기하는 레퍼토리, 즉 당파성에 치우치지 않으면서도 이론적이고 학문적 입장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기존의 언론이 지나치게 당파성에 기반해서 사건을 재해석한다는 말은 쉽게 수긍이 갔지만 당파성에 치우치지 않는 입장이라는 말은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최정훈씨도 모든 사람이 동의할만한 비당파성을 추구하거나 기존의 시각을 완전히 거부한 제3 노선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대신 그는 ‘이론적인 당파성'과 ‘속류화된 당파성'으로 <프리즘>을 기존의 언론과 구분했다.

“한겨레에는 미국, 북한문제에서 시각에 팩트를 맞추려는 노력이 과합니다. 조선일보도 마찬가지로 경직된 시각이 있고요. 그것은 이론적인 당파성이 아니라 속류화된 당파성입니다. 우리는 더 이론적이고 학문적인 접근을 시도합니다.”

저널리즘의 문제는 결국 기록의 문제다. <프리즘>도 예외는 아니다. ‘어떻게' 문제를 담을것인가하는 고민 만큼이나 ‘무엇'을 담을것인가 하는 고민도 쉬운 문제는 아니다. 최정훈씨는 이전에도 여러 번 인용했다는 투키디데스의 말을 꺼내면서 답은 “모두가 알고있지만 다들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건"에 있다고 말했다.

“TV에서 보는 사건을 알고있다고 생각하지만 따져보면 그렇지 않은 것이 있잖아요. 그 문제를 새롭고 다양한 시각에서 접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쉽게 말하면 잘 알려져있지만 구체적인 깊이나 사태의 다양성이 조명되지 않는 사건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지 않나 합니다.”

<프리즘>이 재밌는 이유는 자신들의 글을 오프라인 잡지로 만든다는 점이다. 요즘과 같은 시대에 자신들의 글을 더 싸게, 더 편리하게, 더 많은 독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은 단연코 온라인 공간을 이용하는 것이다. 

더욱이 잡지를 만드는 일은 쉽지 않다. 최씨도 발행 초기엔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다고 했다. 가장 먼저 마딱트린 장애물은 인쇄비용이었다. 광고를 계약하고 인쇄를 하는 과정부터가 녹록치 않았다. 최정훈 편집장의 말대로 “의욕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었다. 지금도 광고비 문제 때문에 1.5달에 한 번 꼴로 잡지를 발행한다고 했다. 그럼에도 <프리즘>이 블로그 대신 종이잡지를 선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특별히 오프라인이 더 좋고 온라인이 나뻐서라기보다 결과물이 손에 잡히고, 눈으로 읽고, 책장을 넘기는 경험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손에 잡히는 실물을 만든다는 의무가 있잖아요. 온라인도 생각을 했지만 잡지를 창간하면서 온라인에 올릴 생각은 나중으로 미뤄두기로 했어요. 고민은 많지만 차차 해결하려 합니다.”

매년 대안언론을 표방하는 많은 단체가 명멸한다. 대학생이 중심이 되는 매체는 창립멤버가 학년이 올라가고 취업준비와 졸업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프리즘>이 빛을 본지 이제 1년, 아직은 미래를 걱정하기엔 너무 이른 시간이 아닐까 싶었지만 조심스럽게 지속가능성에 대한 물음을 던졌다. 답변은 담담했다.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는게 문제겠죠. 위기라든지 그런걸 쓰기보다 우리가 해나가야하는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국제시사, 국제정치에 관심을 갖는 동료, 후배를 만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고요. <프리즘>을 만드는 과정이 프리즘에 들어와서 글을 쓰고싶은 예비 기자와의 만남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글을 써서 우리와 생각을 공유할만한 독자를 만나는게 가장 큰 과제라고 생각해요.”

<프리즘>의 고민은 먼 곳을 향해 있었지만 고민을 해결하는 방법은 멀리 있지 않았다.

“기본은 좋은 기사를 쓰려는 노력입니다. 그게 잘 되지 않으면 다른것도 잘 되지 않습니다. 기본이 바탕을 이뤄야 다른 사람도 설득할 수 있습니다. 당장은 다음호 내는것에 집중하는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